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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준 공판] ‘첩보영화’ 방불케했던 국세청의 움직임

유일지 기자l승인2019.05.14 17:3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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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서울중앙지방법원, 6차공판 속행…다음 공판서 최종변론 예정

박윤준 “해외정보원에게 역외탈세 정보 사들이는 일은 국세청 관행”
국세청 직원 “해외공무원에게 돈 주고 정보 청탁, 합법적이지 않아”

 

‘이현동(전 국세청장)이 저를 불러 국정원에서 DJ 비자금이 있다고 하는데 관련 자료를 줄 수 있는 사람을 알아보라고 지시했다.’

‘미국 주재원으로 활동할 때 친분을 쌓은 해외정보원(미국 국세청 공무원)에게 이야기했고, 위험하면 돈으로 보상하겠다고 했다.’

‘해외정보원이 지하철 락카에 정보를 넣어두면 제가 꺼내오는 방식으로 건네받아 비 오던 날 국세청 근처에서 최종흡(전 국정원 3차장) 차에서 따로 만나 전달했다.’

‘결론적으로는 역외탈세에 해당할지는 몰라도, 표적을 가진 지시였고, 그 표적이 세금에 있지 않고 정치에 있다고 느껴졌다.’

‘이 일이 정치적 동기로 시작된 것은 불 보듯 뻔한데, 이 일로 후배들에게 누가 될까 죄송하다.’

이 내용들은 14일 오후 서울중앙지방법원 제25형사부(재판장 송인권)의 심리로 열린 박윤준 전 국세청 차장의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국고 등 손실) 혐의에 대한 6차 공판에서 서증조사가 진행되며 나온 박 전 차장의 피의자 신문조서 내용이다.

박 전 차장은 이명박 정부 당시 국정원으로부터 김대중 전 대통령의 해외비자금을 추적하는 일명 ‘데이비슨 프로젝트’에 협조하고 국가정보원 자금을 미국 국세청 요원에게 전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날 검찰 측에서 제시한 증거내용에 따르면 김승연 전 국정원 대북공작국장은 DJ 비자금 추적사업을 인수하자마자 앞으로는 DJ 비자금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도록 지시했다. 이는 외부로 흐를 경우 극심한 위험부담이 있기 때문이다. 비자금 추적사업이 일반인이 보더라도 불법성이 있다는 것.

김 전 국장은 2012년 3월 26일 국세청 안의 국세청장실을 방문해 이현동 청장에게 DJ 비자금을 추적하는데 쓰라는 취지로 쇼핑백에 든 자금(1억2000만원)을 건넸다고 진술했으며, 이에 이현동 전 청장은 ‘담당국장(박윤준 전 국세청 차장)과 잘 협의하라’고 답했다.

이렇게 시작된 국세청의 DJ 비자금 추적사업은 박윤준 전 차장이 미국 주재원으로 근무할 당시 친분을 쌓은 미국 국세청 공무원인 해외정보원에게 협조를 구해 진행됐고, 해외정보원이 5억원을 요구하자 국정원은 3억원을 국정원 가장체수익금에서 꺼내 국내에 있는 해외정보원의 장모와 처제 등에게 지급했다. 국정원 가장체수익금에서 자금을 꺼내 쓰는 것은 국고금관리법 위반 등에 해당하는 위법한 행위다.

그렇다면 국세청이 전직 대통령이라는 특정인에 대한 비자금 추적사업을 실시하는 것이 ‘역외탈세추적’을 위한 정보수집행위에 해당할까. 이와 관련해 초대 역외탈세담당관인 이광재 전 역외탈세담당관은 검찰에 출석해 ‘DJ 비자금 추적사업은 정상적인 루트가 아니었다. 한미조세조약 등을 통해야 한다’고 답변한 바 있다.

