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호 참사로 ‘관피아’ 문제가 이슈로 떠오르면서 대표적 경제검찰로 불리는 국세청도 저만큼 비켜나 있지 못하다. 퇴직자들이 주류업계로 진출하는 낙하산 세(稅)피아’에 이어 이번에는 퇴직 후 유명 로펌 등에 재취업해 각종 세금 문제에 관여하면서 고액의 연봉을 받는 전직 국세청 고위직들이 손가락질을 받기 시작했다.
특히 이들을 변호사 자격증도 없이 세금의 부과와 관련해 로비는 물론 소송에도 관여하면서 이익을 챙기는 부도덕한 부류로 취급하는가 하면 입에 담지 못할 험담까지 서슴없이 나오고 있다.
그러면서 국내 10대 로펌에서 활동하는 경제부처 관료출신들만 177명이며, 이들 중 국세청과 관세청 출신을 일컫는 세피아가 절반쯤 된다면서 조세정의를 가로막을 수 있는 적폐로 부각시키고 있다.
이들 전직 국세청 고위직들이 국세청에 로비할 수 있는 것이 뭘까. 아마도 국세청이 기업에 대한 세무조사를 진행할 경우 기업들에게 자신이 국세청 시절 쌓은 세무조사에 대한 노하우를 전수하면서 댓가를 받는 것일 것이다.
세무조사에 로비가 통할까. 로비가 통한다고 할 때 로펌으로 진출한 국세청 고위직들을 세피아로서 척결대상이라고 하는 게 맞다. 그런데 이들이 세무조사와 관련 국세청에 로비를 벌여 성사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아직까지 들어본 적이 없다. 물론 이들이 로비를 벌이는 대상인 세무조사 정보가 원천적으로 국세청의 최상급 비밀이라는 점에서 기자로서는 알 길이 없어 아예 로비가 없다고 단정할 수도 없지만.
하지만 지금까지 대형로펌이나 회계법인, 세무법인 등으로 진출한 전직 국세청 관료들이 세무조사와 관련해 로비를 벌여 납세자들에게 추징된 세금을 줄였고, 또 소송을 할 수 없는 데도 소송에 참여해 변호사법을 위반했다는 뉴스를 접해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아마도 이들이 세금과 관련해 소송에 참여했다면 세무사 자격으로도 가능한 ‘심사나 심판청구’ 같은 납세자 권리구제활동이었을 것이다.
솔직히 기자가 그동안 국세청과 그리고 세무조사와 관련해 접해온 ‘적폐’는 전직들이 아닌 모두 ‘현직들의 문제’였다.
현재 영어의 몸이 되어있는 두 국세청 수장의 경우 자신들이 현직 시절 잘못을 저질러 죄 값을 치르고 있는 것이며, 또 세무조사를 한 업체로부터 뭉텅이 뇌물을 받아 챙긴 세무조사 요원들, 현재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전직 지방국세청장 등 모두가 현직 시절 세무조사라는 ‘괴물’의 힘을 믿고 목에 힘을 주었고,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오면서 국민들로부터 세정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렸다.
‘세무조사를 무마해 줄 테니 얼마를 달라. 세무조사 때 잘 봐 줄 테니 취임 축하금을 달라. 그리고 세무조사중인 업체로부터 스스럼없이 뇌물을 받아 챙기는 등’ 현직들의 비루한 일탈행위가 문제였지 퇴직 후 부패에 가담해 크게 문제가 되었던 적은 많지 않았다. 물론 통상적 수준을 넘어선 연간 수억 원의 고문료를 받아 사회적 지탄을 받는 경우는 있었다.
세금의 부과행위는 고도의 지식이 필요한 분야로 꼽힌다. 그리고 그동안 국세청은 막강한 과세권력을 믿고 솔직히 부실과세를 해온 경우도 없지 않았다. 납세자 입장에서는 참으로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럴 때 납세자들은 어디에다 하소연을 해야 할까.
법보다 가까운 것이 주먹이라고 하듯이 로펌에 협조를 구하면 즉시 해결보다 기나긴 소송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당연히 우선 급한대로 세무조사 현장에서 경험과 이론으로 무장한 전직 국세청 사람들을 앞세워 권리를 보호받고자 하는 것이 인지상정일 것이다. 지금까지 그 일을 해 온 곳은 로펌과 회계법인들의 세무팀도 있고, 또 세무법인도 있으며, 조그만 개인 세무사사무실을 차려 납세자들을 조력해온 경우도 있었다.
다시 말해 지금 대한민국 국세행정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세무조사는 적지 않은 부분에서 분명 다툼의 소지를 낳고 있으며, 국세청의 부당한 과세와 일단 과세해 놓고 보자는 어거지 과세에 대해 현장에서 제동을 걸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것을 이론과 경험을 가지고 있는 전직 국세청 사람들이 할 수 있다면 오히려 다행이다. 그리고 납세자들 또한 로펌의 변호사들보다 이들 전직 국세청 간부들을 선호하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이들 모두가 청렴하고 조세정의를 위해서만 납세자들을 조력 한다고는 여기지 않는다. 일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돈 몇 푼 집어주고 세무조사를 무마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조족지혈’이다.
세무조사가 나오면 기업들은 먼저 심장이 덜커덩 출렁이는 것이 사실이다. 이때 전직 국세청 사람들이 옆에서 조언을 해주고, 또 억울하게 과세되는 것을 예방해 준다면 오히려 이런 로비스트들은 권장하는 게 맞다. 즉 국세청에서 퇴직 후 로펌 등으로 가서 납세자들의 세금문제를 컨트롤 하는 것을 ‘관피아’라고만 재단하는 것은 지나친 면이 없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세무조사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면서 뇌물을 요구하고, 또 정치적 세무조사를 자행해 왔다고 비판 받아온 상황, 그리고 푼돈 받고 선배 세무사가 봐달라고 슬쩍 봐줄 수 있는 지금의 세무조사 시스템과 현직 조사요원들의 공직자로서의 자세와 양심이 문제지 로펌에 취업한 전직 관료들을 싸잡아 세피아로 몰아 비난하는 것은 번지수가 틀리지 않았나 싶다.
국세청에서 고위직으로 퇴직한 관료들의 적폐라면 로펌에 취업해 고액의 연봉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방청장이나 세무서장으로 재직했던 시절 관내의 기업체와 퇴직 후 곧바로 부적절한 고문계약을 통해 아무 일도 해 주는 게 없으면서 1~2년간 받아 챙기는 ‘고문료’ 관행일 것이다. 무엇보다 하루속히 척결해야 할 비정상의 ‘세피아’ 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