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말부터 7월사이 국세청은 일부 고위직들과 세무서장들의 명퇴에 따른 후속 인사를 마무리 지었다. 인사 후 세정일보가 여러차례 보도한 것처럼 국세청 인사를 총평하면 젊은 행정고시 출신 인물들이 중용되고, 국세공무원 구성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비고시 즉 9급, 8급, 7급 출신들의 출세가도가 막히고 있다는 지적들이 곰비임비 전해지고 있다.

국세청 수뇌부를 이루는 청장과 차장, 각 지방청장 자리에 대부분 행정고시 출신들이 앉았고, 특히 국세청의 핵심 기능이라고 하는 본청 조사국에 국장은 물론 과장들 역시 대부분 행정고시 출신들이 임명됐다. 나아가 국세청장의 하명 조사국이라고 불리우는 서울국세청 조사4국 역시 국장은 물론 과장까지 대부분 행정고시 출신들이 배치됐다. 김대지 국세청장의 ‘행시몰빵’ 인사관이 뚜렷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런 김 청장의 인사는 과거 특정시기와 비교되면서 더욱 선명하게 기록되고 있다. 국세청이 고(故) 노무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몬 단초를 제공했다고 비판 받아온 한 중견기업에 대한 조사를 하던 2008년 당시 서울청 조사4국의 행동대장격인 과장들은 전부 ‘비고시 출신’이었다. 당시 본청 조사국 역시 대부분이 비고시 출신들이었다. 국세청 조사국은 노회한 비고시들 천하였던 것이다. 그런 조사국 인적구조가 현 정부들어 행정고시 출신들로 완전히 재편된 것이다.

여기에 더해 국세청 수뇌부에 포함되기 위한 전 단계인 부이사관으로 승진하기 위해서는 본청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최근들어 비고시들의 본청행 숫자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비고시 출신들은 ‘김대지 청장이 고시출신들을 너무 편애(偏愛)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내놓기도 한다. 결과만 놓고 보면 분명 그렇다.

그래서 세정일보는 이번 인사에서 예상치 못했던 김재철 중부청장, 이판식 광주청장의 임명을 ‘장흥판’(두 청장의 고향이 현 정부의 핵심지역으로 불리는 전남 장흥 출신이라는 점)으로 명명했고, 또 차장과 지방청장 8명의 출신지역이 TK 2명, PK 2명, 호남 2명, 충청 2명으로 배치되면서 ‘정치판’(내년 3월 대선결과에 따라 국세청 내부 인물을 후임 청장으로 앉히겠다는 포석)으로 명명했던 것처럼 김 청장의 행시편애성 인사를 ‘행시판’으로 명명해 보았다.

인사권자로서는 주어진 업무를 가장 원활하게 처리하고, 믿을 수 있는 인물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이번 인사는 행시편애 인사가 아니라 행시출신들이 비고시 출신들에 비해 업무능력과 평가가 높게 나타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인사는 능력에 따라 이뤄져야지 나눠먹기가 되어서는 안되며, 또한 승진은 누구의 뒷배나 기수에 따라 배분하는 것이 아닌 성과와 실력으로 겨루고 평가받아야 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특정인이나 특정세력을 우대하거나 편애해서도 안된다는 점이 반영된 것으로 볼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국세청장들은 지역 균형은 물론 고시와 비고시 출신간의 안배인사에 왜 그토록 심혈을 기울였을까. 그것도 ‘희망사다리’라는 말까지 동원하면서 말이다.

일반적으로 행정고시 출신들에 대한 평가는 젊고, 업무이해도가 빠르고, 추진력이 뛰어나다고 한다. 거기에 승진가도를 달려야하니 한 치의 빈틈을 허용하지 않는다. 자기 관리가 얄미우리만치 정갈하다고 한다. 물론 비고시 출신들이 자기관리가 허술하거나 업무추진력이 무디다는 것은 아니다. 일례로 현재 국세청 본청에 입성해있는 세무대 5기‧6기‧7기 인사들의 경우 자기 동기들 중에서도 내로라하는 인물들이다. 이런 점에서 이들 역시 능력에 따른 발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과거 청장시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업무능력을 인정받아 일찌감치 서기관으로 승진했음에도 현 정부들어 변방으로 변방으로 돌고있는 세대출신 서기관의 경우라면 ‘비고시 출신들도 능력만 된다면 기수를 뛰어넘어 본청으로 왜 불러들이지 않는 것인지’라는 의문이 드는 것은 기자뿐일까. 행시 출신들의 본청 전입은 기수차별을 두지 않고, 비고시 출신들만 기수 차별을 두느냐는 것이다.

많은 비고시 출신 직원들이 끊긴 희망사다리로 승진은 기대할 수 없고, 겨우 6급에서 끝나는 인생이라고 생각되면 어떤 국세공무원의 삶을 살아갈까. 열심히 일해봐야 한단계도 못 올라가고, 올라간다 해도 겨우 세무서 과‧서장쯤이라고 생각된다면 자기관리에 소홀해 질 수 있고 업무추진 역시 지금 정부가 바라는 ‘적극 행정’은 꿈꿀 수 없을 것이라는 노파심은 왜 생길까.

조직에서 승진을 꿈꾸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까. 아마도 ‘소확행’을 꿈꾸며 퇴근시간만 기다리는 열정없는 공무원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든다. 아니면 조그만 문제를 파고 비틀고 괴롭히고 자료를 요구하고 또 요구하면서 납세자를 괴롭히는 일에 매진한다면 누가 괴로울까. 고스란히 납세자의 피로감으로 나타날 것이다.

이런 조직문화의 ‘퇴보’를 우려해 그간의 청장들은 일만 열심히 한다면 고시출신이 아니더라도 하위직에서 출발하더라도 3급, 2급, 1급으로 승진할 수 있는 ‘희망사다리’를 놓았고, 또 전파했던 것은 아닐까. 물론 1급으로 사는 인생과 6‧5‧4급으로 사는 인생의 깊이와 행복이 다르다고는 강변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히 해둔다.

공직자는 공복(公僕)이라는 원초적 물음을 더한다면 그 직에서 국리민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면 됐지 승진을 최종 목표로 하여 열심히 일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요즘 또래들의 표현을 빌려 ‘그래 너는 밥만 먹고사니’라고 한다면 어쩔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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