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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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 I am become death, a destroyer of the worlds.” 음해성 악성 투서와 매카시(McCarthy) 열풍에 쓰러진 비운의 영웅, 원자 폭탄의 아버지, 오펜하이머. 

'클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이 영화는 놀랍게도 박스오피스 순위 1위를 달리며 선풍적 인기와 함께 절찬리에 상영중에 있다.

석호영 세무사
석호영 세무사

이 영화 감상에 대한 느낌의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화면의 미장센(mise en scene), 배우들의 메소드 연기, 스토리와 구성, 배경마다 다른 Ost, 특히 실제 상황을 방불케하는 핵실험 장면 등, 정말 세 시간의 긴 런닝타임(Running time) 임에도 지루하지 않은 영화였다. 특히 오펜하이머 역, 킬리언 머피의 연기는 영화에 대한 집중력과 몰입을 더하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주인공 오펜하이머!

언제나 골똘히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눈에는 늘 우수에 찬 모습이 더욱 매력적인 사나이, 부유한 가정, 내성적으로 어릴 때는 주변 학생들과 잘 어울리지를 못하여 사회성이 떨어졌던 어린이, 또 몸이 허약하여 휴식이 필요할 때는 뉴멕시코주의 사막에 자주 놀러갔던 아이였다.

그는 그곳에 가서 지내다 보면 아픈 것도 치유되고 정신적으로도 힐링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그리고 그곳은 그가 세계 역사와 힘의 균형을 바꾼 핵 개발의 캠프, 로스 앨러모스를 스스로 그 산실로 정하여 운명적인 핵개발 프로젝트에 매진한다.

당초에는 하버드 대학교 화학과, 물리학으로 전과하여 하버드대를 삼학년 때 조기 졸업한 천재, 그후 영국으로 유학, 실험 물리학의 요람인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수학, 실험 물리학은 소질이 없었다. 심지어 늘 실험실에 쳐박혀 실험만하게 하는 담당 교수가 먹을 사과에 독을 묻히는 불상사를 야기하는 등, 괴짜 내지는 기이한 행동을 하는 학생이었다고 한다.

결국 그는 이론 물리학의 명문 대학교 독일의 괴팅겐 대학으로 유학, 물리학에 두각을 나타내게 된다. 그는 유학을 마치고 미국에 귀국하여 버클리 대학 등에서 물리학 교수로 강의했다. 천재 과학자는 물론 그런 능력으로 교수로서의 명성과 명예도 듬뿍 얻게 된다.

20C 초 국제 정세!

유럽 각국은 식민지를 확대하며 제국주의 전쟁의 상황으로 치닫는다. 급기야 연합국인 영국과프랑스, 러시아와 독일,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의 삼국동맹 체제가 맡붙는 1차세계 대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독일의 무제한 잠수함 작전에 의해 미국 시민의 피해가 발생, 미국이 전쟁에 가담함으로써 독일은 패망하게 된다.

독일은 세계 제1차 대전의 전쟁에서 패망하였으나 군수산업과 중공업등을 육성시키면서 경제적으로 급성장한다. 프랑스나 영국은 전쟁에서 승리했으나 세계 대공황과 함께 나라 전체가 휘청거렸다. 그리고 1차 세계대전 후 설마 독일이 전쟁을 또 일으키겠느냐는 안이한 정세 판단에 휘말려 있었다.

그러나 독일은 1차 세계대전에서의 패배로 배상금에 대한 압박을 심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중, 히틀러가 등장하게 되었다. 그는 특유의 연설 솜씨로 독일 국민을 사로 잡는다. 또한 독소 불가침 조약을 체결하는가 하면, 일단 전쟁이 발발하면 전선이 고착되기 전에 급속한 시일내에 승전할 전략 수립에 고심중이었다.

핵 분열의 발견과 핵 폭탄의 잉태!

히틀러의 등장과 함께 유럽 전역에 전쟁의 기운이 감돌던 그 시기에 천재 과학도들은 역사를 뒤바꿔 놓을 징후를 감지하고 있었다. 그 당시의 유명한 과학자, 오토한 등에 의해 중성자가 우라늄 235를 때리면 핵분열이 이뤄짐을 발견한다.

