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호영 세무사
석호영 세무사

새벽 다섯시 정각, 타임 벨(Time bell)이 초가을 새벽 지축을 흔들었다. 여섯시 즈음에 나를 아파트 근처에서 픽업(pick up)하기 위해 오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 좀 일찍 일어난 것이었다. 그 친구와 함께 파크 골프에 처음 입문하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아니 그가 나를 입문시켜 준다던 날이었다.

내가 요즘 오른 팔 뒷꿈치 엘보와 어깨 회전근 고장으로 일반 골프장에 못 나간지 3개월여가 지났다. 언젠가 그런 사정을 간접적으로 카톡에 이야기 한 바 있었는데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것 같았다. 파크 골프를 해봤냐고 연락이 왔다.

사실, 파크 골프라는 용어 자체를 처음 접하는 순간이었다. 몸에 무리가 안 가면서도 골프 욕구를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으니 가보자고 했다. 우선 호의가 감사했다. 흔쾌히 수용하고 함께 가기로 하였다. 가평 파크 골프장 이랬다.

6시 정각에 집 근처에서 만났다. 픽업까지 해주겠단다. 새벽잠도 설쳤는데 그 점도 감사했다. 곧바로 올림픽 도로에 올라섰다. 친구는 차를 타자마자 파크 골프장에 대하여 설명하기 시작했다. 깜깜 무식한 나에게, 마치 형이 동생 가르치듯이 자상하면서도 열심히 설명해 주었다.

처음 하게 될 파크 골프 일과를 무사히 마치기 위해서라도 세밀하면서도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친구의 말에 귀를 쫑긋하고 집중하여 들었다. 아마 시험이라도 봤다면 만점을 획득했을지도 모른다. 정말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최근 들어 가장 집중력을 발휘하여 경청했던 것 같다.

파크 골프 플레잉(playing)이 요즘 엄청난 선풍이란다. 연세 지긋하신 분이 대부분이지만 중장년 되신 분들도 상당한 수가 즐긴단다. 특히, 일반 골프와 파크 골프를 동시에 즐기는 분, 골프 하다가 파크 골프로 전환 하신 분, 골프를 하다가 나처럼 몸이 좀 불편하게 된 경우, 파크 골프를 잠정적으로 즐기는 사람들도 많단다.

골프채는 한 개만 있으면 되는데 본인 소유 여분, 한 개를 내가 사용하고 골프 공(ball)도 준비해 왔단다. 공부 잘했고 얼굴도 이목구비 또렸하게 잘 생기고 몸만 튼튼하고 날씬한 줄만 알았더니 마음씨도 비단결 같다. 사실 이 친구는 매우 똑똑하고 원칙주의의 바른 생활 친구다. 때에 따라서는 농담도 진담으로 아는 그런 친구다.

학창 시절, 초‧중‧고교를 통하여 학업 성적은 매시험마다 거의 수석이었고, 운동도 잘하였으며, 학생회 활동 등 리더십도 뛰어났던 친구다. 거기에 책임감의 화신이라 할 만큼 공적 책임감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멋진 사람이다. 교수직 등 교육기관 혹은 국가기관의 고위직에서 훌륭한 역할도 많이 수행한 친구이다.

달리는 자동차안에서는 파크 골프에 대해서 계속 설명이 진행되었다. 교수직에 있던 친구답게 설명도 강의하듯이 논리 정연했다. 현재 파크 골프 클럽에서 임원직도 맡고 있었다. 최근 172명 대회에서 22등의 성적을 마크했단다. 파크 골프를 꽤 선호하며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파크 골프는 18홀 플레이 할 경우, 파 3홀 60m 이내 8, 파 4홀 60~100m 이내 8, 파 5홀 100m 이상 2개 홀로 구성되어 있고 한번 입장료를 지불하고 플레이를 시작하면 하루 종일 플레이를 해도 된단다. 입장료는 만원이하이고 30% 경로우대까지 해준다고 하였다. 선뜻 가성비 최고, 아니 퍼펙(perfect)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았다. 지방자치단체별로 생활 체육의 일환으로 운영하여 그렇다고 했다.

파크 골프는 일본에서 1998년 처음으로 시작되었고, 홋가이도에만 600여 곳의 파크 골프장이 있단다. 현재는 미국 본토, 하와이, 호주 등에서 많이 실시되고 있고 우리나라에 전파된 것은 최근이라고 했다. 그래서 요즘 막 붐(boom)이 일고 있다고 했다.

