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이름이 영문으로 뭡니까? National Tax Sevice(NTS), 즉 국세청은 서비스 기관이라는 겁니다. ‘서비스’라는 단어가 들어가는데 서비스를 잘 해야지 않겠습니까?”

국회에서 국세청에 자주 요구하는 것이 있다. 바로 국세청은 ‘납세 서비스 기관’이라는 점이다. 과거에는 세금도둑을 잡는 경찰이었다면 지금은 납세자에게 봉사하는 서비스 기관이라고 납세자에게 ‘서비스(친절)’를 충실히 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같은 지적에 매번 국세청장은 “예. 의원님 말씀에 동감합니다”하고 맞장구를 친다.

그러나 국회 국정감사 단골 멘트를 들을 때마다 국세공무원들은 ‘국세청의 본연의 업무는 세금을 거두어들이는 일인데, 서비스 잘하라고 기관명에 Sevice가 들어간 줄 아나?’라며 쑥덕이곤 했다.

한 국세청 직원은 “물론 국세청 영문이름에 Sevice가 들어가긴 하지만, 우리나라 정부조직 영어명칭에 관한 규칙에 ‘청’의 경우 Administration, Agency, Service, Office 4가지로 쓰고 있을 뿐”이라며 “기관명에 Service가 들어가는 국정원이 서비스기관은 아니지 않느냐”고 말한다.

국정원은 NIS(National Intelligence Service), 대통령경호처는 PSS(Presidental Security Service), 산림청은 KFS(Korea Forest Service) 등 영문 이름에 ‘서비스’가 들어간다.

물론 다른 기관들의 서비스가 어찌됐든, 현재의 국세청은 땅에 떨어져있는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하고 서비스 기관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여러 노력을 쏟고 있다.

김현준 국세청장 역시 “국세청은 국민을 돕는 봉사기관”이라며 ‘서비스’측면을 강조한 바 있다. 세무서를 찾는 방문 민원인에게 친절해야하는 것은 물론이요, 현장을 직접 찾아가 애로사항을 해결해주는 국세행정 서비스를 펼치라고 주문한다.

국세청은 항상 혁신을 시도하고 있다. 납세자가 세금을 내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맞춤형 신고도움자료를 제공하고, 보이는 ARS, 모바일 앱 ‘손택스’, 업종별 신고요령, 모바일 신고방법 동영상 제공, 신고서 주요항목을 바로 조회해 채울 수 있는 ‘채움서비스’까지 국세청의 ‘서비스’는 날로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일선에서는 국민들의 수준은 어떠한가. 아직까지도 세무서에서는 신고철마다 납세자와 씨름 중이다. 국세공무원은 신고철을 전쟁터에 비유하기도 한다.

매 신고철에 세무서를 찾으면 몇 시간이고 줄을 서서 세금을 신고한다. 납세자 입장에서는 돈 내야하는 것도 탐탁치않은데, 긴 대기시간에 짜증은 늘어만 간다.

세무서 내에는 ‘국세청 직원은 신고서를 대리 작성하지 않습니다’라는 현수막이 크게 붙어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세무서가 신고서를 대신 작성해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세무대리를 할 수 있는 것은 세무사 등 법적으로 정해진 이들만 할 수 있지, 세무공무원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이기도 하다.

납세자들도 세금을 신고하면서 절세할 수 있는 부분은 절세를 받고 싶지만, 얼마 되지 않는 수입에 세무대리인까지 쓰는 것은 부담스럽다. 이에 직접 세무서를 찾아 세금신고를 하고 있고, 세금신고가 어렵다보니 세무서직원들에게 신고를 도와달라고 하는 것이다.

국세청 직원들은 신고서를 대신 써줄 수 없음에도 묵묵히 이들의 신고를 돕는다. 행여라도 민원이 발생하면 그것만큼 피곤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고를 해줘도 문제는 발생한다. “세무공무원이 신고해 준 건데 가산세가 나왔다. 직원을 불러와 대신 내게 하라”고 세무서를 시끄럽게 만드는 일은 예삿일이다.

직원들은 ‘서비스’를 강요받고 있지만, 그들의 불만을 토로할 곳은 아무데도 없다. 법적으로 그들이 해서는 안 되는 일(세무대리)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더미같이 쌓여있는 일을 뒤로 하고 이들의 신고를 해줘야 한다. 그뿐이랴 문제가 생기면 세무서 직원 탓이다.

대부분의 납세자는 아무 문제없이 세금 신고를 하고 가지만, 세무서 직원들에게 반말을 해가며 빨리 신고해달라고 요구하는 ‘왕대접 당연’형, 왜 이리 낼 세금이 많냐며 짜증부터 내는 ‘짜증’형, 직원들에게 욕부터 내뱉는 ‘욕쟁이 어르신’형, 내가 내는 세금으로 밥벌이 하는 거니 고마워하라는 ‘깔보기’형, 본인 마음에 안 들면 여기 서장이 누구냐며 윗사람 데리고 오라는 ‘갑질’형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욕설과 폭언, 인신공격에 노출되는 직원들은 신고철마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느끼지만 어디에 호소할 곳이 없다. 국세공무원은 친절해야만 하고 좋은 모습만 보여야하기 때문이다. 어느 조직이든 마찬가지이지만 국세청은 특히나 폐쇄적인 조직문화로 사건사고가 외부로 알려질 경우 더 큰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게 되기 때문이다.

이에 국세청은 직원들의 애로사항 국세청은 장기적으로 세금신고대리를 납세자 스스로 할 수 있게 많은 준비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대면’을 줄이기 위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세청은 세무서의 수를 늘릴 수밖에 없다. 현재 일선 세무서의 수는 125개이지만 구리, 연수, 광산세무서가 신설될 예정이므로 곧 128개로 늘어난다.

특단의 대책이 없다면 수십년간 이어져온 신고작성 대행과 같은 관행은 사라지기 힘들 전망이다. 물론 악성민원인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 국세공무원은 “신고업무가 끝나고 납세자로부터 듣는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면 힘들고 지친 하루의 피로가 싹 가신다”며 “힘들 때도 있지만 보람을 느낄 때 제일 행복하다”고 말했다.

국세청 근무경력이 20년을 넘는 국세청의 한 ‘베테랑’ 직원은 “국세청의 납세서비스 수준은 날로 높아져 가는데, 국민들의 수준도 함께 높아져야만 성실 납세한 국민이 존경받는 성숙한 납세문화가 자리 잡을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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