그리고 우리가 너무나 익히 잘 알고 있는 앨버트 아인슈타인에 의해 '물질과 에너지는 서로 바뀔수 있고 물질은 에너지로 전환 될수 있다'는 '상대성 원리'로 사실이 입증된다. 즉 최초로 '핵분열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이리하여 미국에서는 극비리에 닐스 모어와 어니스트 로렌스 등의 과학자에 의해 핵분열 실험을 하게 된다. 1939년 1월, 그 현상을 확인하게 되며 미시적 원자는 가시적 힘을 발휘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됨을 알게된다. 이러한 사실이 미국에 알려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과학자들은 이것이 폭탄으로 쓰이게 될수 있음을 곧바로 인지하게 된다. 이런 상황하에서 1939년 9월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함으로써 세계 역사는 제2차 세계대전의 전선속으로 말려들게 된다.

세계를 집어 삼킬수도 있는 무시 무시한 화력을 지닌 원자폭탄이 과학자들에 의해 잉태되고 있을 즈음, 전쟁으로 세계를 뒤 흔들고 세계를 집어 삼키겠다는 야심을 품은 나찌의 히틀러가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원자폭탄을 미국이 먼져 제조하느냐 독일이 먼제 제조하느냐에 따라 세계의 세력 판도가 바뀌게 되는 급박한 순간이었다. 어찌보면 히틀러는 원자폭탄 제조를 앞당긴 인물일 수도 있다.

독일에서는 미국 보다 일년여 앞서, 이론 물리학의 천재 하이젠베르크를 중심으로 이미 원자폭탄 개발에 착수한 상태였다. 아인슈타인과 살라드르 등 뜻있는 미국의 과학자들도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독일 나찌 체제 등의 보고와 함께 미국에서 선제적으로 원자폭탄을 개발해야 전쟁에서 승리할수 있고 세계 평화도 달성할 수 있음을 건의 한다.

독일을 정조준하여 탄생한 맨하튼 프로젝트!

그리하여 1942년 12월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은 "나찌가 핵무기를 갖게 되면 세계의 세력 판도는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며 세계 평화를 위해서 또 전쟁 종식을 위해 결단을 내린다.미국의 모든 산업 역량과 첨단 기술이 동원되어 운영될 "맨하튼 프로젝트,Manhattan Project"가 승인되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맨하튼 프로젝트의 총 책임자는 레슬리 그로브스 장군, 기술 총책임자는 이 영화의 주인공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책임을 맡아 이끌어 간다. 미국 각 지역에 산재한 연구소에서 추진되나 메인 기지는 뉴멕시코주의 "로스 앨러모스"에 두고 그야말로 극비리에 핵 개발을 추진한다.

맨하튼 프로젝트에 투입된 연구 인력은 처음, 2~3천명에서 종국에는 13만명에 이르렀다. 연구기간 3년 동안 투입된 예산은 20억 달러,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42조원 상당이 될 것이라고 한다. 당대 천재 물리학자는 총동원된 셈이다.

맨하튼 프로젝트가 수행되면서 원자폭탄 개발에 따른 기술적인 사항들이 상당부분 언급 되나 물리학에 문외한인 나로서 그 진행 상황을 이 지면에 나열한다는 것은 지난한 문제이다. 그러나 영화를 통하여 우라늄과 플루토늄에 의한 핵무기 개발에 관한 지식을 조금이나마 이해했다는 것은 큰 소득이 아닐수 없다.

세계적인 천재 과학자들에 의해서도 3년 동안이나 소요되어 제조한 핵무기를 내가 여기에 기술한다는 것 자체가 어리석고 무모한 짓이 될 것이다. 그러나 단계 단계 마다 영화의 씬에서 표현하는 것을 보며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장면이 많았다. 어느 순간에는 큰 자본을 들여 실시한 실험이 실패하여 맨하튼 프로젝트 자체가 위기에 처하는 때도 있었다.

