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최소한 한번, 정부는 경제적・사회적 현상의 변화와 운영 과정에서 발생한 불합리한 조항을 바로잡기 위해 세법개정안을 내놓는다. 9월 정기국회 통과가 목표다. 개정안이 발표되면 옳고 그름을 놓고 온 나라가 시끌벅적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지난달 말 발표된 `23년 세법개정안에 대한 논란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과거의 전례에 비해서다. 특히 정쟁으로 치달을 만한 내용이 없는 모양이다. 기획재정부(세제실)가 개정안을 만들면서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 논란을 피하기 위해 정치적 판단을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작년엔 세법개정안이 발표되자 단연 법인세율 인하안을 놓고 여의도 정가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런데 올해는 정치인들의 구미(비판적 시선)에 맞는 개정안이 없다는 점에서 예년에 비해 조용히 넘어갈 것 같다. 한가지 있다면 부모들이 자녀들의 결혼을 위해 자금을 증여할 경우 1억5천만원까지 비과세해주겠다는 일명 ‘혼인 증여재산 공제’안이 일부 이야기꺼리가 되고 있다.

정부는 작년 세법개정 당시 법인세율을 3%P 인하하자는 안을 들고나오면서 야당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겨우 ‘1% 인하’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당시 여당과 정부는 3%는 인하되어야 기업들의 투자의욕이 살아날 것이라면서 매우 강하게 밀어부쳤다. 그러나 거대 야당의 공세에 맥 못추고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작년에 정부와 여당이 주장한 3%인하안이 국가경제를 위해 그토록 필요한 것이었다면 올해도 내리자는 안을 내어놓았어야 옳다. 물론 세율을 고무줄처럼 매년 이랬다 저랬다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지만 작년의 주장이 진정 나라를 위해 옳은 것이었다면 올해도 내리자고 제안했어야 한다고 본다. 그것이 진정성이다. 그런데 정치적 논란이 될 것을 우려해서인지, 고무줄 세법을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것 때문인지, 작년의 기세는 온데 간데 없었다.

또 한가지, 정부는 오랫동안 논란이 되어온 상속세제 개편을 하겠다면서 ‘상속세 유산취득 과세 TF’까지 구성해 검토했다. 그런데 이 내용도 쏙 빠졌다. 그간 정부가 검토해온 대로 상속세 과세방식을 ‘유산취득형’으로 바꿀 경우 세수가 1조원가량 줄어든다는 속내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의 경우 세수가 수십조 원 펑크가 나는 마당에 1조 원의 세수는 크다. 그래서 기재부가 알아서 뺐다는 말도 나온다. 여기에 또 상속세 개편으로 세수가 줄어든다는 것은 ‘부자들의 세금을 줄여준다는, 부의 대물림을 조장한다는’ 정치적 공세가 가능한 대목이라는 점에서 제외했을 수도 있다는 말도 나온다. 올해 세법개정안은 철저히 정치를 비껴가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한 부분이다.

그런데 왜 결혼자금 세액공제(최대 1억5천만원)는 자칫 더 큰 정치적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간파하지 못했을까. 아니면 진짜 모르는 것일까. 이 문제는 부모가 자녀들이 결혼할 경우 ‘결혼자금을 준다는 것과, 줄 수 있는 돈이 없다’는 것의 이분법적 문제에 봉착한다. 즉 계층간의 위화감이다. 또 받을 수 있는 청년과 받을 수 없는 현실에 서있는 청년들의 상대적 발탁감도 있다. 지난해 대선에서 청년(靑年)들과 청여(靑女)들을 갈라놓더니 이제는 세금을 꺼내어 청년들 전체를 부자(富者)와 빈자(貧者)로 나누어 갈라치기를 한 꼴이 되었다.

자식이 결혼할 때 수천만원(1억5천까지)을 증여할 수 있는 부모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 현금을 줄 수 있는 부모라면 분명히 부자들일 것이다. 결국 받지 못하는 청년들은 상대적 박탈감에 빠질 수밖에 없다. 아마도 분노 게이지가 폭염이상으로 달아오를 수 있다. 그리고 ‘묻지마 몸부림’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누구는 1억5천을 공짜로 받고, 누구는 한 푼도 못 받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일 것이다. 그래서 세금은 언제나 공평하고 또 공평해야 한다는 것이 지고지순한 가치다.

이 정책을 낸 기재부의 생각은 이랬을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국난(國難) 수준의 출산율 저하를 겪고 있다. 이 국난을 막기위해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자는 차원에서 결혼할 수 있는 청년들이 좀 더 빨리 결혼하게끔 하고, 그들이 한 명이라도 더 출산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는 취지일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지금 빈청(貧靑)과 부청(富靑)을 갈라치기 할 것이라는 것은 미처 생각지 못한 모양이다. 아마도 내년 총선에서의 청년들 투표성향도 빈청과 부청으로 나뉘어 지는데 일조할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이번 개정안은 정치적으로 득보다 실이 더 많다고 본다. 물론 정부와 여당쪽에 말이다.

과거 노무현 정부에서 부동산 정책을 세금으로 밀어붙이다 집값만 천정부지로 올려놓고 실패했다. 그리고 정권을 내어주었다. 그리고 10년 후 들어선 문재인 정부 역시 23번의 부동산세금정책을 내놓으며 악전고투했으나 역시 집값만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올려놓고 실패했다. 그리고 정권을 빼앗겼다. 그러는 사이 많은 청년들은 집 장만은커녕 전셋집 하나 얻지 못하고 쪽방살이해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이번에는 출산율을 세금제도로 돕겠다면서 희한한 세액공제를 꺼내어 빈청들의 가슴에 불을 지르고 있는 모양새다. 결혼자금으로 증여세를 낼 일이 없는 부모들은 미어져 오는 가슴속 피멍을 참아낼 수 있다. 그러나 청년들은 아직 그만한 인내가 영글지 못했다.

세금은 무엇보다 공평(公平)해야 한다. 그런데 그 정책이 부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그것은 세금이 아니라 악귀다. 청년들을 빈청과 부청으로 갈라치기해서는 안된다. 청년들이 결혼을 할 수 있게끔 하려면 장기저리융자 같은 정책을 내야한다. 부동산 폭등을 잡는 방안 중 특효약이 금리인상이듯이 지금 청년들에겐 부자들에 대한 세액공제가 아니라 모든 청년들이 수혜받을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빈청이든 부청이든 공평해진다. 그리고 빌린 원금을 값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부모의 재산만 쳐다보는 게으른 청년 또한 사라질 것이다.

그래서 이번 개정안은 다분히 나쁜 의도가 숨겨져 있다는 냄새가 심하게 난다. 그렇지 않다면 정치적 감각이 너무 무딘 것이다.

덧붙이면 이 정책은 정치를 떠나 세법적 측면에서도 불합리하다. 혼인 후의 여러 가지 사정으로 혼인이 유지되지 못할 수도 있다. 이 경우 개별적인 사유를 검토해 과세할 수 있지만 결혼 후 이미 소진해버린 혼인자금에 대해 소급과세의 잣대를 들이대야 하는 불합리성이 존재한다. 또 세액공제는 혼인신고만으로 결정될 터인데 형식적인 혼인일 경우 실제 혼인여부를 가려내기도 어렵다. 나아가 결혼에는 재혼, 삼혼도 있다. 초혼에 대해서만 공제를 한다면 이 또한 사리에 맞지 않는다.

세법의 개정은 모름지기 개인적 사정에 의한 것보다는 지극히 보편적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아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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