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난달 29일 국무회의에서 올해보다 2.8% 증가한 656조9천억원 규모의 2024년도 예산안을 의결했다. 예산안은 9월 정기국회에 정부안으로 제출되고 국회 각 상임위원회 및 예산결산특위 심사를 거쳐 올해 12월 국회 통과로 확정되는 절차를 남겨두고 있다. 예산정책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는 확장재정을 펼쳤던 문재인 정부 시절 매년 7%이상 증가했던 것과 비교하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증가율이며 재정통계가 정비된 2005년 이후로는 가장 저조한 수준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세수 부족 현상이 이어지면서 총수입은 총지출보다 45조원 가량 부족한 612조1천억원 규모로 전망됐다. 총지출·총수입 격차가 벌어지면서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58조2천억원에서 92조원으로 33조8천억원 늘어났다. GDP 대비 적자 비율은 2.6%에서 3.9%로 1.3%p 높아지고, 국가채무는 61조8천억원 늘게 됐다.

정부의 설명대로라면 불요불급한 지출을 줄이기 위한 노력과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그러나 건전재정 차원에서만 보면 그래도 부족하다. 건전재정을 논하자면 ‘세입 내 새출’이 기본이지만 ‘세입 내 세출은 구 시대적’이라는 것이 재정학의 정설이다. 다만 세입을 능가하는 세출이 과소비냐 아니면 투자냐에 따라 건전재정의 척도가 달라져야함이다. 즉 빚투(빚을 얻어서 투기하는)가 되어서는 곤란하다는 경계일 것이다.

지난 정부의 확장재정을 비난하려면 이번 정부는 씀씀이를 줄일 수밖에 없다. 세입 내 세출의 건전재정을 유지하려면 소위 예산부수법안인 세법들을 대폭 손질하여 국민들의 세 부담을 올려야한다. 그런데 작금의 경제상황이 녹록치 않다. 올해도 이미 세수결손이 예상되고 있고 내년에도 특별히 호전될 요인도 보이지 않는다. 특히 내년은 총선이라는 정치권의 이슈가 있는 특별한 해인 점도 예산당국의 고민을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기획재정부가 29일 발표한 '2024년 국세수입 예산안' 및 '2024년 조세지출예산서'는 이러한 고민의 일단을 이해하게 한다. 정부는 내년도 국세 수입을 올해(400조5천억원)보다 33조1천억원(8.3%) 감소한 367조4천억원으로 편성했다. 지난해 세입 실적(395조9천억원)보다도 28조6천억원(7.2%) 적은 수치다. 올해 세수 감소에 따라 내년 세수도 연쇄적으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세목별 전망치를 보면 법인세는 77조7천억원으로 예상했다. 부가가치세(-1조8천억원), 종합부동산세(-1조6천억원), 상속증여세(-2조5천억원) 등도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반면 증권거래세(4천억원), 교통·에너지·환경세(4조2천억원) 등은 증가할 것으로 봤다.

한마디로 세수증가 요인은 싹을 찾기 어렵다. 법인세율을 인하하고 수출지원감면을 늘리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다. 우리나라는 자원이 빈약하여 수출증대만이 국가의 부를 창출하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합부동산세를 인상하지 못한 것은 부자감세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부동산세 납부대상자가 전체세대수의 20%이하라면 상류층으로 봐야하다. 지난 정부에서 기준시가를 시가에 접근시키는 해묵은 과제를 해결해준 셈인데 저항에 부딪쳐서 후퇴한 것은 못내 아쉽다. 세법개정을 통해 세입을 늘리고 지방자치단체들의 과잉투자를 방지하기 위해 자치교부금을 대폭 삭감한다면 세입 내 세출은 어려워도 최소한 기준범위 안에서 건전재정을 구현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을 갖게 된다.

확장재정은 투자냐 과소비냐에 따라 평가되는 것이 순리다. 대표적인 정부 살림살이의 과소비는 SOC를 가장한 자치단체들의 과잉투자와 국회의원들의 지역 민원사업을 꼽을 수 있다.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하지 못 한다”는 속담처럼 분수에 넘치는 과잉복지도 경계대상이다. 총선용 선심행정이라는 야당의 비난이 당연히 따라올 것이다. 대표적인 국가투자라면 출산장려지원, 교육 지원, 연구개발 지원 등의 예산일 것이다. 그런데 2024년 예산안에서 이들에 대한 투자는 다소 미흡해 보인다.

이러한 것들이 거대 야당에게 빌미를 줄 수도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별도 예산안 제출을 공언하는 등 벌써부터 진통이 시작되고 있는 형국이다. 정부의 과소비를 줄이자는 정당한 요구에도 ‘전 정권 추진사업 예산삭감’이라는 올가미를 씌울 준비를 한다고 봐야한다. 속으로 전 정부의 확장재정의 달콤함을 잊지 못하면서 겉으로는 대의민주주의에 의한 정당함으로 위장한다. 지자체장들과 국회의원 지역민원사업이 대부분 이지만 수적 우세를 내세워 예산의 발목을 잡을 것이 명약관화하다.

"빚을 내 재정을 투입하면서 경제 활력을 도모하는 정책은 하책 중 하책"이라는 추경호 부총리는 "건전재정 유지와 돈을 써야 할 데는 써야겠다는 접점 사이를 찾는 데 고민을 많이 했다"며 "역대 최저 수준인 2.8% 증가에 그치는, 허리띠를 바짝 졸라맨 재정 운영 계획을 잡았다"고 설명했다. 또 경기 회복을 위해 재정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세수 상황이 좋지 않다"며 "가족 수입이 적으면 빚을 더 내기보다는 씀씀이를 줄여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추 부총리의 재정운용기조에 대한 자세는 칭찬받을만하다.

나라의 살림살이를 걱정하는 정부의 2024예산안을 보면서 일머리는 제대로 돌아가는 것 같아 안도하게 된다. 세입이 부족하여 빚을 내야하는 죄송함으로 국민께 양해를 구하는 자세도 봐줄만 하다. 지방자치단체들의 과잉투자 및 중복투자로 흉물이 된 시설들을 보면 욕이 절로 나온다는 국민이 대다수다. 자치단체장 선거와 국회의원선거용 화려한 공약들의 결과다, 더욱 큰 문제는 어떤 정치인도 이러한 SOC를 가장한 과소비들 정확히 말하면 “자치단체장 누가 한건 해 먹었군”하는 비아냥이 절로 나오는 사업에도 예산삭감은 절대 불가를 외친다. ‘야당의원 죽이기 총선용 예산’이라고 우길 것이다. 그것이 지난 정부의 확장예산에 맛들인 야당의원들과 자치단체장들이다. 반면 투자가 아닌 과소비에 해당하는 지방자치단체의 사업과 SOC를 빙자한 과소비에는 빚내서까지 지원할 수 없다는 것이 현 정부 시각이다. 국회 예산심의가 역대 최고의 난산을 경험하게 될 것이란 우려가 현실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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