특히 플루토늄에 의한 원자폭탄 개발시, 내폭 가능성을 측정하기 위해 천재 수학자 폴 노이만을 중심으로 미국 전역의 대학교 수학 천재들을 모아 계산치를 뽑아 냈다고 한다. 지금이야 컴퓨터가 발전해 있고 AI등이 있지만 가히 "인간 계산기"에 의해 필요한 수치를 획득해 내는 과정도 인상적이었다. 요즘의 젊은 학생들이 브록체인 등에 관심을 기울이 듯 당시 천재들은 원자물리학에 대한 관심이 트렌드였다고 한다.

원자폭탄의 표적, 독일에서 일본으로 전환!

원자 폭탄이 완성 단계에 이르렀을 때 국제 정세는 또다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된다. 미국의 대통령 루스벨트가 사망(1945.4.15)하게 되고 보름 후 독일에서는 히틀러가 지하에서 권총으로 자살(1945.4.30.)하게 된다. 그리고 몇일 후 독일은 항복하게 된다.

미국의 핵폭탄 목표물이었던 독일이 눈앞에서 사라지게 된 것이다. 사실 루스벨트 대통령은 핵사용에 소극적인 인물이었으나 뒤를 이어 대통령이된 트루먼은 핵사용에 다소 적극적이었다고 한다. 결국 "원자폭탄은 전쟁을 종식 시키고 세계 평화를 가져올 것이다"라고 판단한 미국은 목표물을 태평양 전쟁의 주축국인 일본으로 수정하게 된다.

미국은 1941년 12월 7일 일본으로부터 진주만을 기습받은 구원(久怨)이 있었다. 미국 본토의 앞 바다가 불타는 수모를 격은 미국의 일본에 대한 적개심은 독일 못지 않았다. 그리고 일본은 가미카제 특공대와 옥쇄전략(玉碎戰略)을 끈질기게 수행하는 것으로 봐서 전쟁에서 항복할 의사가 전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인류 역사상 최초 핵의 탄생, 트리니티 원자폭탄 실험 (The trinity atomic test)!

1945.7.16. 새벽 5:29, 드디어 핵무기가 이 지구상에 탄생되는 순간이었다. 코드명은 가젯(Gajet), 로스 앨러모스 동남쪽 200마일 지점의 평평하고 건조한 사막에서 미국의 모든 산업 역량과 과학자를 총동원하여 3년간 개발한 원자폭탄을 실험하는 순간이었다. 지난 3년간, 천재 과학자들의 장정이 한순간에 결판나는 운명적 시점이었다.

발사 20분전!

뉴멕시코주의 로스 앨러모스 연구소 일대는 극도의 초조와 팽팽한 긴장 분위기에 휩싸인다. 핵무기 실험 지역으로부터 9km와 16km지점에 통제소를 설치하여 발사를 기다리고 있는 그로브스와 오펜하이머, "핵무기 실험 버튼을 누르는 순간 세계 역사는 다시 쓰여질 것이다." "핵무기가 폭발하여 대기를 모두 불태우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런 확률은 제로 입니다." 등의 대화를 나누며 핵실험에서 밀려오는 압박감과 초조함을 달래고 있는 듯하였다.

발사 20초전!

최종 카운트 다운을 알리는 신호탄이 발사되고 이때부터는 긴장감과 초조함을 극도로 끌어 올리는 음악과 함께 카운트 다운이 시작 된다. 크레인에 의해 탑위에 운반되어 대롱 대롱 매달려 있는 폭탄, 오펜하이머는 이미 폭탄을 점검한 상태이며 최종적으로 발사 버튼을 작동하는 작동수에게도 이상 유무를 체크한다. 불안감으로 작동수의 손가락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발사전 최종확인하는 오펜하이머.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발사전 최종확인하는 오펜하이머.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드디어 발사!  최고의 명 장면!

