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피아(관료+마피아) 척결이 화두다. 조세정의를 외치는 국세청 역시 바짝 움츠려있다. 왜 일까. 아마도 관피아라는 말이 스스로 찔리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공무원 전체에게 던져지는 국민들의 차가운 시선의 부담스러움이 더 큰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국세청도 관피아라는 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주류업계와 맺어진 끈끈한 인연으로 이어져온 낙하산 인사라는 지적이 ‘세피아’로 불리면서 고개를 숙인 적이 많았다. 그리고 그 질긴 인연은 여전히 동아줄처럼 탄탄하게 이어지고 있다. 물론 이와 관련 국세청 사람들은 재경부 고위직들이 금융기관 등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에 비하면 양반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것이 문제다. 적다고 별 문제 있겠느냐. 문제를 삼으니 문제지 뭐 대수냐라는 시각이 국민들을 지치고 분노케 한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국세청은 다른 부처와 달리 솔직히 겉으로 드러내지는 못했지만 그동안 ‘행피아’가 존재한다는 이야기가 직원들 사이에서는 암암리에 퍼져왔다.

국세청이 터뜨린 대형 사건들 당사자들의 면면이 대부분 행정고시를 통해 국세공무원이 된 사람들이고, 또 승진과 요직을 거치는 등 승승장구했지만 결국에는 뇌물스캔들을 터뜨려 조세정의의 보루인 국세청 조직을 흠집 내어 왔기 때문이다.

먼 과거는 언급할 것도 없다. 엊그제 까지만 해도 수천 명의 직원들 앞에서 ‘명예를 지키자. 깨끗한 공무원이 됩시다’라면서 조세정의의 파수꾼이 되자면서 목소리를 높였던 그들이 지금 검찰수사를 받고 있으며, 또 재판을 받고 영어(囹圄)의 몸이 되어있다. 아마 일일이 다 나열한다면 국세청이 뒤집어 질지도 모른다.

왜 이들은 국세청에 입문해 승승장구하며 요직을 거쳤음에도 이렇듯 조직을 망가뜨리는 사고를 쳤을까.

아마도 행정고시라는 어려운 시험을 위해 공부한다고 무던히 고생을 했을 것이다. 그것에 대한 보상이라도 바라는 마음에서 국민들에게 군림하려 했을까. 그래서 뇌물도 당당하게 받았을까. 아니면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물론 국세공무원들의 뇌물수수는 행정고시로 출세한 고위직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하위직 고위직을 막론하고 무시로 이뤄지고 있는 게 솔직한 현실이다.

그러나 행정고시로 출세한 분들을 탓하는 것은 그들은 하위직 앞에서 ‘우리 깨끗 합시다’라면서 솔선해야하고, 또 모범이 되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먼저 나쁜 짓을 했다는 데서 더 국민들을 분노케 하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까지의 잘못은 관복을 벗었거나 죄 값을 치른 사람들이 잘못한 것이다. 현재 국세청에서 근무하고 있는 분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 나쁜 선배들 때문에 때론 고개를 들지도 못하면서도 묵묵히 국가를 위해 봉직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관피아?행피아’라면서 눈총을 받는 것은 너무나 억울한 일이다. 열심히 공부해서 공직에 들어와 국가를 위해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했을 뿐인데 몇몇의 행시출신 선배들의 일탈 때문에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 한다는 점에서는 억울함마저 가질 것이다.

그러나 운명이다. 나쁜 선배들을 잘못 둔 탓이다. 2000년대 이후 국세청장을 지낸 사람들은 전부 행시 출신이었다. 그리고 국세청 내부에서 임명된 후 명예롭게 퇴직한 경우를 손꼽기가 겁이 난다. 대부분이 불명예 퇴직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지금 정부가 발표한대로 행정고시를 통한 임용을 없애거나 줄이면 된다. 그러나 이 또한 지난한 일이다. 여러 가지 찬반양론이 있다. 쉽지 않은 일이다.

국세청에서 행정고시 출신들이 출세가도를 달릴 수 있다. 잘나가는 선배들이 끌어주지 않더라도 행정고시에 합격할 정도의 두뇌라면 업무에서 성과를 나타내 승승장구 하는 것을 누구도 막을 수 없다.

그러나 문제는 국세청장을 온전히 행정고시 출신들의 전유물로만 여겨 임명해야 한다는 것은 무슨 조화인가.

국세청에서 근무하는 국세공무원은 모두 2만여 명이다. 이중 행정고시 출신은 1% 가량이다. 나머지 99%는 9급과 7급 공채, 그리고 세무대학을 졸업하고 8급으로 들어온 이들이 구성원이다.

왜 비고시출신은 국세청장이 되지 못하는 것일까. 능력이 부족해서일까. 조직 장악력이 부족해서일까. 아니면 정의롭지 못해서일까. 보이지 않게 나쁜 짓을 많이 해서일까. 그렇지 않다면 분명 뭔가 잘못된 것이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당연히 국세청장을 임명하는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잘못이다. 행정고시를 없애기 이전에 국세청장을 일반직 출신중에서 한번 임명해 보자.

1%가 99%에게 나를 따르라 보다 이제는 99%가 ‘우리 이렇게 합시다’라고 하는 그런 행정으로 한번 바꿔보면 어떨까.

행정고시에 합격해 국세공무원이 되면 승승장구 아니 ‘자동빵’으로 서기관은 단다. 그러나 9급, 7급으로 들어와서 서기관으로 승진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라고 한다. 그러니 명예보다는 중도에 사표를 던지고 돈을 쫓아 기업에 취업하거나 세무사 개업의 길로 전환하는 경우가 수두룩한 것이 현실이다.

승진과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은 더 없는 인센티브이며, 공직자로서 사명을 다할 수 있게 하는 모티브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6급주사로 생을 마감해야 하고, 여전히 1%가 ‘나를 따르라’고 외치는 조직에서 공무원이라는 명예와 자부심만으로 조세정의를 위해 분투해 달라고 주문하는 것은 무리다.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났다.

누가 이 ‘유리천장’을 깨뜨릴 수 있을까. 대통령이다. 다음 국세청장은 비고시 출신중에서 한번 시켜보자. 아니면 국세청 외부에서 수혈하는 것도 방법이다. 국세청은 국세청 사람들의 조직이 아니다. 국민의 조직, 국민을 위한 조직이다.

저작권자 © 세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