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신문의 가십거리 기사를 보니 “검찰에서 한 공무원에 대해 불법 혐의가 있어 사무실 컴퓨터를 압수 수색을 했는데 특이하게 사무실 주변의 식당 이름 백여 개가 적힌 파일이 있었다.”는 기사 내용이다. 이는 짐작건대 그 직원이 상사의 입맛에 따라 매일 점심 메뉴에 신경 쓰다 보니 자신이 근무하고 있는 사무실 주변의 식당을 정리해 놓은 것이 분명하다. 물론 이런 사례는 신문에 기사가 나서 그렇지 드문 것은 아닌데도 말이다.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소속 관계가 엄정한 일반 회사 직원이라면 몰라도 어느 정도 상하 관계나 근무 여건이 유연한 공직 사회에서도 이런 일이 있을까 반문하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공무원은 승진을 위해서는 “악마와도 손잡는다고 했다.” 모든 공직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승진을 앞둔 공직자는 상사의 평가가 절대적일 수밖에 없어 ‘죽으라고 하면 죽는시늉’까지 해야 한다. 그러니 점심 메뉴 정도 챙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할 것이다. 물론 이 또한 2016년 9월 소위 ‘김영란법’이라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시행된 뒤는 그런 일이 다소 완화되었다고 하지만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닐 것이다.

심리학자 ‘머슬로우’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3가지 가정하에서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이론을 제시하였다.

첫째, 인간의 결코 만족할 수 없는 욕구,

둘째, 인간의 행동은 주어진 과거 어떤 시점에서 만족하지 못한 요구를 채우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는 점이다.

셋째, 욕구는 기본 욕구에서부터 상위 욕구까지가 예측 가능한 계층 구조로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는 인간의 욕구를 다섯 가지로 나누어 규정하였는데 낮은 수준의 욕구에서 더 높은 수준의 욕구로 중요성의 순서에 의해 등급화 시킨 것이다.

인간의 다섯 가지의 기본 욕구는 생리적 욕구, 안전의 욕구, 사회적 욕구, 존경의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를 말한다. 이 중 생리적인 욕구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로서 인간이나 동물을 막론하고 생물체의 본성 근원을 둔 욕구라고 할 수 있다. 흔히 이는 식욕, 수면욕 그리고 성욕을 말하며, 이를 충족하는 것은 생존하는데 필요불가결한 것이다.

얼마 전 비선 실세의 국정 농단으로 전 VIP가 검찰 조사를 받는 날이다. 상부 부서에서 일선 직원들에 대한 복무 기강 점검을 나온 모양이다. 이 점검 내용에는 점심시간 이행 여부도 포함되었다. 공직자 대부분은 중식 시간을 정확히 지키는 편이지만 그렇다고 민원 부서와 같은 교대 근무 부서나 또는 특수한 분야에 근무한 직원들은 유연하게 점심시간을 이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 업무는 일정한 시간 전산 작업을 거친 후 보고서를 작성하기 때문에 점심시간을 10〜20분 앞두고 새로운 업무를 시작할 경우 마무리 하지 못 하고 점심시간 이후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따라서 가끔 점심 전 그러한 자투리 시간이 있을 때 먼저 점심을 해결한 뒤,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예정된 업무를 계속 진행하는 경우 효율적인 업무를 할 수 있다. 그래서 때로 10여 분 먼지 구내식당을 이용하곤 한다. 이날도 일련의 업무 관계로 팀원들과 함께 점심시간 10여 분 전 구내식당을 이용했다. 그것이 문제가 된 모양이다. “왜 점심시간을 제대로 지키지 않느냐?”는 것이다. 물론 이번은 가볍게 넘어가긴 했지만, 이것이 구조화되고 획일적인 공직 사회의 단면이다.

외부 사람도 아닌 더구나 외부 식당이 아닌 팀원들과 점심시간을 이용 원활한 업무 진행을 위해 조금 빨리 구내식당 이용한 것이 무슨 큰 문제일까? 이렇듯 공직사회는 한편으로 보는 경직되고 형식적인 문제에 너무 연연한 것은 아닌지? 그래서 공무원은 걸려고 마음만 먹으면 ‘숨 쉬는 것 이외에는 다 죄’가 될 수 있다. 또 적절한 예를 들면 한 달 내내 아무 일도 안하고 놀면서 월급 받아간 직원보다 이렇게 조금이라도 점심시간을 준수하지 못한 직원의 죄가 훨씬 더 크다는 것을 아는 국민은 얼마나 될까?

