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호영 세무사

영화 감상에 입장료를 지불하고 처음 접한 것은 중학교 1학년 때다. 스승의 날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담임 선생님 댁을 방문한 후 여학생 5명, 남학생 3명과 함께 모극장에서 '스잔나'라는 영화를 감상했다.

감수성이 최절정인 사춘기 시절이었으니 여학생들과 영화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짜릿하였다. 그래서 지금도 영화 내용뿐만 아니라 영화 주제곡도 부를 수 있으니 그때의 설렘이 어땠나를 짐작할 수 있지 않은가? 그때나 지금이나 여성과 함께 시간을 공유 한다는 것은 오묘하고도 야릇한 감정이 발동함은 같은 것 같다.

"해는 서산에 지고 쓸쓸한 바람부는데… 인생은 허무한 나그네 길, 나무는 봄이 오면 새싹이 피건만 인생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네…"

뇌종양으로 6개월 시한부 인생을 사는 주인공 스잔나, 오동잎이 스산하게 떨어지던 가을날, 처마 밑을 거닐며 부르던 스잔나의 주제곡, 슬픈 청춘무곡이 50여년이 지난 현재에도 귀전에 맴돈다.

인생 여정중 영화감상에 대한 첫 걸음이었고, 삶과 죽음을 생각하게 하는 주제의 영화였고, 사춘기 시절 영화에 대한 강렬한 첫 사랑이었다.

그 후,

대구지방국세청 조사국장으로 발령이 났었다.

과장들과 티타임시 전입 환영식을 해주겠다고 일정이 어떠냐고 묻는다. 직원들과 회식하자는 애기, 그래서 "식당에서 식사하는 것은 매일 하는 것이니 저녁에 영화관에 가서 모두 영화 한편 감상 하자"고 제안했다.

과장들은 나의 뜻밖의 제안에 의아하다는 듯 서로 눈빛을 교환하면서도 싫지 않은 표정들이었다. 영화 감상 후 맥주 한잔씩 하면서 직원들과 대화를 나눴다. 그동안 영화를 몇 편이나 감상했는지 물어 봤다. 10년~20년의 공직 생활 중 2~3편 정도의 영화도 감상한 직원이 없었다.

당시 느낀 소감은 공직자들이 영화 감상 등 문화 활동에 소홀하다는 생각을 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 후 영화 감상 행사를 기화로 직원들이 좀 더 많은 영화를 감상했으리라 생각해 본다.

가끔 공직자는 '영혼 없는 사람'이라는 말이 회자 되곤 한다. 비약이기는 하지만 10년, 20년 동안에 영화 한편도 제대로 감상하지 않는 것에서부터 기인하는 게 아닐까도 생각해 보았다. 영화 감상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였던 듯하다.

► 영화 감상 모임 '영혼의 향기'

5년여전 지인이 '영혼의 향기'라는 영화 모임에 안내해 주었다. 회원 100여명(여성 80여명, 남성 20여명)중 참가 신청을 받아 압구정, 신사동 일대의 사설 영화관에서 30~40여명이 오붓하게 감상할 수 있는 모임이었다.

문화 활동의 계기가 될 듯 하여 흔쾌히 응하게 되었다. 분위기도 새롭고 감상을 해보니 정서적으로 쏠쏠하게 받쳐주고 당김도 느꼈다.

그 후 운영을 멤버십으로 전환하니 여성이 40여명, 남성이 10여명으로 줄어들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여성 회원의 숫자는 줄지 않는데 남성은 영화를 상당히 애호하는 한분과 필자, 두명만 참석하여 남성 회원의 명줄을 이어 가고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영화 감상 후 영화 모임 밴드에 감상평이 올라오면 댓글도 성의껏 달아 주고 구성원들과 소통과 교감을 통해서 꽤 인기가 있었던 것 같다. 가끔 그룹지어 회식도 하고 영화 이야기도 나누는 기회도 있었다.

이 영화 모임에 참여하면서 영화 등 문화 활동에 여성들 보다 남성들의 관심 혹은 인식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 저녁에 술상 기울이면서 신변잡기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등이 일상이고 관행화된 남성의 문화가 그러한 결과를 초래한 것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사실 한명 참여하던 그분도 좀 쑥스러운지 참여하는 횟수가 많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나도 영화 감상 광도 아니고, 여성편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혼자 여성들 틈에 앉아 영화를 감상한다는 것이 궁상맞기도 하고 쑥스러웠다. 결국 중도 하차했다.

아무튼, 아쉬운 하차이기는 했지만 '영원의 향기'라는 영화 모임을 통해 영화 감상에 대한 흥미를 갖게 되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 '영화와 비평' 과정 수강,

영화에 다소 맛을 들인 필자는 사무실 가까이에 있는 서울교대 '영화와 비평'이라는 6개월 과정에 등록하였다. 영화에 대해서 워낙 무지하니 학문적으로 좀 배워 봐야 되겠다는 뜻에서였다.