번쩍, 한순간에 칠흙같던 새벽이 대낮으로 변한다. 섬광이 너무 쎈 나머지 온 세상을 하얗게 덮어 버렸다. 그로부터 몇초가 지난 후 지축을 흔드는 폭음과 함께 핵무기의 불꽃과 형형색색의 핵구름이 버섯 모양에 담겨져 상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굉음은 온 사막을 뒤덮었으며, 그 섬광은 장님의 소녀도 보았다고 한다. 어마 무시한 섬광과 폭탄의 포효였다.

불의 신 프로메테우스가 지구에 그 불을 훔쳐 왔다면 오펜하이머에 의해 원자폭탄이라는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하고도 새로운 불이 창조되는 순간이었다. 그 폭발성과 모양만으로도 정말 장관이었다. 태양 천개의 섬광이라니 어찌 말로써 그 장면을 형용 할수 있겠는가!!

세계 역사상 핵실험의 최초 성공, 로스 앨러모스 연구소의 모든 연구원들은 큰 성취감에 기쁨의 눈물과 함께 서로 얼싸안고 뛰며 환호했다. 그리고 맨하튼 프로젝트의 최고 책임자인 레슬리 그로브스는 "기술 책임자로 오펜하이머를 임명한 것을 자기가 일생중 가장 잘한 일"이라고 셀프 프렉스를 한다.

그러나 정작 오펜하이머는 "일부의 사람들은 웃고, 일부의 사람들은 울 것이며, 다수의 사람들은 침묵 할 것이다"라며 침통한 표정으로 의미 심장한 말을 남긴다. 천재는 한마디 말을 하드라도 좀 달라 보였다. 오펜하이머가 등장하는 장면 중 가장 외롭고 쓸쓸한 표정이었다.

또 그 순간 그는 심각하면서도 눈가에 눈물을 글썽이며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나는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됐다. I am become death and the destroyer of the world." 과학자로서 총책임자가 되어 원자폭탄 개발을 해냈지만 그의 말 속에는 인간으로서의 엄청난 고민과 양심이 녹여져 있는 말 같았다.

그러나 트리니티에서의 핵실험 성공으로 한순간에 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의 아버지'로서 영웅이 된다. 그는 가는 곳마다 엄청난 환대를 받는다. 이제 원자 폭탄의 실험이 성공했다는 소식이 미국 조야에 흩어진다.

그리고 그 결과는 독일 포츠담에서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는 회의를 주도하던 트루먼 대통령에게 암호화 되어 타전 된다. "오늘 아침 작동하였습니다, 결과는 만족스러워 보이며 이미 기대를 넘어섰습니다." 최초의 원자폭탄의 탄생이 외교무대에서 미국에 힘을 실어주는 순간이었다.

히로시마 나가사끼의 운명! 그리고 일본의 항복!

1945년 8월 6일. 'Little boy'로 명명된 원자폭탄이 히로시마에 투하된다. 1945년 8월 9일에는 'Fat man'으로 명명된 원자폭탄이 나가사끼에 투하된다. 이로써 일본은 22만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그리고 낙진으로 피폭되어 방사능이 채소와 가축, 상수도 오염 등은 물론, 심장병, 백혈병 암 등의 건강 문제가 속속 보고된다.

그러나 미국의 정계와 과학자들의 예언처럼 일본이 핵폭탄 세례를 받고 무조건 항복함으로써 세계 제2차 대전은 연합국의 승리로 종식되었다. 그리고 "인류는 경험해보지 못한 평화를 누리게 될 것이다"라며 환호하였다. "역사는 곧 승자가 정의다"라고 말한 프로타고라스의 말이 예언처럼 증명되는 순간 같았다.

그러나 오펜하이머는?

트리니티 핵 실험 성공에 이어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에서의 성공적인 원자폭탄 투하로 오펜하이머는 그야말로 미국 및 전세계적인 일약 전쟁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큰 성취감 대신 죄책감에 시달리는 것 같았다. 핵 폭탄 투하에 따른 엄청난 사망자의 발생과 피폭사진, 각종 피해 보고서가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즈음하여 해리스 트루만 대통령은 그를 축하하고 격려해 주기 위해 백악관에 초대한다. 대통령과 배석자가 그를 전쟁 영웅으로 추켜 세우며 "덕분에 후세의 아이들도 평화를 누리게 되었다"는 말 등으로 칭찬한다. 그 순간 오펜하이머는 심각한 표정으로 "제 손에 희생자들의 피가 묻어 있는 느낍입니다. 더이상의 폭탄 개발은 멈춰야 합니다"라며 원자 폭탄에 대한 다소 회의적 반응을 표한다.