이제 이러한 문화도 정보화 시대를 건너 진정한 복지국가를 지향한 국가에서 반드시 청산해야 할 군사문화, 유신잔재 문화가 아닌가 싶다. 이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국민과 공직자들의 의식 변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러한 유신문화, 소통이 없는 문화기 계속된다면 우리의 지향하는 복지국가는 요원할 것이다

직장인들에 이렇게 점심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직장인이 아니라도 마찬가지 일 거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세 끼는 아침, 점심, 저녁을 이르는 말이다. 그중 아침과 저녁은 때와 끼니를 동시에 일컫는 말로 쓰지만, 점심은 오직 끼니를 일컫는 말로 쓰인다. 그리고 아침과 저녁은 순 우리말인데 비하여 점심은 한자어로 점심(點心) 즉 마음에 점을 찍는다는 의미다. 즉 아침과 저녁 사이에 ‘마음에 점을 찍듯이’ 간단하게 요기를 하라는 의미일까?

흔히 이러한 점심(點心)에 대한 유래는 세 가지기 있다. 그중 가장 타당성 있는 것을 보면, 첫째 선종(禪宗)에서 선승(禪僧)들이 수도하다가 시장기가 돌 때 마음에 점을 찍듯 아주 조금 먹는 음식을 말한다. 그래서 ‘점점(點)’에 ‘마음심(心)’을 쓴다고 한다. 이처럼 점심은 간단하게 먹는 중간 식사를 말한다. 흔히들 중식이라고들 하는데, 이는 일본식 한자어이기도 한다.

두 번째 유래를 보면 중국 남송(南宋) 때 한세충(韓世忠) 장군에게 양홍옥(梁紅玉)이라는 아름다운 아내가 있었다. 당시 남송과 금나라와 치열한 전쟁이 벌어졌는데, 남송은 식량 그리고 군사 등 절대적인 열세였던 터라 한세충 장군의 아내도 남편을 옆에서 도왔다. 그래서 장군의 아내는 손수 만두를 빚어 군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하지만 전쟁 물자가 부족한 남송으로서는 군사들에게 넉넉히 나눠 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장군의 아내가 군사들에게 만두를 나누어 주며 “만두의 양이 많지 않으니 마음(心)에 점(點)이나 찍으십시오!” 라고 말하였다. 유능한 장군의 지휘와 그의 아내의 정성에 감동하여 사기충천한 남송 군대는 8천 명의 병사로 10만 금나라 대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아침과 저녁 사이에 먹는 끼니를 마음에 점이나 찍으라는 의미로 ‘점심(點心)’이라고 했던 말이 전해 졌다.

세 번째 유래는 “벽암록‘에 나오는 금강경 고수와 한 노파의 내공 겨루기 한판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말해도 30방, 말하지 않아도 30방’으로 유명한 덕산(德山 780- 865)스님이 경에는 밝으나 아직 선의 세계를 알지 못했을 때의 이야기다. 스님은 유식에 깊은 조예가 있으며, 금강경도 깊이 연구하여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러던 중 남방에서 선종이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그 본성을 알면 곧 성불한다.’는 말을 듣고 이는 성불의 어려움을 모르는 마구니(불교에서 사용하는 마구니는 마귀라기보다는 자신이 생각을 통해 만들어낸 생각이며 갈등을 유발하는 나쁜 마음)의 설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를 전파하기 위해 길을 떠났다. 풍주(황해도 송화 지역의 옛 이름) 땅에 이르러 점심을 먹고자 한 식당에 들렀다. 이 집을 운영하는 노파가 점심을 하기 전에 질문하였다. “등에 진 걸망에는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 “덕산이 금강경이라 대답하자”, 노파는 다시 질문하였다, “그 가운데에는 과거심불가득 현재심불가득 미래심불가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스님은 점심을 하고자 하는데, 점찍고자 하는 그 마음(點心)은 과거심입니까? 미래심입니까?, 현재심입니까?” 이에 대해 덕산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였다. 점심을 하지 못한 것을 말할 나위도 없다.

이렇듯 생존 그 자체가 매일 매일의 관심사인 사람들 아니 살아 있는 모든 생물에게 이런 생리적인 욕구 중 식욕은 무엇보다도 중요한지 모른다. 그러나 누구와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은 허기를 채우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산다는 것은 만남이며 네트워킹이다. 어울려 밥 먹는 것이 인간관계의 출발이다.” 처음 만난 사람과 밥을 먹음으로써 어색한 분위기를 풀 수 있고 소원한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 그래서 사회생활을 하는 많은 사람들은 만날 때마다 우리 “점심 한 끼 합시다.”를 말한다. 이는 마음에 점하나 찍기 위한 것일까?

그래, 그럼 오늘 우리 점심 한 끼 합시다.


[김정호 (金正浩) 작가 프로필] 

△ 1961년 전남 화순 출생

△ 2002년 시의나라 신인상으로 시, 2010년 문학광장 신인상 수필 등단

△ 시집 「빈집에 우물 하나」「부처를 죽이다」실크홀」등 8권의 시집을 발간하였다

△ 18회 대한민국문화예술대상, 국무총리상, 기획재정부장관상

△ 현재 한국작가회의 회원,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한국바다문학회 회원, 부산시인협회 회원, 국제펜클럽 부산지역 이사, 부산시인협회 이사, 한국바다문학이사 및 국세청 문우회장 등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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