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감나무가 울타리를 넘어왔다

안도현 시인
안도현 시인

가지 끝에 오촉 전구알 같은 홍시도 몇 개 데리고

우리 집 마당으로 건너왔다

나는 익을 대로 익은 저 홍시를

따먹을 것인가, 말 것인가

몇 날 며칠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아들은 당장 따먹어버리자고 했고,

딸은 절대로 안 된다 했다

이웃집 감나무 주인도

월경(越境)한 감나무 가지 하나 때문에

꽤나 골치 아픈 모양이었다

우리 식구들이 홍시를

따먹었는지, 그냥 두었는지

여러 차례 담 너머로 눈길을 던지곤 했다

그때마다 아내는 감나무 가지에서

홍시가 떨어질까 싶어 마음을 졸였다 한다

밤중에 변소에 가다가도

감나무 가지에 불이 켜져 있나 없나

먼저 살핀다고 한다

아 우리가 이렇게 된 것은

감나무 때문인가

홍시 때문인가

울타리 때문인가
 

[박정원의 시에서 시를 찾기]

시인 박정원
시인 박정원

   "세 닢 주고 집 사고 천 냥 주고 이웃 산다."라는 속담이 새롭습니다. 1998년 《창비》 여름호에 발표된 이 시에서 이웃과의 ‘갈등’이 절묘하게 반짝입니다. 안도현 시인을 2008년 “국세청 문학의 밤”에 초청하여 「몇 가지 시화(詩話)」란 제목으로 수강한 적 있습니다. 강의내용 중 ”정작 중요한 것은 어떤 소재를 택해 쓰느냐는 게 아니다. 그 어떤 소재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았느냐는 것이다.“를 명명백백 보여 주는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소통이 단절됨으로써 불신이 만연된, 타인을 위한 배려가 없는 요즘에 더욱 와닿는 시입니다. ‘좋은 시는 영원한 생명력을 지녔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해주면서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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