그 때!

트루먼 대통령은 "왜 자네 손에 피가 묻어, 버튼을 누르라고 지시한 사람은 난데, 피는 내 손에 묻었으니 걱정하지 말게"라며 퉁명스럽게 말하며 쪼아본다. 사실 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에 의한 인명 살상 등이 치명적이고 광대하기 때문에 진정으로 고민하는 것 같았다.

정치인과 과학자의 정세와 세상을 보는 눈이 다르며 어법이 다름을 직감하는 순간이었다. 만약 오펜하이머가 정치인이었다면 "각하께서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셔서 이러한 결과를 가져올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어느 나라도 전쟁을 일으킬 꿈을 못꿀 것입니다. 이렇게 세계가 한순간에 평화를 가져오게 된 것은 오로지 각하의 뛰어난 영도력 덕분입니다"라고. 그러나 그는 그렇게는 말하지 않았다.

미국은 2차 세계 대전에서 완승을 거둠으로서 세계의 초강대국으로 부상하였다. 그러나 히로시마 원폭이 가해지고 이틀(1945.8.8.)후에 일본에 대해 선전포고를 한 소련은 갑자기 북한으로 진주해 오기 시작했다. 이로써 세계대전 종식의 기쁨과 평화를 누리기도 전에 세계는 미국을 중심으로한 자유진영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 진영의 새 판도가 짜여지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1949년 8월 29일 소련이 핵실험에 성공한다. 미국의 예상보다 빠른 성공이었다. 이제 소련은 군사적으로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국가가 되었던 것이다. 소련의 핵 개발은 공산 진영에게는 큰 힘이 되는 소식이었지만 미국을 비롯한 서유럽 자유 진영 국가들에게는 큰 위협이 되었다.

아마도 소련이 핵개발을 함으로써 소련의 뒷배를 믿은 북한이 6.25 전쟁을 쉽게 일으켰을 것이라는 추론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수 없다. 핵폭을 통하여 일본이 항복함으로써 우리나라는 해방과 자유, 그리고 평화를 찾게 되었으나 소련 핵 개발에 의해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고 생각하게 되니 말이다.

투서와 음해 그리고 매카시 광풍에 영웅이 쓰러지다!

오펜하이머와 스트라우스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당시에 미국에서는 "공산당을 색출하여 추방하고 때려 잡아야 한다"라는 소위 '매카시 열풍'이 미국 전역에 급속히 번지고 있었다. 급기야 맨하튼 프로젝트에 참여한 과학자 중 독일 출신의 클라우스 폭스(Klaus Fucks)라는 인물이 실제 간첩임이 확인 되기도 하였다.

또한, 소련이 원자 폭탄을 빠르게 개발하여 미-소간 힘의 균형이 생긴듯 하였으나 사실은 재래식 무기에 있어서는 소련이 앞서 있었다. 핵무기를 먼저 개발하고도 다급해진 미국은 정치권과 군사 전략가들 사이에서 원자 폭탄보다 1000배나 위력이 높은 수소 폭탄 개발에 대한 분위기를 띄우고 있었다.

특히, 오펜하이머와 대척점에 있었던 스트라우스는 "소련이 빠르게 핵 개발을 해오니 힘의 균형이 2강 체제로 전환된 상황에서 군사 전략적 우위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소 폭탄을 개발해야 한다"라고 노골적인 주장을 한다. 이에 맨하튼 프로젝트에 참여한 에드워드 텔러가 강력하게 동조를 한다. 물론 정계에서도 수소폭탄 개발에 힘이 실리고 있었다.

