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후반, 국세청의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받던 한 선박회사의 사장이 자신의 회사에서 투신하여 목숨을 잃은 사건이 있었다. 당시 그는 뒷날 국세청 조사국으로 출두가 예정돼 있었다는 점에서 세무조사에 대한 압박이 자살의 배경으로 지목되었다. 당시 국세청 세무조사를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던 한 전직 국세공무원의 증언도 이와 맥을 같이하고 있다.

기자가 오래된 이 사건을 꺼집어낸 이유는 최근 포항세무서에서 세무조사를 받던 중 투신(자살)한 한 기업의 재무팀장 사건 때문이다.

납세자들이 세금과 세무행정에 앙심을 품고 세무서를 찾아가 자살 소동을 벌인 일들은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검색을 해보면 관련 기사가 무더기로 쏟아진다. 2005년 40대 식당주인이 세무서를 찾아가 손도끼로 손가락을 자해하고, 불을 지르겠다고 난동을 부린 사건이 있었다. 또 2006년 30대 남성이 강원도의 모 세무서를 찾아가 자신의 계좌가 압류되었다면서 시너를 뿌리고 분신소동을 벌인 사건이 있었다. 2013년에는 50대 남성 납세자가 마산세무서를 찾아가 채권압류를 해제해 달라면서 자신의 몸에 시너를 뿌리고 일회용 라이터로 불을 붙인 사건이 있었다.

2013년 춘천세무서에 뛰어들어 인화성물질을 뿌리고 불을 지른 납세자, 2014년 원주세무서에서 발생한 분신 소동, 2015년 노원세무서에서 발생한 70대 납세자의 분신 소동, 2016년 식칼을 품고 용산세무서장실을 찾아가 자결을 하겠다고 위협한 사건, 2016년 민원처리에 불만을 품은 50대 남성의 순천세무서 난동사건, 2017년 상속세가 많다면서 남양주세무서에서 난동을 부린 50대 남성, 그리고 2018년 성동세무서에서 발생한 체납징수에 불만을 품은 납세자의 부탄가스 폭발사건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세금불만 사건들이 표출되어왔다.

그리고 이런 사건은 소동을 부린 납세자가 경찰에 붙잡혀가고 적절한 법의 심판을 받게 된다. 그러나 소동을 부렸다고 내야할 세금이 깎이지 않는다. 그대로 다 내야한다. 그런데 이런 사건 외에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유사한 사건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라고 생각하면 솔직히 가슴이 턱 막혀온다.

국세청은 세법에 정해진 대로 집행만 한다고 하는데 왜 자꾸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국민들의 세금에 대한 무지일까. 아니면 정부의 국민에 대한 세금교육이 부족해서일까. 아니면 이런 일을 벌이는 국민들이 무지몽매(無知蒙昧)하여 그런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납세자들이 막가파식으로 떼를 쓰는 것일까. 어찌됐던 기자의 입장에서는 그래도 일 년에 250조원이 넘는 세금을 걷는 정부가 나서서 이런 일을 예방하기 위한 흉내라도 내어야하는 것 아닌가하고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 이런 일을 뒷수습해야 할 세무행정을 집행하는 세무서나 국세청은 물론 세법을 만드는 기획재정부 어디에서도 이에 따른 예방책을 만들었고 또 실행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한 것 같다. 그리고 아마도 대부분이 세법집행을 잘 모르는 납세자들의 치기어린 ‘난동’으로 치부해 왔을 것이다.

지금 서울 한 복판 감사원과 서울국세청 청사 앞에서 몇 개월째 국세청 간부들의 이름을 대문짝만하게 걸어놓고 국세청의 민낯을 들추고 있는 일이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지는 것처럼 말이다.

세무조사를 받던 사람이 주검으로 변한다는 것은 죽음보다 더 소중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일 것이다. 그가 죽음으로 지키고자했던 그 가치는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목숨을 끊어서라도 말 못할 엄청난 탈세를 했거나, 아니면 말하면 안 될 사람이 관여되어 있을 수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그 사정이 무엇이든 우리는 그 사정은 분명 정당하지 못한 것이라고 쉽게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역설적으로 그래서 ‘세무조사는 반드시 필요한 것인가’라는 또다른 명제를 던지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세금이 국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고, 또 우리가 국회에서 그렇게 하자고 합의했다고 하더라도 세금 때문에 자살을 해야 하고, 시너통을 들고 세무서를 찾아가 난동을 피우고, 세무서 마당에서 분신을 시도하고, 세무서장실에 식칼을 들고 들어가 위협을 하는 일들이 무시로 일어난다는 것, 그리고 똑같은 일들이 20년 전에도, 지금에도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라는 물음에는 대답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세금을 거두는 ‘법이 잘못된 것’인지, 세무행정을 하는 사람들의 납세자에 대한 ‘존경이 없어서’ 발생하는 것인지에 대한 답을 말이다.

권위주의시대는 가고, 소통을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삼는 국세행정의 시대에도 말이 통하지 않아 세무서에서 자살을 하고, 부탄가스를 던지고, 식칼로 위협하는 일이 생긴다는 것, 솔직히 이해가 되고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법이 잘못되었다면 국회가, 그리고 기획재정부가 나서야 하고, 그전에 국세청이 먼저 나서서 예방책을 만들고, 교육을 시키는 전담부서를 만들어서라도 더 이상 울분에 가득찬 얼굴로 시너를 들고 세무서를 찾아가는 납세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무늬만 납세자편이라는 소리를 듣는 납세자보호담당관실에 맡길 일이 아니라 당장 ‘납세자분통해소담당관실’이라도 만들어 국민들의 억울함을 들어주고 또 해소해 주어야 할 것이다.

이 정부가 진정으로 국민과의 소통을 원하고, 또 납세자를 ‘민원인’이 아니라 섬겨야할 국가의 ‘주인’이라고 생각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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