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은 ‘스위스 비밀계좌’의 존재 알았나? 몰랐나?…‘조세포탈’의 성립 여부

조세심판원, 1년 반 동안 결론 못내고 ‘끙끙’…세금전문가들 관심 집중
 

한진그룹 2세 경영진들에게 부과된 ‘상속세금’ 852억원을 둘러싸고 조세심판원의 결정에 온 촉각이 쏠리고 있다. 한진이 심판원에서 이긴다면 국세청은 소송을 걸 수 없고 결국 세금도 거둘 수 없기 때문이다.

8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지방국세청은 지난 2017년 故조중훈 전 한진그룹 명예회장의 ‘스위스 비밀계좌’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해 상속인 5인에게 상속세와 가산세를 포함해 852억원의 세금을 부과했고, 이에 대한 불복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여기서 쟁점은 조 전 회장의 상속인들이 ‘스위스 비밀계좌’의 존재여부를 알았는지, 또한 이것을 ‘조세포탈’로 볼 수 있는지 여부다.

◆ 상속세 부과제척기간 10년, 조세포탈 적용시 15년…검찰 조세포탈 ‘공소권없음’ 결론

조중훈 전 한진 회장이 사망한 것은 2002년 11월이다. 조 전 회장이 사망하기 넉 달 전인 7월경 스위스 비밀계좌에서 580억원 가량이 빠져나갔다. 현재 이 돈을 누가, 왜, 어디로 인출했는지 행방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재산이 어떻게 사용됐는지 알 수 없을 때는 상속받은 것으로 본다.

상속인은 故조양호 전 한진 회장, 조현숙 씨,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 故조수호 전 한진해운 회장 등이다.

그간 정부는 세원발굴(지하경제 활성화)을 위해 역외탈세에 대한 감시를 강화해왔다. 2011년부터는 해외금융계좌 신고제도를 도입하고, 2015년에는 대기업·대재산가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미신고 역외소득·재산 자진신고제’를 한시적으로 운영하면서 이 기간 동안 자진신고를 한 자에게는 가산세와 관련 처벌을 면제해줬다.

자진신고 기간이 끝난 2016년, 국세청은 역외소득 은닉 혐의자에 대한 대대적인 세무조사를 벌였고, 해외금융계좌 신고제도도 강화해왔다.

이에 따라 2017년 8월경, 조수호 전 회장의 아내인 최은영 씨가 국세청에 스위스은행 계좌에 대한 상속재산을 수정신고했고, 국세청은 곧바로 해당 신고 내용에 대한 세무조사에 들어갔다. 세무조사를 마무리하고 2018년 4월경 상속세 신고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며 이들을 조세포탈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이와 함께 상속세 및 가산세 852억원을 부과했다.

서울남부지검 형사6부는 국세청의 고발에 따라 조 전 회장의 사망으로 스위스 예금 채권 약 450억원을 상속받았음에도 해외금융계좌를 신고하지 않았다며 국제조세조정에관한 법률위반으로 기소했다. 그러나 검찰은 프랑스 소재 건물, 스위스 은행 계좌 잔액 등을 상속세 약 610억원을 포탈했다는 특가법위반(조세) 부분은 2014년 3월 공소시효가 완성됐다며 ‘공소권없음’ 처분을 내렸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상속세 부과제척기간은 ‘10년’이기 때문에 국세청은 2013년 5월까지 상속세를 부과할 수 있다. 그러나 조세포탈을 적용한다면 부과제척기간은 ‘15년’으로 늘어나는데, 2018년 5월까지가 그 기간이었다. 국세청은 조세포탈 혐의를 적용해 2018년 4월 상속세를 부과했다.

한진은 보도자료를 내고 ‘2016년 4월 해외상속재산의 존재를 처음 알았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1차로 192억원을 납부하고 5년간 나눠서 내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두 달 뒤 갑자기 입장을 바꿔 조세심판원에 심판청구를 내면서 스위스계좌의 존재자체도 몰랐고 580억원이 인출된 사실 역시도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현재 한진가 사건에는 국내 한 대형 로펌이 심판대리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로펌은 상속세 부과제척기간 10년이 지나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스위스 비밀계좌의 존재를 몰랐기 때문에 고의로 탈세를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로펌에는 국세청 고위직 출신도 배치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국세청 과세논리 ‘대법원 판례’ 희망

이 사건은 국세청이 강조한 조세포탈 혐의에 대해 검찰이 ‘공소권 없음’결론을 내리면서 한진 측의 손을 들어줬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국세청이 불리한 상황이다.

그러나 국세청은 1990년 5월 선고한 대법원 판례(90도422)를 내세워 과세 논리를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적극적 행위뿐만 아니라 소극적 행위도 부정행위로 보고 있는데, 해외금융계좌 미신고(소극적 행위)도 부정행위에 해당해 세금이 부과된다는 취지다.

특히 일부 언론에 따르면 조양호 전 회장 등은 검찰 조사 과정에서 2003년경 스위스 비밀계좌의 존재를 알았다고 실토했고, 국세청 세무조사 당시에는 ‘가중처벌이 두려워 몰랐다고 했다’고한 만큼, 대법원 판례에 따라 탈세행위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한진과 국세청은 심판원 심판결정을 숨죽이며 기다리고 있다. 조세심판원은 납세자가 납세고지를 받고 부당한 세금일 경우 밟는 불복절차 기관이다. 심판원은 사실관계를 조사하고 심판관회의를 열어 결정을 내리는데, 과거의 여느 고액사건들처럼 이번에도 심판원은 1년 반이라는 기간동안이나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모양새다.

심판원의 결정이 한진가의 손을 들어줄 경우, 국세청은 더 이상 손을 쓸 수가 없고 사건은 그대로 종결된다. 그러나 국세청의 과세가 맞다고 결론 내릴 경우 납세자는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즉 심판원에서 지더라도 법원에서 한번 더 판단을 받을 수 있다.

이런 가운데 현재 심판원에서는 검찰 측에서 ‘조세포탈 혐의’에 대해 ‘공소권없음’으로 결론을 내린 부분을 놓고 고심을 거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검찰의 의견이 심판결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사건을 바라보는 세금전문가들은 검찰의 의견보다 국세청의 과세논리와 조세정의라는 큰 틀이 심판관들의 판단의 잣대가 될 것이라면서 이번 사건의 향방이 납세자권리구제기관이면서도 조세정의를 실현하는 최후의 보루라는 기관으로서의 조세심판원이 국민적 신뢰를 쌓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한편 국세청에서는 매년 해외금융계좌 신고를 적극적으로 국민들에게 알리고 있고, 이는 전세계적인 추세다. 신고의무를 위반할 경우 과태료가 부과되고 일정금액 이상인 경우에는 명단공개와 형사처벌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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