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6월과 12월이 되면 국세청에는 명예퇴직 바람이 붑니다. 사무관 이하 직원은 정년퇴직 기한 60세까지 채워도 되기 때문에 본인의 의사에 따라 자유롭게 명예퇴직을 선택할 수 있지만 4급 서기관급 이상 공개채용자나 세무대학출신 특별채용자는 국세청에서 2년 조기 명예퇴직 전통에 따라 이번은 혹시나 연장될까? 하는 마음이 없진 않지만 역시나! 58세 직전에 대부분 후배에게 승진기회를 준다는 명분을 가지고 명예퇴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보통 1년 전부터 퇴직준비를 하기에 마음의 충격이 심하진 않습니다.

그러나 3급 이상 고위공무원으로 올라가면 앞길을 예측할 수 없습니다. 특히 1급 이상은 정치적 영향을 받아 행정고시 출신의 경우 기수안배, 출신 지역, 출신 학교와 심지어 자신도 모르는데 위에서 마음대로 판단한 정치 성향에 따라 수십 년간 근무한 국세청을 감정조차 마무리 못 하고 허탈하게 떠나는 모습을 필자는 수십 년간 보았습니다. 그런 안타까운 모습을 옆에서 지켜볼 때 차라리 저처럼 세무대학 8급 특채로 출발한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통 지방청장 이상 고위직은 한정된 자리이기에 이미 인사 명령받을 때 즉시 사표 수리가 가능한 날짜 빠진 사직서를 내놓고 부임한다고 합니다. 그래도 수시로 바뀌는 정치적 환경 때문에 상반기는 6월 초부터 6월 중순까지, 하반기는 12월 초부터 12월 중순까지 유임이냐 명예퇴직이냐 갈림길에서 답답한 마음을 표시도 못 하고 초초해 하는 것이 감춰지지 않으면서 오히려 주변의 직원들이 좌불안석 쉬쉬하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이번 6월 말에 국세청에서는 명퇴 시즌에 맞추어 서대원 국세청 차장, 김희철 서울지방국세청장, 김한년 부산지방국세청장이 국세청을 떠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공교롭게 그중 두 분과 직접 같이 근무해보고 한 분은 인연 때문에 오랜 기간 알고 지냈지만 모두 공사가 분명하고 직원에게 존경받는 흠 잡을 곳 없는 정통 국세맨입니다.

이렇게 멋진 국세맨이 명예퇴직 한다면 꼭 따라오는 것이 행정고시 기수 속도조절론으로 현재 국세청 차기 1급 행정고시 출신 후보자 군이 50대 초반이므로 한 두 해는 기존 간부가 유임하는 것이 좋겠다는 소문이 돌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과거 모 국세청장이 동기와 국세청 위기 상황을 헤쳐 나가기 위하여 회전문식으로 잠깐 유임시킨 예외가 있었지만, 이 세분의 성향을 보면 그런 소문에 얽매일 분도 아니고 강물은 싫든 좋든 결국 바다로 흘러가듯이 결국은 떠나게 될 것입니다.

필자가 현직에 있을 때 가장 안타까운 것은 대부분 고위직은 마음 준비를 하지만 한두 분은 끝까지 떠날 마음의 준비를 못 하고 자의보다는 타의라고 이야기할 때입니다. 그런 경우 명예퇴임 식장에서 퇴임사를 통하여 멋지게 살았다는 말보다 아쉬운 감정을 토로하고 직원과 맥없이 악수하는 손길에서 공직자로 아름다운 퇴장이 아니라는 여운을 많이 남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텅 빌 것 같은 자리는 금방 채워지고 안 돌아 갈 것 같은 국세행정은 전 직원의 역량과 노력으로 끊임없이 잘 돌아갑니다. 결국 국세청은 한두 명의 역할이 아닌 조직으로 움직이는 기관입니다.

그래도 마지막 1년을 마음속 깊이 감춰둔 국세행정의 혁신을 제대로 꽃피우지 못하고 조마조마하게 지내다 6월 중순, 12월 중순 최종 퇴직 결정이 주변에 알려지면서 남모르게 하나씩 사물을 정리하는 모습이 지켜보는 직원 입장에서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고위직의 조기 명예퇴직은 정말 용기 있는 것일까요? 정말 명예로운 것일까요? 아니면 아쉽게 밀려나는 것일까요? 답은 없다고 생각이 듭니다. 결국 모두 당사자의 생각하기 나름일 것입니다.

‘이 세상에 영원한 내 것은 없다’라는 말처럼 항상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여 근무한다면 미련도 후회도 없을 것입니다. 이번에 명예퇴직을 선택하셨다는 멋진 신사 국세맨 세분은 이제 모든 것 내려놓고 홀가분하게 새롭게 제2의 인생을 출발하시길 기원합니다.

[박영범 세무사 프로필]

△ YB세무컨설팅 대표세무사
△ 국세청 32년 근무
△ 국세청 조사국, 서울지방국세청 조사1~4국 근무
△ 네이버카페 '한국절세연구소'운영
△ 국립세무대학 졸업

저작권자 © 세정일보 [세정일보] 세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