담당 교수에 의해 영화에 대한 강의가 이뤄졌고 매주 한편씩 영화를 감상하였으며 감상 후에는 영화에 대한 감상평을 서로 나누고 간간히 영화 감독 등의 특강도 진행 되었다. 모두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선택한 과정이고 모임이니 나긋나긋 하고 샤방샤방한 대화가 오가는 분위기라서 새로운 맛이 있는 강의였다.

결국 영화 감상 동호회 모임과 수강 등은 필자로 하여금 '노를 힘껏 저어 목표를 향해 도전하는 삶이 아닌, 노를 내려놓고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삶(음,미,체)'으로의 전환을 이끄는 한줄기 동기가 되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 청백포럼!

저녁에 소주잔 기울이며 상호 유대와 친목을 도모하고 소소한 일상의 정보를 교환하는 '사랑방 모임'에 영화감상 이라는 메뉴를 추가하여 진행하였다. 지난 3년여 동안 비교적 보람 있었다. 특히 많은 구성원들이 관심을 가져 주고 호응과 성원도 해주니 솔직히 힘도 났다.

영화 감상을 통해 포럼 구성원들로 하여금 좀 더 영화, 혹은 여타의 문화 활동에 가까이 하는 '마중물'이 될 수 있다면 더 큰 보람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사실, 영화를 감상 하게된 동기는 소설 등 독서를 하려 하니 눈이 침침하고 피곤하였다. 그 대안으로 생각한 것이 영화 감상였다. 똑똑한 작가가 쓴 소설 등에 똑똑한 감독, 연출가 등에 의해 각색, 각본이 되고 미인 미남인 배우들에 의해 연기 되는 것 자체만으로도 영화는 충분히 매력이 있다라고 생각되었다.

거기에 아름다운 경치, 감미로운 음악, 휘황한 조명, 음향 효과 등의 무대를 조우하니 영화마다 신천지요, 별세계가 아닌가. 영화를 감상하고 한편 한편 후기를 써보는 과정에서 영화에 대한 이해의 완성도도 높아가는 것도 알게 되었다.

또, 저변에 숨죽이며 도사리고 있던 감성이 살아나는 기분도 들었다. 영화 속의 주인공, 조연, 스탭 등, 영화적 체험인 타인의 삶을 통해서 영혼이 맑아지고 인생관, 사생관등 가치관이 좀더 윤색 되고 정치되어 감을 느끼기도 하였다.

저녁 식사 후,

차를 마시며 아내와 영화와 글에 대해서 잠시 대화를 나눴다. "Stay fooish, stay hungry(우직하라, 갈망하라)" 좀 더 우직해야 했고 겸손하고 교만하지 않는다는 거, 매우 중요한 덕목인 것 같다.

갈망은 있었지만 갈망하고자 하는 곳에 도달할 만한 그에 대한 노력과 충만을 위한 Input이 있었던가. foolish도 hungy도 필자의 인생 여정에는 부족한 편이었다는 반성을 해본다. 영화 감상에 임하여서도 마찬가지 인 것 같다. 뜬금없이 필자는 스티브 잡스의 위의 말을 언급했다.

늘 그렇듯, 돋보기를 코에 걸쳐 내리 쓰고 공부에 열중하며 공부가 제일 좋은 취미라는 아내 왈.

"그러니까 나이 잡수시면 'shut the mouth,(입다물다)' 해야 한다"란다. 그리고 "말보다는 사색과 숙고가 있어야 한다"라며 한 발짝 더 나간다. 나에게 이르는 촌천살인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또한 "신에 의해서 그냥 저냥 만들어진 남자, 그런 남자 친구뿐만 아니라 지구의 반을 차지하고 그 남자를 컨트롤하기 위해 만들어진, 또 모든 신으로 부터 온갖 귀한 선물을 받은 판도라, 즉 최초의 여자, 그런 유(類)의 여자에 대해 폭넓게 시야를 가지려면 여자 친구도 사귀어 보라고 말한다."

사알짝 내용 년수가 다된 사람 취급 받는 느낌도 들고 너그럽게 '여자 친구'를 사귀어 보라는 옵션을 주니 고맙기도 하다. 좀더 젊었을때 이런 말을 해줬으면 어땠을까?

"매너있고 품격 있는 태도로 여성과 교감할 수 있어야 멋진 남성이다"라는 단서 조항을 추가한다. 신이 제조한 판도라, 그 여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말을 에둘러 하는 것 같았다. 훈시(?)같지만 고마운 말이었다.

늘 '영화에 대한 화두는 필자가 잡지만 결국, 필자는 을(乙)이 되고 아내가 갑(甲)이 되는 느낌' 이다. 불완전 하고 거칠게 창조된 남자, 남자 보다는 좀더 바르고 완전하게 창조된 여자, 신의 농간이니 어쩔 수 없다.

아내와의 차 한잔 마시며 하는 대화도 어쩜, 영화의 한 장면(scene)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영화 감상을 통해 아내와 영화를 주제로 한 대화의 시간이 많아졌다는 것도 큰 수확중 하나이다.

곧, 삶 자체가 영화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곤 한다. ‘영화와 인연'에 관한 이야기지만 영화 감상을 통해서 인연을 맺은 주위 사람들과 '인간적 인연'을 두터이 할 수 있었다는 점도 감사하게 생각하며 펜을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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