경춘고속도로, 친구는 목적지까지 차선 변경을 전혀 하지 않았다. 갈림길에서 좌측 차선을 타면 목적지까지 가기 때문에 좌측 차선으로만 간단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면서 가다보니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자동차는 골프장 근처 도로에 주차하였다. 이미 일찍 도착한 자동차들이 나란히 나란히 주차하여 있었다. 차에서 내리니 날씨도 좋고 아침 공기는 선선했다.

아뿔싸~!

이게 웬일, 나의 실수, 나는 모자도 안 가지고 왔고 골프 장갑도 안 가지고 왔다. 선글라스도 안 가지고 왔다. 집에 세워둔 자동차에서 보스톤 백만 덜렁 들고 온 것이었다. 이곳에는 일반 골프장처럼 그런 용품 판매소도 없다고 했다. 순간 난감했다. 늘 차를 가지고 다니다가 모처럼 픽업으로 오니 이런 사태가 야기된 것이었다. 친구가 여분도 없다고 했다.

결국 맨손으로, 모자도 안 쓰고 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골프장에 도착했다. 우선 염려 되는 것은 강한 햇볕 속에서 맨 얼굴로 그 엄청난 자외선을 다 받을 생각에 다소 아쉬웠다. 근데 마침 미리 도착하여 기다리던 일행 친구가 모자가 하나 더 있단다. 구세주를 만난 기분이었다. 감사했다. 처음이고 자동차를 안 가지고 왔으니 용서가 된단다. 그렇다 하더라도 솔직히 많이 미안했다.

매표소에 도착하니 벌써 50여명이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었다. 7시부터 입장인데 친구와 나는 6시 50분쯤에 도착했다. 이제 장갑 외 파크 골프를 즐기는데 별문제가 없게 채비되었다. 잠시 줄을 서서 기다리니 곧 입장하였다. 일부는 와중에 새치기까지 시도했다. 가만히 보고 있을 친구가 아니다. 그분을 곧바로 원위치시켰다.

입장 절차도 친구가 몽땅 밟아 주었다. DC에 필요하니 신분증을 달라했다. 경로우대였다. 그야말로 일반 골프장처럼 클럽하우스도 없고 그러니 당연히 레스토랑도 없었다. 또 음료수라도 중간에 구매할 그늘 집도 당연히 없었다. 매표소와 화장실 시설, 그리고 휴대품이나 백을 보관할 천막 정도였다.

당연히 환복 장소도 없으니 출발 시에 복장을 차려입고 오던지 자동차 안에서 환복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집에서 다행히 골프복으로 출발했다. 아침 식사는 친구가 준비해온 떡과 약식, 커피 등 음료수 등으로 간단히 대체했다. 07시 20분, 이윽고 우리 팀이 티 오프(Tee off)할 차례가 되었다. 처음 접한 신천지였다. 그 문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앞 팀 선수들께서 하는 걸 보고 그대로 따라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앞 팀 네 분이 툭툭 치고 앞으로 전진해 나갔다. 드디어 첫 티 오프을 하였다. 파크 골프 입문의 역사적 순간이었다. 북한강변에서 맞은 초가을의 날씨는 다소 시원하고 바람도 있어서 좋았다.

내장객들은 모자와 선글라스를 착용하여 잘 구분은 안 되지만 반 이상은 나보다 연식이 더 오래 되신 것 같았고 나머지 반 중에서 반은 내 또래로 보였다. 대부분 시니어(senior) 분들이었다. 그리고 나머지는 나보다 좀 젊은 분, 그리고 청년 팀도 두 팀 목격되었다. 순간 좀 더 알려지면 젊은 사람들에게 잠식당할 가능성도 예견되었다.

숏 홀, 미들 홀, 롱 홀 등 몇 홀을 돌다 보니 요령과 기술이 조금씩 터득되었다. 옆 홀과 사이에는 펜스가 있어서 심하게 잘못 치지 않는 한 볼이 차단되어 안정성도 있었다. 그리고 골프채나 볼, 페어웨이의 길이와 폭, 그린 상태 등이 일반 골프장과는 달라도 비슷한 룰과 방식으로 진행되어 재미도 쏠쏠했다.

9홀, 18홀, 36홀, 이렇게 플레이를 이어 가다보니 점점 재미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햇볕은 아직 강렬했다. 그러나 여름처럼 무덥지는 않아 다행이었다. 솔솔바람이 불어 주니 더욱 다행이었다. 금상첨화로 옆에 북한강이 흐르고 있어서 바람결이 좀 더 시원한 것 같았다.

그야말로 이곳 전체 72홀 파크 골프장, 연녹색의 금잔디 위에 플레이어들이 홀마다 아름다운 골프웨어를 입은 형형색색의 모습들로 전개되어 있었다. 주위는 절경의 산들로 병풍쳐져 있었다. 그 모습만으로도 장관이었다.

