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 세제실은 매년 세법개정안을 발표하고, 세제발전심의위원회의 자문을 거쳐 국회에 제출한다. 그리고 국회는 정부와 국회의원이 제출한 세법개정안을 심의하면서 수정을 반복해 최종적으로 결정한다.

매년 수백개 넘는 세법개정안이 나오고 해마다 조금씩 바뀌다보니, 일반국민들이 세법을 안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며, 작년, 올해, 그리고 내년 정책이 모두 달라 세금내는 것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처럼 가뜩이나 어려운 세법인데, 국민들을 더욱 혼란스럽게 하는 것이 바로 기획재정부 세제실이다. 정부는 중장기 조세정책방향을 설정하고 큰 틀에 맞추어 세법을 개정해야하는데, 일관성 없이 툭 던지는 발표가 이어지다보니 결과적으로는 조세정책에 대한 신뢰마저 떨어트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에는 이 같은 지적을 넘어 납세자들을 화나게 하면서 홍역을 치렀다.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지난 4일 제53회 납세자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신용카드 소득공제 제도의 축소를 검토하겠다고 말해놓고 ‘서민증세냐’는 비판여론이 거세지자 곧바로 올해 말 도래하는 일몰을 3년 연장하겠다고 입장을 선회해 체면을 확 구겼다.

사실 이같은 기재부의 ‘오락가락’ 세제정책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정부가 지난 1월 세법 시행령 개정안 발표 당시 일감몰아주기 과세와 관련해 특수관계법인과의 거래일지라도 독점 기술을 가진 경우 과세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발표했었지만 공정거래위원회의 반대로 무산되기도 했고, 지난해만 해도 미세먼지는 해외기여분이 크다는 등의 이유로 경유세 인상은 없다고 밝혔음에도 대통령 직속의 재정개혁특위가 경유세를 인상의 뜻을 내비치자 경유세가 곧 인상된다는 보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밖에도 세정가의 빅 이슈였던 세무조사 녹음권, 세무사징계요구권자에 조세심판원장 추가, 전자신고세액공제 축소 등 기재부가 야심차게 추진했던 사안들이 관련 기관과 단체 등의 반발에 밀려 사라진 바 있다.

특히 세무조사 녹음권의 경우, 기재부의 외청이자 집행기관인 국세청의 동의조차 얻지 않은 채 추진하면서 논란이 거셌다. 납세자에 대한 세무조사 과정에서 녹음규정을 도입해 조사공무원의 부당한 압력을 방지하고자 하는 것이 도입취지였는데, 이렇게 된다면 대형회계·세무법인을 고용할 능력이 되는 납세자의 경우 유리한 쪽으로 악용이 가능하고, 세법에 대해 잘 모르는 영세납세자의 경우 조사공무원의 도움을 받기 위해 이것저것 털어놓다가 세금폭탄만 맞을 것이라는 지적이 일기도 했다.

기재부가 세법시행령 개정을 통해 조세심판원장을 세무사 징계요구권자로 포함시키려 했으나, 세무사 등 이해관계자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유사 자격사와의 형평 등을 감안’이라는 수정이유를 들며 ‘없던 일’로 만들어버린 일 역시 너무 가벼웠다는 지적이 뒤따랐다.

전자신고세액공제 제도 역시 ‘비과세 감면 축소’라는 정책 아래 폐지(축소)가 점쳐졌고, 정부는 세법개정안 발표 당시에는 공제한도를 절반 축소키로 했으나 관련업계의 반발이 거세지자 단계적인 축소로 한발 물러나기도 했다.(이 문제는 박근혜 정부부터 계속 반복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박근혜 정부에서 가업상속공제를 확대하는 것에 대해 반대 입장이다가 중견기업들의 요청에 의해 정치권이 확대를 요구했고, 정부로서는 일자리 문제 등이 부각되자 이듬해부터는 명문 장수기업을 육성한다며 가업상속공제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입장을 바꾼다.

애초부터 세제실이 민심의 눈치를 보고, 정치권에 휘둘리는 조직은 아니었다. 국가를 운영하면서 조세정책의 중요성이 커지면 커질수록, 세제실의 파워도 막강해져갔다. 이들을 일컬어 ‘세피아’라고 부를 만큼 무서운(?) 조직이었는데, 어쩌다 내놓는 정책마다 맥 못추고 외풍에 흔들리는 조직이 됐는지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내놓은 2017년 중장기 조세정책운용계획 자료를 살펴보면 90년대 이후 경제성장률이 둔화되고, 2000년 이후부터는 잠재성장률도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추세인데다, 세계 최하위권의 출산률, 생산가능인구수의 감소세, 노령화의 급속화 문제가 심각하다. 또 고용 창출능력이 저하돼 일자리문제에 취약계층 취업애로는 더욱 심화되고 있으며, 고소득층과 저소득층간의 양극화는 더욱 극심해지고, 국가가 부담해야할 복지비용이 늘어나면서 재정도 불안정한 상황이다.

이에 문재인 정부는 중장기 조세정책 과제를 일자리 창출 및 혁신성장 촉진, 소득재분배 및 과세형평 제고, 세입기반 확충 및 조세제도 합리화라는 큰 틀을 두고 앞으로의 조세정책을 펼치기로 했다.

설익은 정책을 툭 던져놓고 국민들의 눈치를 살피다가 아니다 싶으면 슬그머니 집어넣는 바람따라 춤추는 조세정책으로는 조세제도 합리화는 차치하고 세금의 최소한인 국민들로부터의 신뢰도마저 땅바닥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저작권자 © 세정일보 [세정일보] 세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