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명하복‧폐쇄적 조직문화’ 신규직원들은 퇴사하고

‘세무사시험 면제 폐지’에 세정협의회마저 없어지고

“다른 직렬에 합격했다면 오지 않아야 할 곳.”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 기업 리뷰에 적힌 국세청 리뷰다. 해당 리뷰를 남긴 국세청 직원은 국세청의 장점으로 월급이 밀리지 않고, 10년 근무하면 세무사 1차 시험이 면제되는 점을 꼽았다.

두 개뿐인 장점이지만, 그마저도 ‘월급이 밀리지 않는다’는 것은 공무원 전체에 해당하므로 사실상 국세청의 매력은 ‘세무사 1차 시험 면제’뿐이다. 5급 이상 직급을 유지한 기간이 5년 넘으면 2차 시험의 일부 과목도 면제된다.

블라인드의 기업리뷰 만점은 5.0점이다. 평점 1.0인 기획재정부, 관세청, 경찰청 등과 비교해 국세청의 평점이 2.0점으로 다른 부처보다 높은 이유도 ‘퇴직 후의 삶’이 반영돼 있음이다.

현재 국가 전문 자격 176종 가운데 15종에서 공직 경력자에게 1·2차 시험의 전 과목 또는 일부 과목 시험을 면제해 주고 있다. 하지만 지난 `21년 제58회 세무사 2차 시험에서 82%가 넘는 응시자가 과락했지만 세무공무원은 해당 과목이 면제라 국세공무원에게 특혜를 준 것이라는 논란이 일었다.

게다가 공직 생활 중 징계를 받았어도 세무사시험 면제 특례를 받는 데는 문제가 없다. 결국 이 같은 논란이 계속되자 최근 국민권익위원회는 전문자격 15종 시험에 있는 공직 경력자 면제 제도를 모두 폐지할 것을 해당 부처에 권고했다.

공무원에 대한 특례는 전관예우와 퇴직공무원-현직 공무원과 유착고리를 형성하는 악순환만 반복되므로 부정부패를 끊어내기 위한 조치인 셈이다.

◆ 업무 매뉴얼도 없고, 워라밸도 없는 국세공무원 생활

해당 국세청 리뷰를 작성한 직원은 국세청의 단점으로 △업무매뉴얼이 없다 △워라밸이 없다 △민원인 상대가 힘들다 △조직문화가 구시대적이다 등의 단점을 남겼다.

실제로 국세청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업무매뉴얼’이라고 할 수 있다. 일례로 지방청 조사국으로 발령받으면 조사 노하우가 하나도 없어 처음부터 개인의 역량으로 쌓아야 한다. 일반 사기업에서는 자리를 거쳐 가는 이들이 업무의 프로세스나 노하우를 적립해 가는 식이라면, 국세청에서는 ‘납세자 개인의 과세정보’ 등의 이유로 세무조사 업무 노하우가 적립되지 않고 처음부터 다시 쌓아가는 식이다.

국세청은 “조세 전문가의 조력과 더불어 날로 고도화하고 조직적인 탈세 수법”이 문제라고 말하지만, 대형 로펌이나 세무회계법인에게 계속 패소하는 데는 그럴 수 밖에 없다는 조직구조의 특징이다.

◆ “내가 내는 세금으로 이 정도도 못해?”…민원인 상대 힘든 국세공무원

민원인 상대가 힘들다는 점도 큰 문제다. 기본적으로 세무서를 찾는 이들은 세금을 내기 위한 이들이다. 부가가치세의 경우 최종 소비자로부터 잠시 맡아두는 세금이라 업주가 내는 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내 돈을 빼앗아 간다’며 체납을 밥 먹듯이 하는 경우도 있다. ‘내가 내는 세금으로 이 정도도 못하냐’라던가, ‘내가 내는 세금으로 월급 받는 주제에’라는 레퍼토리는 이제 식상할 정도다.

이렇듯 애초에 기분이 상한 채로 방문하는 이들의 경우 ‘법대로 처리하는’ 세무공무원들에게 불만을 표출하는 일은 자주 일어난다. 심지어 세무서장실에도 흉기를 들고 찾아가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7~9급 직원들이 당하는 수모는 더 클 수밖에 없다.

지난 `23년 동화성세무서 민원봉사실장 강모 사무관도 민원 응대 과정에서 민원인과의 마찰이 빚어졌고 쓰러져 결국 사망하게 된 사건이 있었다. 해당 사건은 모욕죄 혐의로 재판이 열렸지만, 민원인은 ‘건강이 안 좋다'며 재판에 출석조차 하지 않았다. “꼭 민원인의 사과를 받고 싶다”던 유족들의 바람은 이루어졌을까.