9홀 이후부터는 경쟁심을 유발할 수 있도록 끝날 때까지 버디 숫자만 각자 카운팅하여 최하위가 점심 식사를 대접하자는 게임을 하였다. 팀원들이 좀더 신중하게 플레이에 임하는 것 같았다. 나는 오늘 처음 데뷔한데 비해 한 사람은 파크 골프를 시작한지 8년여 됐고 두 사람은 2년여 됐다고 했다.

홀을 거듭할수록 경륜 차이가 나는 것 같았다. 결국 72홀 라운딩이 끝났을 때에 스코어는 우승자가 버디 22타, 준우승 버디 19타, 3등 18타, 나는 17타로 꼴찌였다. 처음 시작하여 2~8년차 고수들 하고 해서 비슷하게 겨뤘다는 것은 '행복한 꼴찌'였다. "꼴찌에게 박수를"은 이런 때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생각되는 순간이었다.

정말 "친구 따라 시장간다"는 말이 있듯이 친구 덕분에 파크 골프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날이었다. "파크 골프는 중독성이 있는 묘한 운동"이라더니 정말 파크 골프 맛이 참 좋았다. 문자 그대로 공원에서 공을 치며 산책하는 운동이라고 생각되었다. 팔에 엘보가 온 것이 덕택이라고 표현하기는 그렇고, 친구 덕분이었다.

또 무엇보다도 친구에게 감사함을 많이 느낀 하루였다. 우선 3개월여 건강상 일반 골프장을 못 나간 나를 헤아려 준 친구의 마음 씀씀이가 무척 감사했다. 그리고 골프장까지 픽업해주고 골프채도 빌려주고, 볼도 주고, 또 일용할 맛있는 음식과 음료 등을 바리바리 준비해줌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있겠는가.

그리고 모자까지 준비를 못해 갔는데 본인이 애지중지 아끼던 빨갛고 멋진 모자를 선뜻 빌려준 친구도 정말 감사했다. 또 3개월여 만에 여섯 시간여를 맑은 날씨 속에서 친구에 대한 감사와 함께 은혜로운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면서 산책할 수 있었음도 너무나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래서 '친구가 좋구나'를 다시 한번 강하게 느껴본 날이었다. 가치관이 다르고 자라온 환경이나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다른 환경에서 성장했다든지 기타 여러가지 다른 여건에서 살아오다 보면 30년, 혹은 40년이 지났어도 서로 소통이 어려운 친구가 간혹있다. 그러나 30~40년 후에 만났거나 처음 알게된 친구가 오히려 뜻과 소통이 잘 되는 경우도 있다.

말과 행동이 서로 어긋나고, 농담이라고 던진 말도 맥락이 없어 어깃둥하고, 자주 변명이나 늘어놓고, 툭툭 던지는 말이 웬지 귀에 거슬리고 불편한, 마치 벽에 대고 대화하는 듯한 그런 친구가 드물게 있다. 차라리 그럴 경우는 '고독과 외로움'을 선택하는 편이 좋다는 생각이 들 때가 솔직히 가끔씩은 있었다.

나이가 들수록, 해를 거듭 반복할수록 많은 친구가 꼭 필요하지는 않은 것 같다. 뭔가 불편하다든지, 뭔가 가치관이나 화법에 조화가 안 된다면 굳이 친구라고 위장하면서 서로 갈등 관계를 무던히 안고 친구인채 할 필요성까지 느끼지 않을 때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부딪히며 갈등하며 지낼 의욕과 기운도 많지 않다. 또 으샤으샤 하며 지낼 열정이나 에너지도 없다. 진솔하게 말하면 '귀차니즘'이 작동 할 때도 됐지 않은가.

그런 시간에 오히려 이렇게 파크 골프장 등에서 자연 친화적으로 친구와 산책을 한다든지, 아니면 영화 감상이나 음악을 듣는다든지, 관조와 명상을 한다든지 '케미가 맞고 서로 감정적, 정서적 스타일에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친구'에게 귀중한 시간을 할애하는 편이 좋겠다는 쬐끔의 성찰을 해본다. 그 점이 많게 남지 않은 여생에 더 가치가 있을 것으로 생각해 보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우선 좋은 친구를 희구하기 전에, 나는 상대 친구에게 좋은 친구인가?

친구는 다음 날 "어깨, 팔, 갑작스런 운동 후 괜찮으냐"고 다소의 걱정과 함께 안부도 잊지 않았다. 오히려 좀 더 부드러워졌다고 답했다. 처음 맛본 파크 골프, 진수성찬 못지않았다. 그리고 친구에게 감사투성이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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