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인사에서 민주원 인천국세청장이 본청 개인납세국장으로 이동하면서 ‘지방청장은 당연퇴직’이라는 국세청 고위직 인사의 패러다임에 변화가 생기게 됐다.
세정가에서는 이 같은 지방청장→본청 국장으로의 이동이 국세청 명퇴제도에 대한 재검토를 예고하는 것 아니냐는 빨간색 주석까지 덧붙이고 있다.
그동안 국세청은 지방청장까지 승진하고 나면 1년 후 후진을 위해 '당연 명퇴' 수순을 밟아왔다. 실제로 현 김창기 국세청장도 과거 이 같은 순서를 밟고 퇴직한 바 있다.
본청 국장이었던 김창기 청장은 1급으로 승진하면서 중부청장을 6개월, 부산청장을 6개월 지내며 ‘1급 1년’의 임기를 채우고 그대로 퇴직했다. 퇴직 반년 만에 윤석열 대통령의 부름을 받고 국세청 역사상 최초로 퇴직자의 국세청장 임명이라는 기록을 새로 쓰긴 했지만, 그는 이미 지방청장 1년 이후 명퇴라는 선배들의 길을 그대로 밟았었다.
그러나 국세청은 1급 1년 이후 용퇴라는 관행처럼 굳어진 인사패턴에 변화의 모습을 이미 드러내고 있었다. 1급으로 1년을 채웠지만 퇴직하지 않는 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스타트는 문재인 정부 마지막 국세청장을 지낸 김대지 전 청장이었다. 김대지 청장은 부산청장(`18년)에 이어 국세청 차장(`19년)까지 1급만 2년 2개월 가량을 지냈다. 임광현 차장은 서울청장(`20년)에 이어 차장(`21년)까지 역임하면서 1급만 1년 10개월을, 현 김태호 차장도 `22년 7월 임명돼 이미 1년을 넘기고 있다.
서울청장 중에서는 임광현 청장이 서울청장(`20년)에 이어 국세청 차장(`21년)을 지냈고, 임성빈 청장이 부산청장(`20년)에 이어 서울청장(`21년)까지 지내며 이들은 1급만 1년 10개월을 지냈다.
특히 현 강민수 청장은 이미 대전청장(`21년)을 1년 지냈지만 서울청장(`22년)으로 1급 승진을 이뤄냈고, 한 차례 유임되면서 서울청장으로 1년이상 재임 중인 상황이다.
이처럼 지방청장을 한차례 지내고도 장기간 근무하는 이들이 하나 둘 늘어났고, 지방청장→본청 국장으로의 이동이라는 새로운 인사패턴을 생산하면서 고위직 ‘인사 원칙’에 대대적인 변화가 이어지고 있다. 다만 차장, 서울청장, 부산청장 등은 고공단 가급이라는 점에서 고공단 나급인 본청 국장으로의 이동은 어려울 수 있으나, 정년 2년 전에 명퇴하도록 하는 국세청의 ‘명퇴 문화’에도 충분한 변화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동안 국세청 고위직들은 선배들이 2년 일찍 관복을 벗어준 덕분에 압정형 구조에서도 고위직으로 승진할 수 있었던 혜택을 받아온 만큼, 자신 역시 후배들을 위해 2년 먼저 옷을 벗는 명예로운 퇴직에 동참해 왔다. 그러나 최근의 사례처럼 지방청장 이상의 고위직에서도 1년 뒤 퇴직하지 않는 이들이 늘어난다면 ‘세무서장만 명퇴하라는 것이냐’는 불만이 나올 수도 있다. 지방청장도 퇴직하지 않는데 세무서장에게만 이른 명퇴를 강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본청 국장으로의 이동 행보가 앞으로 명예퇴직 기간을 채우는 새로운 바람으로 작용하게 될 것인지, 승진을 기다리는 후배들에게 인사 적체 문제로 이어지게 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2001년 이후 임용된 세무공무원에게는 ‘세무사 자동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 공직 퇴임 이후 세무사로 제2의 인생을 새롭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명퇴를 유도하는 중요한 방책이었으나 이제는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세대19기, 행시44회, 70년 초반생의 7급 및 9급 공채들은 세무사 자동 자격이 주어지지 않고, 행시 출신의 경우 이미 46회 등이 서울 시내 세무서장 등을 역임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는 세무서장들도 ‘강퇴’라고 불리는 ‘명예퇴직’에서 자유로운 날이 올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