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진 바라는 2만여 국세공무원…세무서장 자리 133개 승진할 자들로 채워야
국세청은 세무조사권에서 나오는 힘으로 인해 4대 권력기관으로 분류된다. 그래서인지 국세청에도 법조계의 묶은 구태인 '전관 특혜'가 존재한다. 그 구태 중 대표적인 것이 ‘세정협의회’였다. 몇년 되지는 않았지만 현재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긍정적 역할론도 있었던 세정의 소통창구도 같이 사라지게 됐다.
세정협의회는 ‘일선 세정의 소통창구’ 역할을 톡톡히 했다. 전국 130여개 세무서는 납세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기업 하기 좋은 세정환경 조성을 위해 협의회원들과 꾸준한 만남을 가져왔다.
하지만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시기, 세무서장이 관내 기업체가 소속된 세정협의회 회원들과 ‘퇴직 후 고문료’를 받는다는 고문료 창구 의혹이 제기되면서 불명예를 뒤집어쓰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21년 5월 18일, 퇴직을 한 달여 앞둔 서울의 한 세무서장은 세무서 체납징세과장과 함께 관내 납세자 2명이 참석한 세정협의회를 진행 중이었다.
이날 이 세무서 관내 업체였던 한 제약사 대표가 자리했다. 업무시간에 술이 있었다는 점도, 방역 수칙 위반이라는 점도 문제였지만, 이 업체가 당시 세무조사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각종 의혹이 불거졌다. 특히, 이 제약사는 세정협의회 회원사도 아니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더욱 논란이 됐다.
국세청 측에서는 관례적인 세정협의회 모임이었다고 해명했지만, 결국 수사에 접어들며 세정협의회가 퇴직 세무서장들의 뇌물 창구로 이용된다는 의혹과 함께 부적절하다는 이유로 폐지됐다. 국회 국정감사에서 지적이 나왔고, 그 자리에서 당시 국세청장이 약속하면서 현실화 됐다.
`21년 말 로비 창구로 악용된다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세정협의회가 폐지됐지만, 사실상 이 세무서 외에 다른 세무서 비리 사실은 조사하지 않았고 폐지만으로 끝나면서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도 나왔다.
폐지 후 3년 차에 돌입하면서 세정현장에서는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을 경찰서 등 다른 기관들은 다 아는데 세무서만 모르고 있다’는 푸념이 하나 둘 흘러나오고 있다.
경찰이나 소방 등 지역의 경찰발전협의회, 소방발전협의회, 생활안전협의회 등이 있어 지역 내의 사업가나 지식인, 의료인, 법조인 등 각계 계층의 대표들이 모여 활동하면서 정보를 교환하고 협의를 하지만 유독 세무서만 이러한 민간과의 소통창구가 사라진 셈이다.
물론 국세청도 처음부터 세정협의회를 폐지할 생각은 없었다. 70년대부터 민간과의 소통 창구로 이용돼 온 만큼, 부적절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다각적인 방안을 검토해 보겠다는 입장이었다. 당초 설치 취지도 ‘국세청과 납세자 간의 대화를 통한 협조 풍토를 조성하고 회원상호간의 친목과 업무 연락을 긴밀히 하기 위해 일선세무서 단위로 설치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관행적으로 세무서 과장이나 서장에게 퇴직후 고문료가 흘러간다는 것과 해당 기업으로 취업한 사실이 다수 폭로되면서 폐지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특히 강남권 세무서의 경우 고문료가 월 수천~수억 원에 달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결국 세정협의회는 폐지되었고, 세무서들은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는 듣지 못한 채 일선 세정이 탁상행정으로 돌아간다는 지적과 세무 비리가 더욱 은밀해질 것이라는 우려섞인 비판도 나오고 있다. 현 시점에서 납세자와의 진정한 ‘쌍방향 소통’을 할 수 있는 공개된 자리를 마련돼야 한다는 주문인 것이다.
그러면서 세무서장 자리에는 ‘퇴직예정자’들을 앉히지 않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는 대안도 제시되고 있다. 세무서장 자리에서 명퇴해 관내에 세무사로 개업해 먹고사는 것이 문제라면, 세무서장 직위에 퇴직자가 아닌 앞으로 승진하기 위한 자들로 채워 넣으면 될 일이라는 것.
국세공무원의 수는 2만명이 넘었고, 세무서장 자리는 단 133개뿐이다. 실제로 개업하기 좋은 강남지역의 경우 세무서장으로 발령을 받으면 대부분이 해당 자리에서 퇴직하고 또 그 자리에서 개업하는 것이 현실이다.
일선 세무서가 제대로 돌아가려면 개업을 앞둔 고참 서기관들이 아닌 참신한 인물들을 채워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않다. 지난 16일 인사청문회를 마친 새 국세청장 후보자의 첫 세무서장 인사에 관심이 모아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