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변호사에게 세무대리 일부를 허용하는 내용의 ‘세무사법 개정안’이 결국 통과되지 못했다. 20대 국회에서도 ‘위헌성’ 논란에 부딪히며 통과되지 못한 법안이, 과연 21대 국회에서 똑같이 발의된다 하더라도 법사위의 문턱을 넘을 수 있을까.

세무사업계에서는 ‘낙담’에 이어 ‘한숨’섞인 반응이 나온다.

같은 내용의 법안이 발의된다 하더라도 20대 국회 법사위를 설득시키는 것조차 불가능한 세무사법 개정안이 어떤 명분으로 기재위 문턱을 넘을 수 있을지 세무사업계는 벌써부터 불안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또한 이대로라면 세무사법 개정안 통과는 사실상 어렵지 않겠냐는 불길한 전망도 나오고 있다.

국무조정실의 중재로 기재부와 법무부가 합의한 6개월의 교육만 받으면 변호사에게 세무대리 일체를 허용하는 안(案)이 그대로 굳어지는 것 아니냐는 것.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며 입법개선 시한으로 둔 것은 2019년 12월 31일까지다. 2020년 5월이 하순을 가리키고 있지만 여전히 입법공백사태로 시장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으며, 특히나 제20대 국회가 종료돼 법안이 폐기된다는 긴박한 상황에 속에서도 결국 세무사법이 개정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무사법 개정안이 국회를 못 넘은 표면적인 이유는 ‘위헌 논란’이다.

세무사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 수 있던 마지막 순간 여상규 법사위원장은 “위헌성 있는 법안을 그냥 통과시켰다가 나중에 헌법소원을 갖게 될 것이므로 법사위로서는 너무 무책임해 보인다”고 말하고 공을 21대 국회로 넘겼다.

그렇다면 여상규 위원장이 말하는 ‘위헌성 있는 법안’의 뜻은 뭘까. 지난 2019년 8월 맨 처음 나온 세무사법 개정안(정부안)에는 변호사에게 8가지 세무대리 전부를 허용하는 대신, 실무교육 이수 조건을 달았다.

2004~2017년 변호사 자격 취득자에 대한 세무대리를 허용하자는 것인데, 이 기간에 해당하는 변호사의 수만 1만8000명이다. 세무사회원 1만3000명보다 많은 수의 경쟁자가 한꺼번에 세무대리 시장으로 쏟아질 것으로 전망됐다. 이에 세무사 업계에서는 변호사에게 세무대리 업무 전부를 허용하는 것이 아닌, 장부작성과 성실신고확인은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업역간 갈등 심화가 시작됐다. 기재위 소속 여당 간사인 김정우 민주당 의원의 대표발의로 8가지 세무대리 업무 중 장부작성과 성실신고 확인 업무를 제외하는 내용의 세무사법 개정안이 발의됐고, 곧바로 법사위 소속 제2소위 위원인 이철희 민주당 의원의 대표발의로 8가지 세무대리 업무를 전부 허용안이 발의됐다.

이렇게 정부안과 김정우, 이철희 의원안 3가지 개정안을 소관 상임위인 기재위에서 논의해 변호사에게 장부작성과 성실신고 확인업무는 제외하고 대신 실무교육을 단축해 1개월로 합의를 보고 2019년 11월 말 법사위로 넘겼다.

당시 기재위 조세소위에서 변호사 출신의 권성동 의원(20대국회 전반기 법사위원장, 사시27)은 “나 역시 변호사 자격을 갖고 있지만, 변호사가 장부작성과 성실신고확인을 하겠다는 주장은 너무 심한 것 아닌가”라며 “다만 세무조정 문제는 법률적인 문제인데, 법률해석 문제까지 또 교육을 받으라고 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본다. 왜냐하면 실무교육이 없어도 8개 중 5개는 이미 변호사자격으로도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장부작성과 성실신고확인은 세무사들 주고, 나머지는 변호사에게 허용하도록 하되, 실무교육은 폐지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권 의원의 의견이 받아들여져 장부작성과 성실신고확인이 제외된 대안이 통과한 것.

