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경기 좋을 때 돈 모아두고, 나쁠 때 쓰는 원칙 국가부채가 30% 아래로”
“독일, 빚내는 것 헌법으로 제한 '채무브레이크' 도입해 재정건전성 획기적 개선”
한국형 재정관리 제도로 △적정 지출 증가율 도입 △위기 대응 예외조항 마련 △독립 재정평가원 설립 △재정 투명 보고서 정기발간 등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한국재정학회는 30일 프레지던트호텔 19층 브람스홀에서 ‘경기대응과 재정의 지속가능성 확보 방안’을 주제로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이태석 한국개발연구원 재정·사회정책연구부 선임연구위원은 ‘경기대응과 재정 지속가능성 확보를 위한 주요국 재정정책 분석’ 발표에서 “인구감소와 잠재성장률 하락,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 등 대외 불확실성에 직면한 한국경제가 구조적·외생적 리스크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단기적 유연성과 장기적 건전성이 조화된 '준칙적 유연성'을 갖춘 새로운 재정제도 설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태석 선임연구위원은 한국경제의 세 가지 위험신호로 저출산·고령화, 경제성장 둔화, 트럼프발 무역장벽 등을 꼽았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일할 사람은 계속 줄어드는데, 연금과 의료비는 계속 늘어나 `25년 현재 세금 내는 사람보다 세금 필요한 사람이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이고, 한국경제 성장률이 2%대 아래로 떨어져 저성장 시대에 진입한 지금, 정부 세수는 줄어들지만 지출 수요는 오히려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미국의 관세정책 강화와 미중 갈등이 수출에 의존하는 한국경제에 직격탄이 될 수 있어 언제 닥칠지 모르는 경제 위기에 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19 대응과 복지확대로 정부 지출이 크게 늘었고 일시적 지출이 고정비용이 돼 버렸다”며 “`24년 국가채무비율 46.1%는 다른 나라보다 낮지만, 증가 속도는 OECD 국가 중 가장 빠르다. 10년 전만 해도 30%대였던 것을 생각하면 위험 신호”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제위기가 오면 정부가 쓸 '비상금'을 미리 확보할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경기가 나쁠 때 지출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그는 “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돈을 풀어 국민 생활과 기업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지금 너무 많은 빚을 내면 우리 아이들이 갚아야 하므로 미래세대에게 과도한 부담을 물려주지 않으려면 관리가 필요하고, 선거철만 되면 '퍼주기'가 반복되는 악순환에서 벗어날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해외 사례로는 “스위스는 경기가 좋을 때 돈을 모아두고, 나쁠 때 쓰는 원칙을 법으로 정했더니 국가부채가 30% 아래로 떨어졌고, 스웨덴은 3년 후 지출 한도를 미리 정해두고 GDP의 0.33%는 항상 흑자로 남기는 철저한 관리로 90년대 금융위기를 완전히 극복했다”고 밝혔다.
이어 “독일은 빚내는 것을 헌법으로 제한하는 '채무브레이크'를 도입해 재정건전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했으며, 네덜란드는 물가상승 등을 고려한 실질지출 상한선을 정하고, 독립기관이 검증하는 신뢰성 높은 시스템을 운영하고, 아일랜드는 금융위기로 무너진 재정을 엄격한 규칙으로 관리해 놀라운 회복세를 보였다”고 말했다.
성공하는 재정관리의 비결로는 △1년 단위가 아닌 5~10년 단위로 재정을 계획 관리하며 △경제위기나 재난 상황에는 일시적으로 규칙을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는 '비상문' 규정을 두고 △정부와 독립된 전문기관이 객관적으로 재정을 감시하고 평가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재정 상황과 전망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정권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도록 정치권의 초당적 합의가 뒷받침된다고 덧붙였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한국형 재정관리 제도로 △‘정적 지출 증가율’을 도입해 인구변화와 경제성장률을 고려한 합리적인 지출 증가 한도를 설정하고 △‘위기 대응 예외조항’으로 심각한 경제위기나 재난 상황에서 한시적으로 규칙을 완화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독립 재정평가원’ 설립으로 정부와 분리된 독립기관이 재정운용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감시하고 △‘재정 투명성 보고서’ 정기 발간으로 국민이 이해하기 쉽게 재정상황과 전망을 정기적으로 공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국가재정은 가계부와 같다. 급할 때 쓸 돈은 필요하지만, 빚을 너무 많이 내면 결국 우리 아이들이 갚아야 한다”며 “인구감소와 저성장, 대외 불확실성이라는 삼중고에 직면한 대한민국은 지금 재정의 '황금비율'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치적 이해관계를 넘어선 장기적 안목의 재정관리 체계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