게다가 강 사무관의 배우자 역시 8개월 만에 별세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며 악성 민원 근절을 기대했던 2만여 공무원의 아픔은 더욱 깊어졌다.

해당 민원이 발생한 원인도 민원인이 부동산 관련 서류를 깜빡하고 가져오지 못하면서 발생한 일이다. 서류가 없으면 안 되는 일을, 해달라고 직원과 옥신각신하다 ‘윗사람을 불러오라’는 요구에 강 사무관이 나섰다가 일어난 일이라고 한다. 강 사무관은 전국 민원 실장 평가에서 2등을 한 23년 경력의 베테랑 직원이었다.

이후 국세청은 녹음기, 직원 전용 출입문 설치 등 별도의 안전장치를 마련했다고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 대책은 없다는 것이 현장의 지적이다.

◆ '이직, 퇴직'으로 이어지는 악순환

이 외에도 상명하복, 폐쇄적인 조직 문화 등에 적응하지 못하고 수많은 신규직원이 퇴사하고 있고, 여러 이유로 승진에서 밀리며 퇴직 후 세무/회계법인, 로펌 등으로 이직하고자 하는 이들의 수도 늘어나고 있다. 문제는 이들의 이직 시점이 국세청 조직의 ‘허리’라는 점이다. 실무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들의 유출이 국세행정 전체적으로 두고 봐서 좋은 점이 없다.

내부에서는 지방직 공무원으로 이직할 기회가 생기면 마다할 이들이 없다고도 한다. 국세청 공무원은 2년마다 근무처를 옮겨 다녀야 하고, 승진을 위해서는 거주지와 먼 곳에서도 지내야 하는데 본청마저 세종으로 이전해 안정적인 생활을 위해서는 지방직공무원이 훨씬 매력적이라는 것이다.

국세청은 세금을 징수하는 기관이지만 학자금상환, 근로·자녀장려금 등 복지업무도 담당하고 있어 업무 자체도 과도하다는 지적이 많다.

◆ 인재 유출=조세정의의 상실이다

또한, 승진적체도 문제다. 2만여 국세청 직원의 대다수는 비고시 출신이고 전체의 92%가 6급 이하의 하위직이다. 5급 이상으로 승진해 고위직까지 올라가는 이들을 ‘희망사다리’라 불렀다. 하지만 현재 국세청 고공단 42명 중 5명(11.9%)만이 비고시 출신으로 그 비중이 작아 승진을 포기하는 이들도 늘어가고 있다.

이처럼 승진을 포기하는 비고시가 늘어갈수록, 국세행정 중 가장 중요한 업무인 ‘세무조사’에도 문제가 생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방청 조사국에서 실무를 맡는 팀장 직위에 노련한 베테랑이 오는 것이 아니라 신참 고시 출신밖에 임명되지 않아 업무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인터넷으로 국세청 내부 실상이 퍼지며 국세청의 인기는 더욱 떨어지고 있다.

지난해 국가공무원 9급 공채 일반 세무직 합격선은 78점으로 교정직, 보호직과 함께 하위권에 머물렀다. 일반 행정직 전국 평균은 89점이었다. 세무직은 전문직으로 매년 바뀌는 세법으로 전문성을 유지해야 하지만, 악성 민원에 시달릴 가능성이 매우 높아 기피 대상으로 꼽히고 있다.

올해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24년 국가공무원 9급 공채 경쟁률을 보면, 세무직(일반)은 1023명 선발 예정 중에 응시인원은 7947명으로 7.8:1 경쟁률을 기록했다. 관세직은 15:1이었다. 교정직의 경우 교정직(남) 8.4:1, 교정직(여) 12.1:1로 교정직 경쟁률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5년 전인 `20년 24.7:1이었던 경쟁률과 비교하면 △68.42% 급감했다.

‘엘리트 조직’이라던 과거와 다르게 앞으로의 세대에게 외면받는 조직이 된다면, 세무공무원의 실력은 하락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된다면 탈세는 더 활개 칠 가능성이 높다. 시장에서는 변호사, 회계사, 세무사 등 전문 조력인들로 무장하고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국세청의 입장이 불리해진다. 이렇게 되면 조세정의가 무너지는 일도 대비를 해야 한다.

앞으로 국세공무원으로 입사할 새로운 세대에게 국세청 공무원으로 자긍심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일도 시급한 과제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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