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세무사회가 지난 8일 서초동 세무사회관 대강당서 세무사제도 창설 제62주년 기념식을 가졌다. 조촐하게 내부행사로 치러졌지만 나름 의미는 컸다. 집행부와 고문들을 모시고 구재이 회장이 2년 임기 동안의 추진목표를 회원들에 공언하고 실천계획을 밝히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특히 세무사회 고문들은 세무사회의 역사를 만들어온 산증인들이다. 전직회장들과 세무사제도 발전에 공이 큰 원로 회원들을 고문으로 모시고 있다. 이날 기념식에는 임영득, 나오연, 신상식, 구종태, 임향순, 조용근, 백운찬, 이창규, 원경희, 백재현 고문이 참석하여 축사와 덕담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구재이 회장은 9월 9일을 ‘세무사의 날’로 선포하고 “공공성 있는 조세전문가로서 세무사의 사회적 역할을 생각하고 각오를 다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또 세무사제도 연혁을 통해 제도발전의 발자취를 다시한번 상기하며 선배들이 만들어온 역사에 감사를 담았다. 다음으로 이날 기념식의 하이라이트인 구 회장의 5대 아젠다 및 비전이 소개됐다.

세무사제도는 1961년 9월9일 세무사법이 제정되면서 탄생을 보게 됐다. 61년 9월 제1회 세무사고시 합격자 민경화(자격번호1번), 송재덕(자격번호2번), 유병기(자격번호3번), 최재용(자격번호4번) 4명으로 출발하여 62년간 회원수가 16000명이 될 만큼 쉼 없이 달려온 성장과 발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초창기 회원 수가 적고 힘이 약했던 관계로 외연확장을 위해 세무사법 제정시 변호사, 계리사, 상법·재정학·회계학 등 관련 박사·석사 학위를 받은 자, 국세·지방세에 관한 행정사무 10년 이상 근무자 등에게 세무사 자격을 줬다. 그 결과 5년 후인 66년에는 세무사 등록자 수는 371명까지 늘어났다. 그러나 자동자격 교부 자가 1064명으로 34.8%를 차지하는 등 자동자격에 대한 부작용이 시작됐다.

이후 역대 세무사회장들은 이들 자동자격자를 몰아내는데 혼신을 다했다. 그리고 1972년 박사·석사 학위를 받은 자, 고등고시 합격자에 대해 자동 부여가 폐지됐다. 이후 50여 년간 여러 차례 법 개정을 통해 변호사를 제외한 모든 직업군에 대해서는 세무사 자동 취득이 폐지됐다. 마지막으로 2017년 12월 8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변호사 세무사 자격 자동취득 규정을 폐지하는 내용의 세무사법 개정안이 처리되면서 2018년 1월 1일부터 폐지됐다.

세무사제도 62돌 기념식에서 구재이 회장은 세무사제도의 성장 발자취를 되짚어보고 여기에 새로운 구재이 회장표 새 옷을 입히기 위한 의욕으로 결연한 모습이다. 그가 중점적으로 추진할 ‘세무사제도 혁신 5대 아젠다와 비전’들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세무사들의 선택이 옳았고 세무사들의 복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1만 6천 세무사 회원이 한마음 한뜻으로 ‘혁신’의 제33대 한국세무사회와 함께한다면 사업현장, 세무사회, 세무사제도 3대 혁신으로 회원이 주인인 세무사회, 국민에 사랑받는 세무사를 만들고 ‘세무사 황금시대’를 열 것”이라고 다짐 두는 구 회장의 인사말에 회원들의 기대치는 상종가를 치고 있다.

