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호영 세무사

그를 처음 마주친 건 눈빛 이었다. 어둠 속에서도 반짝이고 한없이 맑으며 순수하고 따뜻한 그 눈빛, 육십여 성상 동안, 세상 풍파와 풍진 세월을 격어 왔음에도 그의 눈빛은 어린 소년 혹은 소녀같이 그렇게 순수하고 맑고 은은할 수가 있을까? 해맑으나 다소 우수 어린 그의 눈, 반전의 매력이며 너무나 아름다웠다.

진정으로 그와 마주친 건 따스한 마음을 품은 그의 가슴이었다. 잔잔하면서도 부드럽고 사랑스런 그의 음성 속에서 따뜻한 그의 가슴을 읽고 느낄 수 있었다. 참으로 사랑스럽고 따뜻한 그였다. 그가 지닌 아름답고 부드러운 카리스마이다.

그리고 그가 내게 건넨 건 한 잔의 따뜻한 차였다. 그리움이라도 금방 묻어 나오게 할 것처럼 모락모락 김이 배어 나오는 한 잔의 차, 그가 건넨 차는 그동안 수없이 마신 어느 차보다도 깊은 맛과 향이 황홀하였다. 다정함을 가득 담고 있었다.

또한 그 한 잔의 따스한 차와 더불어 더욱 짖게 다가온 것은 그의 정이었다. 그의 정을 마신 것이다. 따스한 차와 향기가 내 몸속 마음 속 구석구석 누빌 때 그가 더욱 정감 어리게 다가 왔다. 또 다른 세상, 또 다른 인생이 구석구석에 파고들어 온 것이다.

우연히, 그가 봄바람을 타고 별빛의 속삭임과 함께 영화처럼, 운명처럼 다가올 때 누구도 어쩌지 못하는 불꽃처럼 타오르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렸다. 달콤한 감정이고 깨어나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다.

영화 '블랙!(Black)', 그 영화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인생은 마치 솜사탕과 같이 달콤한 것이다. 그 솜사탕이 녹기 전에 달콤할 때 빨리 먹자, (Life is like a sweet cotton candy, let's eat it quickly when it's sweet before it melts.)"라고.

그렇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근육, 뼈, 의지, 신념 등, 몸도 마음도 솜사탕이 녹아 무너져 내리 듯, 무너져 내려 많은 것들이 바람과 함께 사라짐을 생각할 때 사랑하고 감동하며 희구하는 삶의 하루하루를 소홀히 할 수 없는 날들이다.

도도히 쉬임없이 흐르는 맑은 강물에 멋진 조각배를 띄우고 출렁이는 물결 따라 우거진 숲을 헤치며 깊은 곳으로 깊은 곳으로 하염없이 황홀하게 노를 젓는다. 그와 함께 황홀경을 향한 여정에 오르고 싶다. 그 어느 여정보다도 아름답고 멋진 여정일 듯하다.

그의 밤이 살포시 다가오고 어둠 속 고요는 그의 침묵일지 몰라도 차 창문 뚫고 들어와 스치는 바람 소리는 봄바람에 실려온 그의 속삭임과 나의 고백, '첫사랑도 풋사랑도 아닌 아, 어쩌란 말인가 중년의 그를 사랑하고 있다면' 너무나 웅장하고 찬란한 속삭임이요 고백이 아닐 수 없다.

아스라이 수평선이 보이는 해변 언덕의 어느 아담 하고 한적한 까페, 창밖 절벽에는 바다에 빨려 들어갈 듯한 예쁜 펜션이 우뚝서있다. 마치 그와 나를 위해 잘 세팅되어진 공간, 나와 그 외 음악과 바다, 그리고 수평선을 날으는 갈매기만이 시선에 찬다.

다소 무뚝뚝해 보이고 퉁명스런 까페 마담이 지어 주는 진한 대추차와 고소한 까페라떼, 로맨틱한 바닷길의 산책, 말을 밷자마자 발밑에 곧바로 등장한 할미꽃 군락, 즐거워하는 그의 모습에 나도 행복했다.

'인 비져블 맨(The Invisible Man)' 영화가 방영 되고 있는 그 어느 요람, 영사기는 아랑곳 하지 않고 하염없이 돌아간다. 마른 가슴 적시는 건 그의 이슬이던가, 희디 희고 부드러운 가슴에서 유영하는 '인 비져블 맨'의 손길은 사랑의 반주였던가, 촉촉히 입술 떨림은 그의 사랑의 밀어요 속삭임 이던가. 어스름한 어둠속에서 움직이는 그의 모습이 매혹적이다.

온 몸에 스믈 스믈 스며들어 느껴오는 따뜻한 손길은 그의 마음인가 가슴인가. 그와 함께 깊숙한 숲속의 옹달샘에 거함을 띄운다. 풍랑과 파도를 헤치고 항해하는 거함, 거침이 없다, 그러나 조심스럽다. 노에 젖은 그의 진한 향기를 느끼며 손끝에 닿은 그의 향기를 마신다. 그를 향한 가슴 속 깊은 곳 그리움으로 쌓인다.

그와 마주한 사랑스런 눈빛, 그가 건네준 따뜻한 국화차,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화실에 은은하게 울려 퍼지던 알듯 모르던 음악, 그 음악과 함께 스텝을 밟으며 느낀 그와 찰라의 전율, 영화 '여인의 향기(The scent of woman,)' 에서 보았던 알파치노의 탱고보다 더 우아하고 멋졌다.

그는 말한다. "탱고나 브루스 춤을 추다 보면 다리가 꼬이고 스텝이 엉키게 되어 있다. 그러면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인생도 그렇다.( If you're dancing tango or bruce, your legs are twisted and your steps are getting tangled. Then you start over there. So is life.)"라고,

영화가 끝나면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 듯, 찻잔이 비어져오니 석양은 벌써 하루의 끝을 알린다. 살포시 안겨 오던 등줄기 포옹은 우정과 사랑의 화룡점정이오, 사랑의 미학이었다. 한동안 말없이 수평선 넘어만 응시하였다.

이 봄, 봄볕이 가득 쏟아지는 해변 언덕 어느 까페 옆 바닷길 해풍에 가슴 심연에 엄습하는 설레임을 주체할 수 없는 것은 봄 기운에 퍼지는 꽃 향기가 아니라 코끝에 스치는 그의 향기 때문 일 것이다.

이 봄, 중년의 나이에도 주체할 수 없이 황홀하고 찬란하게 가슴 설레는 것은 만화방창, 들판에 꽃이 만발 하여서가 아니라 가슴 속에 한 송이, 그가 피어서일 것이다. 그는 김동과 설레임 그것일 것이다.

이봄, 선홍빛 입술로 사랑을 노래하고 그를 스친 손끝으로 그리움을 고백하고 포옹으로 애무 보내고 싶은 날, 그와의 봄이 우정, 사랑이었으면 좋겠다. 로댕의 말처럼 "사랑하고 감동하고 희구하고 전율하는 삶을 살아라"에 한발짝 다가선 로댕을 동반한 로마, 그 설렘과의 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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