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지금의 조세심판원인 국세심판원장으로 취임한 이용섭 전 원장은 이후 세제실장, 관세청장, 국세청장을 거쳐 청와대 수석, 건교부장관, 행안부장관 등 공직에서 성공가도를 달린 세무인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가 국세청장으로 발탁된 것은 세제실장을 거쳐 관세청장으로 재직중이던 2003년 이었다. 그는 취임 후 군대식이라고도 불린 경직된 국세청의 문화를 바꾸어보려 매우 애쓴 것으로 알려져있다.

한가지 일화다. 그는 취임초 여러 가지 개혁방안을 주문했다. 그러나 국세청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에게 그는 ‘이방인’이나 다름없었다. 그의 말발은 좀처럼 먹혀들지 않았다.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으면 그는 당시 그의 속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시’ 한편을 직원들이 공유하는 내부 인터라넷에 올렸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중략~) 시인 도종환 씨의 담쟁이라는 시다. 이 시를 읽은 직원들이 댓글을 달았다. ‘청장님 힘내십시요’라는 든든한 지원사격이었다. 그리고 그는 무난히 2년이라는 국세청장직을 수행해냈다.

지금 세정가는 지난 `17년 6월 29일 취임한 현 한승희 국세청장의 2년이 다가오면서 후임 국세청장에 어떤 인물이 될 것인지에 대한 ‘카더라 통신’들이 난무하고 있다. 국세청 내부 사람들은 당연히 내부인 중에서 후임자를 점치고 있다. 이은항 차장(행정고시 35회, 광주), 김현준 서울국세청장(행정고시 35회, 경기 화성), 김대지 부산국세청장(행정고시 36회, 부산) 등 3명이 경합을 할 것이라는 것이 골자다.

이은항 차장은 현 정권(민주당)의 성지인 호남의 심장 광주 출신이라는 점, 김현준 서울청장은 현 국세청장과 동향 출신이고, 국세청 세수의 40% 가량을 책임지는 서울국세청장이라는 점, 김대지 부산청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부산 출신이라는 점에서 3명 모두 소위 텃밭(뒷배)을 가진 손색없는 차기 청장 후보 반열에 있다. 물론 여기서 먼저 살펴야 할 것은 국세청장직은 소위 권력기관장 끼리의 출신 성분을 따져 임명한다는 숨은 인사패턴이다. 즉 검찰총장과 경찰청장의 출신이 어디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검찰총장의 출신은 광주, 경찰청장은 전남 영암, 국세청장은 경기 화성이다. 따라서 검찰과 경찰 수장의 출신 지역에 따라 후임 국세청장이 하루아침에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경찰청장은 임기가 1년이상 남았으나, 임기(7월)가 다가오는 검찰총장의 후임이 비호남 인물이 임명될 경우 차기 국세청장은 호남 쪽에서, 달리 호남 출신이 임명될 경우는 영남 출신이 다음 국세청장에 낙점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래서 국세청장 직은 실력보다 관운官運이 먼저라는 이야기가 많았다. 물론 이런 전망은 그간의 인사 관행이 그렇다는 이야기다. 지난번 개각 때 장관 후보자들의 출신지역을 숨기고 출신고교를 따져 개각 명단을 발표하던 지금 청와대의 치졸한 잣대라면 이런 전례는 거추장스런 봄날 목도리에 불과하다.

지금 세정가는 검찰총장의 임기, 국세청장의 2년이 다가오면서 차기 국세청장 후보로서의 유력주자인 이들 3명의 이름이 자주 등장한다는 것이다. 누가 더 가능성이 있다더라는 소위 ‘카더라’ 통신으로 시작해 현 청장이 청와대로부터 신임을 얻고 있으니 연말까지 갈 수도 있다더라는 것을 넘어 6월이면 검찰총장과 같이 바뀔 것이며, 그렇게 될 경우 이들 3명중 1명이 낙점될 것이라는 말들이 고삐 풀린 듯 마구 회자되고 있다. 언필칭 우려되는 것은 이런 말들이 내부인 끼리의 싸움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아니면 그것을 핑계삼아 이렇게 싸우는데 누가 한들 조직이 안정이 되겠느냐는 빌미를 주어 소위 외부인이 그 자리를 차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랬다.