국세청 국제조사 및 역외탈세담당관실 직원들 역시 그동안 해외 공무원에게 활동비를 지급하고 정보를 받아온 적은 없었고, 해외정보원 역시 미국 국세청 공무원인데 돈을 받고 정보를 준다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바 있다. 특히 ‘국세청은 세금징수 기관이지 DJ 비자금 추적 등을 위해 해외공무원과 개별접촉하는 행위 등은 합법적이지도 않고 타당하지도 않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박윤준 전 차장은 ‘해외정보원이 활동비로 5억원을 요구했는데 국정원이 3억원만 주기로 했고, (3억원을)다 줬는지는 모르겠다. 해외정보원에게는 국세청의 특수활동비라고 이야기했다. 국정원이 지급하는 돈이라고 하면 첩보활동에 부담감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진술했고, 이에 검찰은 박 전 차장의 행위들이 위법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고 보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국정원 직원은 국세청 직원인 것처럼 행세하고 해외정보원의 친척 등에게 자금을 전달했다. 다만, 한 차례는 박윤준 전 차장이 직접 돈을 전달키도 했다.

박 전 차장은 ‘DJ 비자금이 있는지 알아보라는 지시를 받고 맨 땅에 헤딩하는 것처럼 막연해 한동안 보고를 하지 않자 이현동 청장이 답답했는지 쇼핑백에 일간지·잡지(속칭 찌라시)가 든 자료를 넣어줬다. 국정원에서 준 것으로 추측했다’고 진술했다.

검찰에 따르면 2010년 1월경 BH(청와대)로부터 관련 사업을 원세훈 원장에게 지시했고, 원세훈 원장은 이현동 국세청 차장에게 전화를 해 DJ 비자금 추적사업을 추진했다.

검찰은 이현동 당시 차장이 원 전 원장의 전화를 받고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사항임에도 백용호 당시 국세청장에게 보고하지 않았고, 이현동이 2008년 청와대 재경비서관실 행정관으로 파견근무를 다녀오고 DJ 비자금 추적사업이 진행된 이후 서울지방국세청장(2008년 말)에서 2009년 7월 국세청 차장, 2010년 8월 국세청장까지 고속승진을 한 점 등을 지적했다.

이현동 전 청장은 상사인 백용호 전 청장에게 보고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미국 내 정보수집활동은 역외탈세추적전담 센터장의 권한이다’라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재판부는 국정원이 국세청에게 정식으로 업무요청을 하지 않은 것, 그리고 DJ 비자금이라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항을 단서도 없이 국세청에 업무요청을 한 것, 또한 미국 공직에 있는 해외정보원에게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활동비를 지급한 점을 지적하며 박윤준 전 차장이 불법적 행위를 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고 보았다.

이에 대해 박윤준 전 차장 측에서는 국정원이라는 기관 자체의 특수성을 설명하며 정보수집이 정상적인 루트를 통해 이루어지기 어렵기 때문에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규정하는 것은 섣부르다고 반박했다. 변호인은 “국정원 업무 자체가 비밀리에 이루어지고 있고, 정보수집을 위해서는 대가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 국회에서 특수활동비 등의 예산을 배정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 무렵 DJ 측근인 다니엘 리가 한국계 은행을 통해 담보대출을 받는 과정에서 역외탈세나 자금세탁이 의심되어 미국 세무당국에서 기소를 하는 등 (DJ 비자금 실체가)근거가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라며 “IRS(미국 국세청)가 무슨 조사를 했는지 조사하는 것은 합당한 업무였다. 해외 비자금 의심이 있다면 국정원이나 세무당국이 수사를 하는 것은 공직자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주장했다.

즉, 정치적인 동기나 선거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행위만은 아니었다는 것. 아울러 “해외정보원에게 돈을 주고 역외탈세 관련 정보를 사오는 것은 국세청에서 실제로 이뤄지는 업무관행”이라며 “해외정보원으로부터 동국제강 장세주 회장 관련 정보를 받아 국세청에서 조사를 착수해 탈세를 적발한 사례도 있다”고도 덧붙였다.

다음 공판은 내달 28일 오후에 열리며, 최종변론이 진행될 예정이다.


유일지 기자  salix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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