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장의 임기를 2년으로 해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보장한다.”
지난 `99년 국세공무원법 제정이 정부 주도로 이루어졌다면, 이후 국회에 발의된 국세청법의 제정은 정치권의 주도로 시작된다. 당시 엄호성 한나라당 의원은 국세청법 제정안에 국세청장의 임기를 2년 단임으로 할 것을 명시했다.
국세청장의 임기를 보장한다고 해서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이 완벽히 보장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국세청법이 추진된다는 것은 많은 의미가 담겨있었다. `99년도 추진된 국세공무원법에는 타 부처 공무원보다 많은 보수를 줘야 한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 무산됐다. 금전적 유혹에서 벗어나려면 더 많은 보수를 줘야 한다는 것이 타 부처 공무원들의 입장에서는 불만이 있었고, 금품수수 비리는 공직자의 기본 태도의 문제라는 것이었다.
당시 권오규 재경부장관은 국세청법 제정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과연 국세청법까지 제정해 운영할 필요가 있느냐며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반면 전군표 국세청장은 자신의 인사청문회에서 국세청의 중립성 보장과 국세공무원의 전문성·청렴성 강화를 위해서는 국세청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밝히면서 의견이 대립했다.
국세청장 임기를 보장하는 법안이 나온 데에는 이주성 전임 청장이 국회 상임위 보고한 날 바로 사임을 발표해 정치적 외압 의혹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전군표 청장이 바통을 이어 국세청장에 취임했지만, 청렴성 강화를 위해 국세청법 제정이 필요하다던 전 청장은 `07년 8월 당시 정상곤 부산청장으로부터 인사 청탁의 명목으로 거액의 뇌물을 상납받으면서 구속, 불명예 퇴진했다.
정상곤 부산청장이 건설업자로부터 세무조사 무마와 관련해 1억원을 받았고, 이를 전군표 청장에게 5차례에 걸쳐 6000만원을 전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세청 개청 이후 수장이 구속되는 최초의 사건이었다. 또한 정치적 외압 논란이 있던 이주성 청장도 프라임그룹 백종헌 회장으로부터 청탁의 대가로 20억 상당의 아파트를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이후 강만수 기재부 장관 후보자도 인사청문회에서 국세청의 정치적 독립과 중립성 보장 문제는 법 제도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며 ‘신중해야 한다’고 밝혀 사실상 반대 입장을 펼쳤다.
◆ 청장의 비리에 이어 대통령의 하명 조사 의혹까지
물론, 국세청법 제정이 청장 임기만을 위한 추진은 아니었다. 당시 국세청법 제안 이유를 살펴보면 ‘과거 언론사 등의 세무조사와 같이 국가권력의 정치적 의도와 필요에 따라 자의적 세무조사를 진행했다는 의혹을 받았다’고 설명하고 있다.
김대중 정부에서 국세청은 `01년 2월부터 5월까지 서울청 조사1국~4국을 모두 동원해 중앙 언론사 23개에 대한 세무조사를 대대적으로 실시했다. 세무조사에 대해 언론사들은 정권 차원의 언론사 길들이기의 가능성을 의식하고 공정하고 투명한 세무조사를 요구했다.
특히 야당에서는 정기조사가 아닌 사실상 정권의 특별조사라고 반발하기도 했다. 이에 안정남 당시 국세청장은 국회 업무보고에서 중앙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에 이어 지방 언론사에 대해서도 조사 필요성을 검토 중이라며 언론사 길들이기 의혹에 대해 일축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언론사 세무조사는 국세청의 정치적 세무조사 중 하나로 인식되는 사건으로 남았다.
이 같은 상황에서도 국세청법은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국회 전문위원도 국세청법 제정에 허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국세청장의 임기가 보장된다고 하더라도 정치권력과의 친분관계나 퇴임 후의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중립성에 어긋난 행위를 하려 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으리라는 것. 또, 청장 임용자격을 국세공무원 1급으로 한정하는데 이는 정무직이 외부 출신에 개방되어야 한다는 원리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국세청에 대한 감독·감시 조항이 없다는 점 등이 부정적 요인으로 꼽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