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은 5월이면 바쁘다. 국가적 관심사라고 할 수 있는 종합소득세확정신고 기간이다. 그러나 국세청 내부의 가장 뜨거운 이슈는 인사문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세청의 인사 관습인 지방청장으로 부임한지 1년이면 후배들을 위해 관복을 벗어야 한다. 1급, 2급 지방청장에서부터 4급(세무서장)이상 간부들이 대부분 포함된다. 정년보다 먼저 퇴임한다는 이유로 ‘명예퇴직’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정년을 채우고 싶지만 ‘그간 선배들이 그래왔기에 나 또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애써 자위하면서 대부분 명예롭게 사표(명예퇴직서)를 낸다. 그 명퇴서 제출 기한이 얼추 5월말까지다. 그래서 실제 퇴직하는 6월보다 5월이 더 좌불안석인 계절이다.

오는 6월 부임한지 1년이 되는 지방청장급 인물은 김태호 차장, 강민수 서울국세청장, 김진현 중부국세청장, 이경열 대전국세청장, 윤영석 광주국세청장, 정철우 대구국세청장 등이다. 그런데 지금 세정가는 이들 모두가 다 명퇴서를 내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 전망이다. 특히 내지 않는 게 아니라 ‘내어서는 안된다’는 말까지 나오면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유는 이렇다. 김태호 차장, 강민수 서울국세청장, 정철우 대구국세청장의 경우 전 정부에서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밀리고 밀린 케이스라면서 한번 더 국가를 위해 봉사할 기회를 열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국세청 고위직 구도상 이들과 나머지 셋 지방청장이 모두 앞선 선배들의 경우처럼 부임 1년이 되었다고 해서 명퇴서를 낸다면 국세청 고위직 분포는 전 정부에서 그랬던 것처럼 또다시 너무 젊어지면서 국세청과 관계있는 부처들과의 엇박자가 날 공산이 커다는 우려다.

이들 세 고위직의 경우 능력에 비해 전 정부에서 많은 국세공무원들이 싫어하는 세종시(본청)에서 숱하게 고생만하다 정권이 바뀌면서 겨우 제자리를 찾았는데 국세청의 인사관행에 따라 부득불 명퇴서를 내고 자리를 비울 경우 전 정부에서 잘나가던 사람들이 다시 중용될 수 밖에 없는 구조때문이라는 것.

세정가에서 기자밥을 30년이상 먹으면서 국세청 고위직들의 여러 인사 부침을 나름대로 지켜봐왔지만 지금처럼 국세청 고위직 인사가 꼬인 경우는 드물다. 정치권에서 지금 정권이 연일 전 정부탓만 하느냐고 비아냥대지만 전 정부의 이상했던 국세청 인사를 끄집어 낸다면 괴팍하단 소리를 들을까 해서 접는다. 한가지만 언급하면 오죽했으면 퇴직한 인물을 다시 불러 국세청장 자리에 앉혔겠는가를 반추하면 쉽게 이해되는 대목이다.

공무원들의 경우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의 국정철학에 따라 곧이곧대로 행동한 죄밖에 없겠지만 전 정부의 부동산, 원전, 대북문제, 세금문제 등 대부분의 잘못된 정책들이 수정되거나 바뀌는 마당에 행동대원들인 정책 집행부서의 고위관리자들이 여전히 요직을 차지하고 승승장구한다면 지금 대통령의 국정철학이 제대로 먹혀들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 겨우 제자리를 잡은 인사들이 한꺼번에 명퇴를 하고 그 자리에 과거 정부의 국정철학을 깊이 공유했던 사람들로 또다시 채워진다면 조직은 엇박자를 낼 수밖에 없다. 윤석열 정부 출범 2년차 임에도 전국 공공기관 임원 3064명중 1944명인 63%가 문재인 정부때 임명된 인사여서 대통령의 국정철학이 제대로 먹혀 들지 않고 있다는 지적과 같은 맥락이다.

그래서인지 세정가는 특히 이들 셋 고위직에 대한 평가가 남다르다. 한사람은 과묵하면서도 강단이 있고, 또 한사람은 추진력이 뛰어나면서도 직원들로부터 닮고 싶은 상사이고, 또 다른이는 직원들에게 인기가 없지만 일 만큼은 똑 부러지게 한다는 평을 듣고 있다. 물론 이런 평가외에도 이들은 아직 젊다는 점도 있다. 어떤 고위직의 경우 보통 명퇴를 정년 2년 먼저 낸다고 볼 때 아직 3년이상은 족히 남았다는 점에서 세정가의 아쉬움이 크게 전파되고 있다.

해결책은 없을까. 결국 또 정년보다 2년 먼저 관복을 벗는 명퇴제를 폐지하라는 말이 나온다. 말 그대로 정년 2년이상(명퇴시한) 남았다면 고위직이라고 하더라도 세무서장들과 엇비슷하게 자신이 맘먹고 선택을 하지 않는 이상 강퇴없는 인사문화를 만들어보면 어떨까하는 것이다. 명예퇴직은 말 그대로 스스로 선택하여 나간다면 명예롭지만 이눈치 저눈치 보면서 눈물의 명퇴서를 낸다면 그것은 결코 명퇴가 아니라 ‘강퇴’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차제에 군사정권시대 문화라고 불리는 ‘명퇴제’를 빨리 손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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