◆국세청은 지난해 5월 세무조사와 관련한 부조리를 감찰하는 전담팀인 '세무조사감찰 TF팀'을 만들었다.

‘괴물’이 또 사람을 삼켰다. 대통령을, 언론사 사주 부인을 죽음으로 이르게 했다더니 이제는 중소기업 회장이 죽었다.

여기서 대통령은 고 노무현 대통령이고, 사주 부인은 2001년 국내 유력 일간지 사주 부인이다. 그리고 중소기업 회장은 최근 세무조사를 받던 도중 자살을 했다는 한 식품회사의 대표다.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은 사돈인 박연차 회장이 운영하는 태광실업에 대한 세무조사가 단초가 되었다는 것이 정설로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언론사 사주 부인의 죽음은 지난 2001년 김대중 정부 시절 국세청의 대대적인 언론사 세무조사(23개 언론사에 대한 동시조사)에서 자신과 관련한 세무문제로 조사가 진전되면서 신경쇠약증세를 보이다 국세청이 사주 등을 고발 조치한 이후 증세가 급격히 악화됐고, 인척들이 국세청 조사에 이어 검찰에도 소환돼 조사를 받는데 대해 심적 부담을 느껴왔다고 했다.

또 있다. 1980년대 후반에 있었던 선박회사 사장의 투신자살 이었다. 당시 그 회사는 국세청의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받던중이었으며, 하필 뒷날 국세청에 출두하기로 예정돼 있었다는 점에서 세무조사에 대한 압박이 자살의 배경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물론 이들의 죽음이 전적으로 세무조사 때문만 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세무조사를 받는 사람들이 감당해야하는 심적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는 것이 세무조사를 받아본 기업가들의 한결 같은 증언이라는 점에서 세무조사가 이들의 극단적 결정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증거 또한 없다.

국세청의 세무조사 강도가 세지고 있는 시점에서 잘나가던 중견기업 회장이 세무조사를 받던 중 투신자살 했다는 보도는 예사 사건이 아니다.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으면 아파트 15층까지 올라갔고, 또 뛰어내렸을까.

이쯤 되면 세무조사는 기업의 세금신고를 바로잡는 단순한 행정행위를 넘어 이미 사람을 죽이는 예리한 흉검인 것이다.

한발짝 더 나아가 세무조사가 무섭고, 또 그에 따른 강한 스트레스로 죽음에 이르는 기업인들이 과연 이 뿐일까.

지난해 세무조사와 관련한 한 세미나에서 현직 국회의원이 들려준 경험담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자신이 의사였던 시절 세무조사를 받던 기업인 두 사람이 뇌출혈 등으로 입원을 했었는데 한 사람은 사망했고, 한 사람은 반신불수가 되었다는 사례를 털어놓으면서 세무조사를 받는 기업인들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나무를 심고 키운 후 열매를 수확하듯이 기업가들이 신바람을 내면서 사업을 하게해야한다. 나라의 세수가 우선 급하다고 마른수건 짜듯이 기업을 압박해서 나무를 아예 자라지 못하게 해서는 안된다고 주문했다.

세무조사라는 ‘괴물’은 이처럼 기업인들만 괴롭히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 아니다. 조사의 칼을 휘두르는 자기 자신도 서슴없이 베는 양날을 지닌 ‘나쁜 검’이다.

어떤 국세청 2인자는 세무조사라는 힘을 빌어 정치자금을 모았다가 교도소 생활을 했다. 그리고 국세청 고위직들이 세무조사라는 권력의 힘을 믿고 뇌물을 받는 등 손 부끄러운 행동을 하다가 교도소 수의를 입어야 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지금도 이 괴물은 여전히 강력한 힘을 발휘하며 전직 국세청 수장 두 명을 영어의 몸으로 만들어 놓았다. 전군표 전 국세청장과 청장 대행을 지낸 허병익 차장이 그들이다.

