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사이 ‘법과 원칙에 따라 일한다’는 말을 여러 행정기관의 장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융통성 없는 의미도 있고 자칫하면 ‘악법도 법이다’로 남용될 수 있으니 조심하여야 합니다.

지난 8일 김현준 국세청장은 첫 주간업무 회의에서 최근 국세청을 권력기관으로 비치게 하고, 나아가 정치적인 시비로까지 확대되는 세무조사에 대해선 "세무조사는 세법에 정한 원칙에 따라 철저하게 운영하고 조사과정에서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며, 법과 원칙에 의한 국세행정을 강조하였습니다.

같은 날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많은 국민이 지켜보는 이 자리에서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확실히 지키겠다고 약속한다”고 말하면서 정치적 사건과 선거 사건을 두고 어느 한 편에 치우치지 않겠다고 하면서 법과 원칙에 충실한 자세로 엄정하게 처리하겠다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법에 따른다고 하는 것은 법에 의한 지배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국가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거나 국민에게 의무를 부과할 때에는 반드시 국민의 대표기관인 의회에서 제정한 법률로써 해야 하고, 행정작용과 사법작용도 법률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는 법치주의를 말하는 것으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고 법적 안정성과 국민 생활의 예측 가능성을 부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원칙에 따른다는 것은 어떠한 일을 할 때 규칙, 원리 또는 원칙을 따져가며 일하는 방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 일이 공평하고 논리적인지를 따지는 것도 원칙주의에 해당합니다.

그럼 국세청장과 검찰총장 후보자가 이야기한 ‘법과 원칙에 따른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집행기관이 법에 따른다는 것은 납세자를 보호해주는 의미도 있지만, 비록 법에 문제가 있어도 납세자를 강요하고 따르게 하고 희생을 요구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과거 토지초과이득세부터 종합부동산세까지 미실현 이익에 대한 과세가 문제가 있음에도 국세청 전 직원을 동원하여 제도를 무리하게 안착시키려 하다가 헛고생에 국세행정 불신만 자초한 때도 있었고, 최근 비영업용 승용차에 대한 운영일지 작성처럼 현실성 없는 제도 운용도 있고, 이번 7월 10일 근로자 간이소득 지급명세서 제출 제도처럼 근로장려금을 지급하기 위한 것이지만 기존의 원천세 신고체계에 중복되어 불필요한 세무 협력 비용을 발생시키기도 합니다.

원칙에 따른다는 것도 사회적인 원칙이 무엇인지 애매한 상황에서 엉뚱한 자기 자신의 원칙까지 고집한다면 소위 ‘FM’대로만 처리하는 꽉 막힌 행정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결국 ‘법과 원칙’이 정부가 법 개정에 우월한 입장에서 법 규정을 만든 후 집행기관에서 행정 편의적으로 해석하여 엄격하게 적용한다면 더 큰 문제를 일으킬 것입니다.

물론 국세청장이나 검찰총장이 정치적인 목적의 조사와 수사의 경우에만 법과 원칙에 따른다는 의미로 이야기하였지만, 종사 직원과 대다수 국민입장에서는 실용적인 것보다 답답하게 행정을 운영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김현준 국세청장은 앞으로 납세자와의 소통 채널을 확대하는 등 현장 중심의 국세행정을 할 것을 다짐하였습니다. 법과 원칙에 경도된 일방적인 국세행정보다는 국민 정서에 맞는 조화로운 세정을 펼치시기 바랍니다.

[박영범 세무사 프로필]

△ YB세무컨설팅 대표세무사
△ 국세청 32년 근무
△ 국세청 조사국, 서울지방국세청 조사1~4국 근무
△ 네이버카페 '한국절세연구소'운영
△ 국립세무대학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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