“세무사법에서 정한 법정단체로서 세무사회 회규, 예산, 조직, 활동 등 회무에서 비뚤어지고 불합리한 제도와 관행은 과감하게 도려내며 회원의 뜻과 이익, 세무사제도 발전 구심점이 되는 자랑스러운 세무사공동체가 될 것”이라는 구 회장의 인사말은 회원들의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세무사 직무 종합 플랫폼 구축하여 세무사 직무를 고도화함으로써 각자도생 회원사무소를 혁신적 시스템 사업장으로 전환시키겠다는 구상에서 “정말 회장 잘 뽑았다”고 이구동성이다. 세무사회 플랫폼 TF를 이미 구성했고 스마트 오피스, 경영관리, 컨설팅 리포트, 공공플랫폼 등 직무종합 플랫폼을 자체구축하고 완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제 세무사 직무수행의 고도화로 명의대여 퇴출은 물론 세무대리수행 타 자격사와의 혁신적 차별화가 가능하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구 회장이 좀 더 차분히 계획을 세웠으면 싶다. 회장에 당선된 흥분이 아직 남아있는지 아니면 구호와 선동을 좋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이상에 흐르는 느낌이다. 실리를 중시하는 실사구시보다는 뭔가 어필하고 인기에 영합하려는 과장된 액션이라는 느낌을 주면 회원들의 외면을 받을 수도 있음을 경계해야한다. ‘회원이 주인인 세무사회’는 2년의 임기로는 부족할지도 모른다. ‘세무사제도 선진화 TF’ 구상도 해당부처가 생각처럼 따라 줄지는 의문이다. 목표를 크게 잡는 것은 좋지만 희망사항을 사실처럼 호도해서는 곤란하다. 그래서 세옹지마(塞翁之馬)란 말도 있다. 잘나갈 때 후일의 잘못될 결과에 미리 준비하는 치밀함을 주문하는 것이 성현들의 가르침이다.

하나 더 첨언하자면 의미 있는 제도 창설 62주년 행사에 세무사제도 발전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정구정 고문의 불참은 못내 아쉽다. 변호사에 대한 세무사자동자격 폐지라는 가장 어려운 과제를 해결하고 회원들에게 영웅으로까지 칭송되는 정구정 고문이다. 삼고초려(三顧草廬)를 해서라도 구원(舊怨)에 대한 화해가 필요했다. 그것이 구 회장의 향후 횡보에도 이익이며 무엇보다 회원모두에 이익이다. 한국세무사회의 전체 회원들에 이익이 된다면 회장 한사람의 감정은 희생할 수 있어야 역사에 남을 회장감이다.

무엇이든지 하고 싶고 마치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일 것이다. 의욕이 넘치는 것은 부족한 것 보다는 좋다. 그러나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했다. 과하여 넘치면 부족함만 못하다는 것이 가르침이다. “세정 패러다임을 바꿀 것”이라는 외침은 아무래도 너무 나간 느낌이다. 세무행정 환경은 국세청의 고유권한이며 납세자 환경도 세무사가 임의로 정할 수는 없다. 특히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법 개정조차도 쉽지 않다. 제도개선은 법 개정을 선행조건으로 한다. 법 개정은 정부안도 어렵고 국회 입법은 더 힘들다. 마음먹은 대로 안 될 공산이 훨씬 높다. 여기에다 공인회계사며 변호사들의 영향력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세무사들의 입맛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

마지막으로 작금의 정치지형도 구 회장의 목표와 매칭이 쉽지 않아 보인다. 공무원들은 ‘국민의 힘’과 대통령실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업무처리의 선행조건일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구재이 회장은 민주당을 지지하는 진보진영의 인사임을 알만 한 사람은 다 안다.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다수당의 지위를 잃게 될 경우 진보진영의 인사들은 소위 찬밥(?)이 될 공산이 높다. 직능단체 대표니까 1만6000여 전문가를 대표하는 단체장에 대한 예우 이상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진보인사들의 공통점인 구호는 화려한데 집행계획은 없는 보여주기 식에 익숙해 있다면 세무사들은 한기를 느낄 것이다. 자체행사로 내실 있게 진행했다지만 현역 국회의원 한명도 보이지 않는 기념식을 보면서 회장의 위상을 생각한 회원들은 정녕 없었을까? 법 개정이나 제도개선에 갸우뚱한 회원은 없었을까? 실속 없는 선동과 쇼로는 훗날 실체가 드러나면 세무사위상이 추락할 뿐이다. 세무사제도 62돌의 잔칫상을 풍성하게하고 세무사제도의 발전을 바라는 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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