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이 ‘칼춤’을 춘다. 탈세자들을 찾아내 강력하게 휘두르는 세무조사의 칼춤이다.

최저임금 인상 등의 여파로 중소상인들과 자영업자들이 죽겠다고 머리띠를 두르자 화들짝 놀란 대통령이 대책 마련을 지시했고, 이에 국세청장은 부리나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에 대해서는 세무조사를 유예하거나, 세무신고 확인(사후검증)을 내년 말까지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 8월 16일이었다.

그런데 시장의 반응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세무조사를 유예하는 것은 세무조사를 하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다. 사후검증을 안한다는 것은 알아서 탈세를 하라는 것이냐’라면서 '국세청장을 처벌해야한다(청와대 청원게시판)'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강하게 터져 나왔다. 그리고 세금전문가들도 세무조사 유예는 시기를 늦추는 것뿐이지 안한다는 것은 아니다. 언젠가는 촘촘한 국세청 검증의 그물을 피해갈 수 없는 것이다. 국세청의 이번 조치는 우선 소나기를 피해가자는 쇼에 불과하다는 의견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그리고 또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은 원래 조사대상에 잘 걸리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이들을 봐 준다면 당연히 국세청의 칼날은 고소득자 등에게로 향할 것이라고 예측해 왔다.

아니나 다를까. 국세청은 이날 이후 ▷편법 증여 등 부동산 거래 탈세혐의자 360명 세무조사 착수(8월 29일) ▷공익법인의 세법상 의무이행에 대한 엄정한 검증 실시(9월 5일) ▷국부유출 역외탈세 혐의자 93명 전국 동시 세무조사 착수(9월 12일) ▷주택임대소득 탈루혐의자 1500명 세무검증 실시(9월 16일) ▷서민생활 밀접분야 고소득사업자 세무조사 착수(9월 17일) 등 하루가 멀다하고 세무조사 사실을 언론을 통해 공개하고 있다. 속되게 표현하면 조자룡 헌 칼 휘두르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런 국세청의 소나기식 세무조사는 서민들과 소상공인들에게는 ‘우리보다 더 많이 탈세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세간의 이야기를 증명하는 순간들이 될 것이고, 또 ‘돈 많은 사람들이 국세청에 탈세 사실을 이제야 들키겠구나’라는 시원함도 제공할 것이다. 그리고 국세청 입장에서는 적폐를 청산하라는 대통령의 추상같은 명령을 ‘우리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라는 것을 온 몸으로 증명하는 모습으로 전해질 것이라는 점에서 나이스다.

하지만 하루걸러 발표되는 세무조사 착수 사실은 ‘이렇게 탈세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었나, 그동안 국세청은 뭘 하고 있다가 이제야 단불에 콩을 볶는 것일까’, 그리고 ‘돈 좀 있다는 사람들은 모두가 잠재적 탈세자인가’라는 나쁜 시그널을 국민들에게 심어줄 수 있다는 반작용도 있다. 조세정의를 위한 칼이 자칫 국민들의 성실납세 의식을 오히려 곤두박질치게 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선하던 악하던 칼은 무서운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세청이 내놓은 세무조사 대상자들의 혐의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법들이 담겨져 있어 '교도소에서 범죄를 배운다'는 말처럼 선량한 납세자들이 이런 탈세 방법을 배우지나 않을지 걱정이 앞선다.

과거 국세청 사람들은 ‘조세징수의 기술은 거위 털을 뽑는 것과 같다’(콜베르)는 말의 신봉자처럼 ‘세무행정은 물론 특히 세무조사는 소리없이 조용히 수행하는 것이 제일’이라는 말을 달고 다녔다. 그런데 지금 국세청은 거위가 소리를 지르는 것을 넘어 얼굴색까지 샛노랗게 변하게 하고 있는 모습이다.

한걸음 더 비판한다면 지금의 융단폭격식 세무조사가 자칫 ‘머리를 짧게 깎으라는 선생님의 지시에 완전히 삭발을 함으로써 반발하는 것처럼' 도를 넘는 액션(칼춤)으로 비춰지지 않는다면 다행이겠지만 ‘선의가 반드시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인간사회의 진실’이라는 한 일본 소설가의 이 말이 자꾸 뇌리에 맴도는 것은 왜일까. 놀란 거위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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