원자 폭탄 개발과 그 위력의 무서움에 강한 트라우마를 지닌 오펜하이머는 수폭 개발의 부당성을 심각하게 주장한다. 결국 그는 간첩 혐의로 내몰려 청문회에 서게 된다. 오펜하이머를 맨하튼 프로젝트의 기술 책임자로 임명할 때 그로브스 총사령관은 그의 공산당 전력에 의심을 품는다. 그러나 그의 천재적인 재능과 리더십을 인정한다. 결국 천방지축의 수많은 과학자들을 잘 통제할수 있는 적임자로 그를 임명하게 된 바가 있었다.

이때 수소폭탄 개발 등 핵개발 정책과 개인적 구원으로 오펜하이머의 대척점에 있던 스트라우스와 텔러는 청문회에서 온갖 음해로 그를 무너뜨리려 한다. 실제적으로도 투서를 넣고 음모를 꾸민다. 특히 오펜하이머에게 소련 스파이 혐의를 씌우기 시작한다. 매카시 광풍속으로 영웅을 밀어 넣게 된 것이다.

오펜하이머에게는 첫 사랑 진 택트롤이라는 독일 여성이 있었다. 그 여성은 공산주의자이나 오펜하이머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를 사랑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핵개발 도중에도 그녀를 가끔 만난다. 키티라는 여성과 결혼 후에도 그녀와의 교제를 끊지 않는다. 청문회에서는 그런 그의 전력 등을 문제삼으며 집요하게 오펜하이머를 괴롭했다.

오펜하이머는 청문회에서 굳이 변명하거나 자신을 적극적으로 변호하지 않는 것 같았다. 부인 키티는 그런 남편에게 "왜 강하게 대응하지 않느냐"며 닦달한다. 부인은 자기 남편이 "지적호기심으로 공산주의를 공부한 것에 불과하다"라며 변호해준다. 그러나 끝내 오펜하이머는 주변 인물들과 매도되며 핵 개발 연구소의 보안 접근이 차단된다. 결국 스파이로 낙인 찍히는 순간이었다.

국회에서 의결시 "국가를 위해 그렇게 위대한 업적을 남긴 그에게 그런 대우는 부당하다"라며 오펜하이머를 지지한 상원 의원 중 한명이 존 에프 케네디라는 사실이 자막을 스쳐갔다. 결국 그는 대통령이 된후 물리학자로서는 최고의 상을 그에게 수여, 일부 복권을 시켜 주었다고 한다.

오펜하이머는 종종 아인슈타인과 중요한 문제를 협의하고 조언을 구하는 것 같았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아인슈타인은 오펜하이머에게 핵 개발 이전에 서로 나눴던 말을 띄운다.

"자네는 엄청난 일을 성공시킬 것이네, 많은 상을 받게도 될 것이고 많은 사람들의 환호도 받게 될 것이야, 많은 사람들이 자네의 등을 두들겨도 줄 것이네, 그러나 끝내 영광은 자네의 것은 아닐 것이네"라고 이른다.

아인슈타인도 핵 개발에 참여는 하였다. 그리고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핵개발 필요성 보고시 아인슈타인이 보고서에 대표로서 서명했다. 그러나 자유의 영혼을 소유한 그는 핵 개발에 협조는 해도 적극적 의사가 없는 인물이었으나 앞을 내다보는 통찰력을 엿볼수 있는 장면이었다.

원자폭탄의 아버지, 프로메테우스의 불을 발견함으로써 전쟁을 종식 시키게 한 영웅, 내향적이며 순수하고 자존심 센 천재 과학자는 변방으로 내 몰리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지난해(2022년) 미국 정부에 의해 불공평한 청문회였고 투서와 음해에 의한 것으로 판명되어 68년만에 복권되었다.

그리고 영화는 클로징 크레딧(closing credits)과 함께 막을 내린다. '투서와 음해 그리고 매카시 광풍에 의한 영웅의 추락!' 막이 끝날 때까지 변명 할줄 모르는 내향적이며 순수한 천재, 자존심의 끝판 왕, 오펜하이머에 다소나마 빙의(憑依)되어 '막 멍'을 때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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