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진행행이지만 한동안 대한민국 사회를 흔들었던 ‘조국의 시간’이 얼추 지나가고 연말이 다가오면서 세금이 화두가 될 ‘국세청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이는 국세청이 올해 국회가 정한 세입예산 즉 세수를 여하히 채우느냐를 가름하게 되는 시간이다.

국세청은 작년까지 내리 3년간 세수호황을 누렸다. 그런데 올해 세수는 세입예산을 밑돌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경기둔화에 따라 작년에 세금을 많이 냈던 대기업들, 그중에서도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낸 법인세만 수조원이 푹 빠졌다는 소식이다. 물론 올 한해 법인세수는 9월까지 65조8000억 원이 걷혀 전년동기 대비 6000억 원이 늘었다. 이는 법인세의 특성이 반영된 부분이 있다. 작년에 경기가 좋아 법인세를 많이 낸 기업들이 중간예납을 작년의 절반을 내던지 올해 상반기까지의 결산에 따라 납부액을 정하는데 따른 것이다. 결국 법인세는 내년 3월에는 곤두박질 칠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세수의 걱정은 소득세와 부가가치세의 감소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더 크다. 소득주도 성장 즉 소득이 늘면 소득세가 늘어야 하는데 9월까지 소득세의 경우 60조7000억 원(진도율 75.6%)이 걷혔으며, 전년동기 대비 2조4000억 원이 감소했다. 물론 미시적으로 살피면 근로소득세와 종합소득세는 늘었다. 소득세의 감소는 양도세의 감소와 근로장려금의 증가가 원인일 것이다. 하지만 소주성 정책으로 국민들의 소득이 증가했다고 할 수 있을까. 국민들의 체감소득 증가는 ‘영하’로 내려간지 이미 오래다.

또 소득이 늘면 소비가 늘어 부가가치세도 늘어야 하는데 부가가치세는 9월까지 52조 원이 걷혀 세수진도율은 75.7%로 전년동기 대비 4000억 원 감소했다. 소주성 정책의 실패만큼이나 경기가 곤두박질쳤다는 방증이다. 이 또한 세수를 수치화하는 측에서는 지방소비세율이 11%에서 15%로 늘어나면서 국세청이 거둔 부가가치세를 지자체로 넘겨준 돈이 크게 늘어난 것이 원인이라면서 애써 죽쑤는 경기탓 이라는 지적에 고개를 젖지만 '경기가 좋아져 부가가치세가 늘어났다'고 생각할 국민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

여기에 기재부는 10월 이후 부가가치세, 소득세(근로소득세, 11월 종합소득세 등), 종합부동산세(12월) 등 주요세목을 중심으로 전년대비 세수 증가가 예상된다면서 올해 연간 세수는 전년대비 감소 폭이 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그런데 이 말의 근저에는 ‘국세청에서 조금만 노력하면 올해 세수달성은 무난할 수 있다’는 시그널로 읽히면서 국세청이 압박을 느끼지나 않을지 노파심이 생긴다.

세수진폭이 아예 크면 국세청도 세수보다 ‘민생 먼저’의 길을 택하겠지만 국세청장직에 앉다보면 최소한 세수만큼은 맞춰야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점에서 자칫 연말 ‘무리수’를 두지나 않을지 걱정이 앞서는 것이다. 아니다 다를까. 김현준 청장은 최근 국세청 고위간부들 64명을 수원으로 불러 모은 뒤 “세입예산 조달과 공평과세 구현을 비롯한 국세청 본연의 임무를 충실히 완수할 수 있도록 비상한 각오로 맡은 바 업무에 최선을 다해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고 한다. 국세청장으로서 당연한 말이지만 추상같은 청장님의 말씀에 간부들은 저마다 ‘아 결국은 세수를 채워라’라고 받아들였을 것이다.

과거에 이런 일이 있었다. 그때도 국세청이 세수를 채우느냐 마느냐를 두고 노심초사했다. 본청 징세국장은 연일 세무서장들에게 전화를 돌려 세수상황을 점검했다. 그리고 이 국장은 청장에게 ‘현실은 어렵다’는 실제 상황을 보고했다. 이러한 상황을 반영해 그즈음 국회에서 감액추경을 통과시켰다. 그런데 연말 세수를 집계했더니 국세청이 거둔 총 세수는 감액추경을 넘어섰다. 그때 담당국장은 국세청장에게 크게 깨졌다.

뒤에 들어보니 그 국장도 청장에게 보고할 때 몇백억을 숨겨두었고 몇몇 세무서장들도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을 숨겨놓았던 것. 연말쯤 ‘우리 직원들이 고생을 하여 천신만고 끝에 세수를 늘렸습니다’라고 깜작 보고하려는 심산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국세청과 세수를 둘러싼 전설 같은 이야기들은 많다.

결국 수백억 수천억의 세수는 국세청이 마음만 먹으면 좌지우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또 기획재정부도, 청와대도, 국회도 다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국세행정이 고무줄도 아니고, 납세자들이 더 내겠다고 더 받을 수 있는 세법도 아니고, 참 아이러니한 것이 국세행정이라는 것이 국세행정의 내밀한 속살을 모르는 범부들의 생각이다.

물론 국세청장의 입장에서는 세수를 채근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세수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정부의 경제정책이 실패했다는 것이 수치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밤잠을 설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국세청의 제1사명인 ‘국가재원조달’이라는 숙명을 완성하지 못한 청장으로 불릴 수 있다는 것도 자존심이 상한다.

그래서 기자는 과거 군부시절 국민위에 군림하던 국세청이 가졌던 패러다임인 ‘국가재원의 안정적 조달’이라는 국세청의 임무를 바꾸어야 한다고 본다. 지방청장과 세무서장들을 다그치지 말고 지금 국세청 정문에 큼지막하게 새겨놓은 글귀 ‘균공애민’에만 열정을 다하라고.

세수를 달성하고 못하고는 국세청의 책임이 아니라 경기예측을 잘못하고, 경제정책을 잘못 펼친 전적으로 기획재정부의 몫이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세정일보 [세정일보] 세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