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기 명목 민간소비지출 0.5%↓…정부지출이 총소비 떠받쳐
美 '화웨이 보이콧'에 수출 불확실성 더 커져…IMF "재정지출 늘려야"
윤종원 靑경제수석 "정부 정책여력 커져…증가속도 적절히 관리"

민간소비가 좀처럼 활력을 찾지 못하는 가운데 지난 1분기에 정부지출이 총소비를 겨우 떠받친 것으로 나타났다.

미중 무역 전쟁에 한국경제를 지탱해 온 수출마저 반등을 장담할 수 없게 되면서 결국 단기적으로라도 재정이 버팀목 역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9일 한국은행의 국민계정 잠정치 통계에 따르면 1분기 명목 국내총생산(GDP·기준연도 2015년·계절조정)에 대한 최종소비지출(총소비)은 308조5천억원으로 작년 4분기(308조8천억원)와 비교해 3천억원(-0.1%) 줄었다.

최종소비지출은 한국경제 전체의 소비 현황을 나타내주는 국민계정 통계로, 민간소비와 정부소비로 구성된다.

1분기 한국경제가 명목 가치 기준으로 0.8% 역성장(실질 성장률은 -0.4%)한 점을 고려하면 총소비는 그나마 버텨준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오기도 하지만, 실상을 뜯어보면 사정이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민간소비가 위축된 상황에서 정부소비가 전체 소비를 떠받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종소비지출 구성항목 중 정부소비는 1분기 중 9천억원(1.1%) 늘어난 반면 민간소비는 1조2천억원(-0.5%) 감소했다.

민간소비 위축은 최근 만의 일이 아니다. 명목 GDP 대비 민간소비 비중은 2000년 54.5%에서 지난해 48.0%로 6.5%포인트 하락한 반면, 정부소비의 비중은 같은 기간 10.9%에서 16.1%로 5.2%포인트 상승했다.

고용 여건이 악화하고 가계부채로 가계가 소비할 여력이 고갈된 상황에서 사실상 재정지출이 오랜 기간 성장의 버팀목이 돼왔던 것이다.

사정이 어려운 것은 내수의 근간인 민간소비만이 아니다.

국민계정 지출통계에서 재화 및 서비스의 수출은 작년 3분기 206조4천억원에서 4분기 198조1천억원, 올해 1분기 185조4천억원으로 반년 새 10.2% 감소했다.

수출액은 작년 12월 이후 6개월 연속 전년 동기 대비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 미중 무역 전쟁 격화로 수출 여건은 그야말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형국이다.

해외 투자은행(IB)들은 특히 미국의 화웨이 제재로 일부 국내 기업이 시장수요를 흡수하는 반사이익을 볼 여지가 있지만 중기적으로는 국내 수출과 투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한다.

화웨이코리아에 따르면 지난해 화웨이가 국내 기업들로부터 구매한 소재부품 규모는 약 106억달러로(약 12조6천억원), 우리나라 대중(對中) 수출액의 약 10%를 차지한다.

내수에서 민간소비가 부진하고 수출마저 곤두박질치다 보니 결국 성장세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부 재정이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지속해서 나오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달 낸 연례협의 보고서에서 "한국은 추가적인 경기 활성화를 위한 상당한 재정적 여력을 갖고 있다"며 확장적 재정정책을 주문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최근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한국의 성장률이 회복되지 않는다면 추가적인 재정을 통한 부양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국가채무비율 논쟁에서 드러나듯 확장적 재정정책을 펴는 게 능사인 것만은 아니다. 재정 건전성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는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재정전략회의 이후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 40% 돌파의 적절성을 둘러싸고 공방이 있었다. 지난 4월 국회에 제출된 추가경정예산안은 여야 대치로 처리가 하염없이 미뤄지고 있다.

그나마 최근 국민계정 통계의 기준연도 개편(2010→2015년)으로 지난해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38.2%에서 35.9%로 하향 조정된 것은 재정건전성 위협 논란에 대한 정부의 부담을 다소 덜어줄 것으로 보인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다른 선진국들에 비교할 때 한국은 국가채무비율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측면이 있다"며 "적어도 세금을 거둔 만큼은 재정지출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도 확장적 재정정책이 필요하다는 데에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윤종원 청와대 경제수석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국민계정 개편으로 지난해 GDP가 1천893조원으로 6.2% 늘어나다 보니까 GDP 대비 비율이 국가채무가 38.2%에서 36%로, 가계부채도 86%에서 81%, 기업부채는 102%에서 96%로 낮아졌다"고 말했다.

그는 "가계나 기업·정부가 여러 여건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정책여력이 좀 더 커지게 됐다"면서 "재정의 경우 향후 경제 상황을 감안해 증가속도를 적절히 관리해 나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현재 경기가 부진한 상황이라 경제 활력을 회복하기 위한 재정 부문에서의 여러 대책을 아주 적극적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재정당국이 암묵적 마지노선으로 삼고 있는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 40%까지 재정여력은 77조6천억원, 관리재정수지 적자 -3.0%까지 재정여력은 46조2천억원에 달한다. 관리재정수지 적자를 -3.0%내에서 관리하라는 것은 유럽연합(EU)의 재정준칙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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