이들은 국세청에서 고위직으로 일하면서 조세정의의 최후의 보루라고 일컬어지는 세무조사를 무마해주겠다면서 그 댓가로 대기업으로부터 거액의 뇌물을 챙긴 혐의로 재판을 받고 수감중이다.

이 뿐이 아니다. 2011년 서울국세청 조사국 한 조사팀의 팀원이 여의도 A빌딩 지하복도에서 이전에 세무조사를 벌였던 조사업체로부터 단 한번에 엄청난 액수인 1억8천만 원의 뇌물을 스스럼없이 받아 챙긴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는 뇌물이 담긴 쇼핑백을 받은 후 당일 오후 팀장에게 절반을 건네는 등 뇌물을 상납까지 했으나, 결국 발각되었고 이 팀원과 팀장은 현재 복역중이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세무조사를 벌이면서 그 괴물의 힘을 이용해 돈을 챙긴 세무공무원들에 대한 재판은 사람만 다를 뿐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또 무시로 일어날 것이다. 우리가 발견하지 못할 뿐.

이쯤 되면 세무조사 무용론이 나와야 하는 게 맞다. 세수의 원천인 기업인들을 죽게 하고, 대통령까지 죽음에 이르게 한 단초가 되었음에도 그리고 그 칼이 자신들을 베는 시퍼런 흉기가 되어 날뛰는 데도 그 힘을 휘두르는 국세청은 물론 조세학자 등 전문가들 그리고 정치지도자 등 어느 누구하나 이 괴물을 없애자고 나서는 사람이 없다.

한해에 세무조사를 통해 거두어 들이는 세금은 3조원에서 4조원 가량이라고 한다. 겨우 이 정도의 세금을 더 걷자고 사람 잡는 괴물을 키우고 있는 것인가라는 물음이 당연히 나와야 한다. 세무조사를 받다가 사람이 자살을 한다는 것은 엄청난 재해다. 그것도 인재이자 관재다. 당장 재해예방 프로그램을 가동해야하고, 그게 안되면 ‘괴물’을 없애는 방도를 찾아야 한다.

그런데 다들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외면한다. 왜 일까.

세무조사라는 무서운 칼이 버티고 있으니 성실신고가 담보된다는 오래된 레코드판 가락만이 능사라고 믿는 조세전문가들과 그것에 기대어 자신의 힘을 지키려는 국세청의 이해가 찰떡처럼 딱 맞아떨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기업들이 성실하게 신고하는 것이 과연 가산세나 세무조사가 무서워서 일까. 이제는 냉철히 한번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국세청의 세무조사가 법령에 근거하지 않고 훈령과 지침을 통해 이뤄짐에 따라 세무조사권이 남용되고 세무공무원들의 자의적인 권한행사가 부패를 야기하고 있다면서 고작 국세청의 세무조사에 대한 기준을 제정하고 세무조사 대상에 대한 선정기준과 방법, 절차, 조사범위 등을 공개하자는 것은 국민들의 눈을 가리고 아옹하는 수준일 뿐, 세무조사로부터 기업인들의 자살을 막는 특단의 재해방지법이 될 수는 없다.

성실납세자들은 단연코 전가의 보도가 무서워 세금을 낸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정부가 성실납세자들의 수준을 그렇게 생각한다면 당장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국민들이 성실하게 세금을 내는 것은 국가라는 공동체를 유지하기위한 최소한의 비용부담, 그리고 번만큼 세금을 내야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상식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이다.

더 이상 세무조사 때문에 성실신고가 담보된다면서 아주 위험한 괴물인 세무조사를 금지옥엽처럼 애지중지할 필요가 없음이다. 국세수입의 97%가 자발적 신고에 의한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제 세무조사라는 괴물은 그만 조세박물관으로 보내든지 대수술을 가해야할 시기가 다가온 것이다. 아마 시간을 자꾸 끌면 700년 전 정도전이 고려를 향해 ‘괴물’이라며 퍼부었던 분노가 더 크게 되살아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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