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억하는 것은 국세청장과 전국의 세무서장들이 한꺼번에 청와대로 들어가 대통령과 만찬을 한 것은 두 번이다. 김대중 정부시절(국세청장 안정남)에 한번 있었고, 이명박 대통령 시절인 2008년 5월 16일(국세청장 한상률)이었다.

그래서인지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이들 두 전직 국세청장들은 대통령과 ‘독대’도 한다는 이야기가 퍼지기도 했다. 국세청 주요 간부들과 지방국세청장들은 물론 전국의 세무관서장들을 차례로 줄을 세워 청와대 영빈관으로 입장시키고 대통령과 저녁을 같이한다는 것은 직업공무원들에게는 더없는 영광된 자리다. 그리고 세무서장까지 오르는 동안 청와대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언감생심인 세무서장들에겐 가슴 뛰게 하는 이벤트였다. 그래서 그때 세정가 사람들은 당시 국세청장을 ‘힘 있는’ 국세청장이라고도 불렀다. 이후 그것이 부메랑이 되기도 했지만.

김대중 정부시절 청와대에서 이뤄진 대통령과 전국세무관서장과의 만찬에 대한 정보는 별로 없다. 당시 전국세무관서장들이 청와대에서 만찬을 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며, 당시 국세청장이 과하게 대통령을 미화하여 뒤에 가십거리가 되었다는 이야기 정도가 있다.

그리고 2008년 이명박 대통령 시절에는 무려 190명이 넘는 국세청 간부(세무서장)들이 청와대 영빈관으로 초청되어 만찬을 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세무서장들에게 “여러분들의 일이 재정수입(세수)만 가져온다는 단순한 게 아니고 기업의 사기를 돋워줘서 중소기업도 한사람 더 고용하게 하고, 그것이 국가를 위한 역할이라고 생각하도록 역할을 해 달라"라면서 소위 기업 프렌들리 세정을 펼쳐 줄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그만큼 국세청의 역할이 세수는 물론 기업들의 활동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었다.

지난 14일 문재인 대통령이 한승희 현 국세청장에게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실의에 빠진 자영업자들과 소상공인들을 달래기 위한 조치를 마련하라는 지시를 하자 국세청은 16일 예정되었던 하반기 전국세무관서장회의를 연기하면서까지 부랴부랴 '조치'를 발표하면서 화답했다. 핵심은 내년 말까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에 대한 세무조사를 유예하거나 면제하겠다는 것이었다. 세법에 명시된 세무조사를 국세청장 맘대로 고무줄처럼 줄였다 늘렸다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은 차지하고 기자는 16일 열린다고 했던 `18년 전국세무관서장회의가 열흘가량 미루어 졌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다른 한가지 기대가 생겼다.

혹시 27일로 연기된 전국세무관서장회의에 문재인 대통령이 국세청을 방문하여 국세청에 지시한 내용을 점검하거나 아니면 국세청의 발 빠른 조치를 격려하는 그런 액션을하면 어떨까하는 바람이다. 또 혹시 전국관서장회의 이후 세무서장들이 청와대에서 만찬을 하는 계획은 잡힌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마 시간상 어려울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더 강했다. 그러던 차에 과거 전직 국세청장들의 청와대 만찬이라는 ‘이벤트’가 스쳐갔다.

이번에 전국세무관서장들이 청와대에 초청되어 만찬을 할 수있는 명분은 많다. 작년에 국세청이 한 일이 그것이다. 촛불혁명으로 조기대선을 치른 현 정부 초창기 국가의 곳간(재정)마저 넉넉하지 못했다면 어떠했을까라는 생각을 하면 국세청의 역할은 ‘음지에서 핀 꽃’이었다. 사상 최대인지는 모르겠으나, 세수풍년이라는 결과에는 기업들의 실적호전도 있지만 국세행정의 서비스세정으로의 전환 등 국세청 사람들의 노력이 적지 않기때문이다. 또 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요지부동이던 ‘일자리안정자금’제도가 자리를 잡은 것도 국세청의 ‘공(功)’이다. 소기업가들에게는 솔직히 탐탁치않던 일자리안정자금제도를 홍보하던 작년 국세청의 상황은 ‘세무서가 이런 일까지 해야 하느냐’는 일선 직원들의 볼멘 투정이 많았다. 그러면서도 소기의 ‘성과’를 냈다.

과거 대통령들이 세무관서장들을 청와대로 초청한 이유는 음지에서 고생하는 국세청 사람들을 격려하는 의미도 있지만 소위 세정의 개혁을 주문하기 위한 의미도 컸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혹시라도 세무서장들을 초청하거나 국세청을 방문할 계획이 있다면 그것은 ‘격려’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는 이유다.

95%이상의 세금이 국민들의 자발적 납세에 기인한다고 하지만 그 속엔 국세청 사람들의 눈물겨운 노력도 담겨있다. 겨우 수백만 원이 밀린 체납자를 만나 얼굴 마주하고 체납을 독촉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또 조사국 요원들이 성실납세 담보를 위한 정의의 칼이랍시고 세무조사 통지서를 들고 기업을 찾지만 그 작업 또한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은 세정가 사람들은 다 안다. 요즘 조사국 직원들 사이에는 ‘갈 때는 갑이지만 나올 때는 을이 된다’는 말도 있다. 한마디로 국세청 사람들은 밖에서 보는 것보다 고생을 많이 한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혹시라도 대통령과 세무서장들과의 만찬 계획이 있다면, 없다면 기획 잘하는 행정관이라도 나서서 한번 추진하면 어떨까. 그리고 국세청 사람들 한번 격려하면 어떨까하는 주문을 드린다.

그때는 이런 말을 하면 어떨까.

"성장의 모든 주역은 기업이다. 특히, 중소기업은 특별히 배려해야 한다. 중소기업 300만개가 1사람씩만 고용하면 300만개 일자리가 생기고 1사람씩만 해고하면 300만개의 일자리가 없어진다." “국민들의 일선과 맞닿은 사람은 여러분(국세공무원)이기 때문에 여러분이 잘해야 한다. 국민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그런 서비스를 잘하면 사실 세금도 더 잘 걷힌다"라고.

2008년 5월 전국세무관서장들을 청와대로 초청한 이명박 전 대통령이 한 말이다.

딱 10년 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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