2003년 노무현 정부에서 이용섭 국세청장이 임명될 때였다. 당시 세정가에서는 영남 출신의 K차장과 호남 출신의 B 지방청장이 후임 청장 자리를 놓고 ‘아주 빡세게 붙었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아니나 다를까 이럴 바에는 외부인을 시켜 국세청을 제대로 개혁해봐야 겠다는 생각이었는지 노무현 대통령은 당시 관세청장이었던 이용섭 씨를 발탁했다. ‘어부지리漁父之利’라는 말이 나왔다. 순혈주의 청장을 원하던 국세청 사람들은 그 선배들을 원망했으나 이미 배는 떠난 뒤였다.

그래서인지 지금 세정가 일부에서는 이들 내부의 3명을 놓고 ‘키재기’를 하는 것보다 실제로 국세청의 개혁과 납세자보호라는 큰 틀에서 납세자보호에 경험이 출중한 외부인을 차기 청장으로 세우면 좋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들이 곰비임비 회자되고 있다. 지금 세무업계는 조세심판원은 물론 국세청의 심사청구 등 납세자들이 국세청의 세금부과에 억울하다면서 불복을 청구하지만 납세자들의 억울함을 살피기보다는 소위 국고주의에 함몰되어 ‘기각, 기각 또 기각’이 넘쳐 나고 있다는 이야기가 너무 많이 들린다. 물론 달리 생각하면 그만큼 국세청의 과세가 정확했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차마 그렇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는 정황을 목도하고서는 그렇게 편을 들 수가 없다.

그래서 말인데 다음 국세청장은 국세청에서 납세자보호관을 맡아본 인물이나 조세심판원장을 지낸 사람들을 국세청장에 임명하면 어떨까라고 주문한다. 말 그대로 납세자권리보호업무를 수행해본 인물이 과세관청의 수장이 된다면 단지 몇 건이라도 억울한 과세가 줄어들 수 있다는 아주 순진한 생각에서 해보는 소리다. 당연히 내편 네편을 갈라놓고 권력기관장을 임명해오는 인사시스템에선 ‘이런 순진한 소리하고 있네’라는 핀잔을 들을 줄 안다.

하지만 그게 아주 얼토당토않은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가능성을 살피면 이렇다. 일단 학자는 차치하더라도 조세심판원장만 이야기하면 그동안 조세심판원장 인사의 역사를 통해서도 그렇게 못할 것도 없어 보인다. 국세청 핵심직위에 있다가 조세심판원장을 맡는 것은 되고 조세심판원장을 하다가 국세청장을 하면 안 되는 것인가라는 반문인 것이다.

2000년대부터 조세심판원장을 지낸 분들의 면면을 살펴보자. 이용섭, 최경수, 한정기, 전형수, 최명해, 이종규, 채수열, 이희수, 허종구, 백운찬, 김낙회, 박종성, 김형돈, 심화석 등이다. 이들 중 전형수, 최명해, 허종구 씨는 국세청에서 근무하다 조세심판원장으로 임명된 사람들이다. 당시는 국세심판원이었다는 점에서 국세청과 재경부간의 인사교류라는 명분이었다. 그러나 당시 국세청 사람들은 중부국세청장과 국세청 조사국장, 국세청 개인납세국장을 지낸 인물이 국세심판원장으로 임명되면서 “이제는 우리가 과세한 것이 제대로 받아들여지겠구나”라는 말들을 많이 했다. 납세자들이 억울하지 않게 제대로 과세를 하겠다는 생각보다 심판원장이 어떤 인물이 되느냐에 따라 불복심판의 승패가 갈릴 수 있다는 이야기로 들릴 수 있다는 점에서 참으로 해괴한 말이기도 했다. 어쨌든 국세청 요직 출신들이 국세심판원장을 했던 것처럼 조세심판원장을 과세관청의 수장으로 돌려 앉히면 납세자들이 억울해 하는 과세가 단 한건이라도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점에서 순진한 생각을 해봤다.

고맙게도 그렇게 된다면 지금 국세청발 심판청구(조세심판원)와 심사청구(국세청)를 심사청구로 통합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어떻게 될까. 제도 역시 사람이 운용하는 것이라면 납세자보호기구의 장을 과세관청의 수장으로 한번쯤 앉혀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지 않은가. 국세청장 직이 시간만 지나면 오를 수 있는 국세청 사람들에게만 보장된 자리가 아니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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