이렇게 법사위로 넘어간 세무사법 대안은 결국 법무부와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바로 ‘위헌성 논란’이다. 법무부는 변호사에게 세무대리 전부허용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위헌성인지 살펴보자. 대한변협 입장을 보면 알 수 있다. “변호사의 세무업무를 제한하면 안 된다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결정인 바, 이를 법률로써 제한하는 개정안 통과는 또 다른 분쟁을 예고하는 위헌적인 처사에 해당함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세무사들의 입장은 완전히 달랐다. 헌법재판소의 결정문에는 변호사에게 세무대리를 허용하라 했으나 ‘어느 정도의 업무 수행 권한을 인정할 것인지 여부는 입법자가 결정할 사안’이라고 한 만큼, 장부작성이나 성실신고확인업무를 제외하는 것은 입법권자의 몫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법무부 의견은 무엇이었을까. 법무부는 세무대리 핵심업무인 장부작성을 제외하는 것은 헌재 결정취지에 반하고,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한하며, 성실신고확인도 세법해석 적용이 필요해 전문가인 변호사가 해야 한다고 봤다.

법원행정처도 같은 의견이었으며, 장부작성보다 고도의 세무지식이 필요한 세무조정과 불복을 허용하면서 그 기초업무인 장부작성과 성실신고 확인업무 제외는 모순된다고 주장했고, 대한변협은 공인회계사와 세무대리를 전부 허용하면서 변호사만 일부 업무를 제한하는 것은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며 개정안에 반대했다.

이같은 이유로 법사위는 세무사법 개정안 통과에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여상규 위원장은 국무조정실과 기재부, 법무부에게 4월 17일까지 구체적인 개정안을 제출하라고 요청했으나 결국 합의가 이루어지지 못하면서 20대 국회가 끝남에 따라 법안은 폐기되고, 법개정은 21대 국회로 넘어가게 됐다.

이렇게 업역 갈등이 심화되면서 여상규 위원장은 불편한 기색도 내비쳤다. 입법공백사태로 세무사 등록을 하지 못하는 700명의 세무사시험 합격자들이 여상규 위원장을 상대로 700억원대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는 사건도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후 여 위원장은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본인의 향후 거취를 운운하며 세무사회장이라는 사람이 소속 회원 전원에게 공문을 보내 마치 위원장이 세무사법을 막고 있는 것처럼 호도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며 심각한 명예훼손”이라고 말하고 “저는 21대 국회의원 불출마를 선언한 사람이다. 불출마 선언을 한 중요한 이유가 이미 70세의 나이를 넘었다는 것이며, 지금 나가서 변호사를 하며 세무대리업무를 하겠느냐, 변호사하는 기간 동안 세무대리 업무는 생각조차 해본 일이 없다”고 공식적인 입장을 밝혔다.

이같은 여 위원장의 발언에 세무사업계는 사실상 세무사법 개정안 통과가 물 건너가는 순간이라고 평했다. 그러나 총선 불출마 후 여상규 위원장이 법무법인 한맥으로 돌아간다는 소식이 나오자 세무사들은 분노했다. 결국 여 위원장이 변호사 업으로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 세무사는 “변호사의 세무대리는 입법자가 결정하라 했는데, 위헌성을 운운하며 법안을 통과시켜주지 않고 법무부와 조율해오라는 말은 결국 법무부 의견대로 법안을 만들어오란 말과 대체 뭐가 다르냐”고 일갈했다.

결국 세무사법 개정안 대안은 지난 20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조차 되지 못하고 결국 임기만료로 폐기되면서 공은 21대 국회로 넘어갔다. 21대 국회에서도 가장 큰 쟁점은 법무부와 의견조율로 예상된다. 그만큼 높은 벽은 여전히 상존하고 있다. 그러면서 일부에서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힘없는’ 세무사들이 더 불리해질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세무사들이 ‘위기’를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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