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

김예태 시인
김예태 시인

하늘에서 신호총이 울리면 돌돌 말아 쥔 주먹을 반짝 치켜든다
 

아침을 열어젖히는 나팔꽃의 기상이다

어둠에 맞서 발분하는 분꽃의 위엄이다
 

작은 주먹을 힘껏 치켜들 때마다

푸른 숨결에 결기가 살아있어

갓난아기도 허공을 가르는 훈련에 골몰하고 있다
 

링에 오르는 권투선수의 글러브 속에도

스텝에 따라 풀리는 3분간의 빠른 펀치
 

펜을 쥔 주먹에도 세계를 굴복시키는 푸른 힘이 살고 있다
 

[박정원의 시에서 시를 찾기]

시인 박정원
시인 박정원

   무릇 시인이란, 세상의 모든 고유명사를 지운 “갓난아기”의 “결기”를 지니고 살아갑니다. 무덤에 이르기까지 “주먹” 대신 “펜”으로 드리우고 갈 그 타고난 운명은 늘 “세계를 굴복시키는 푸른 힘”을 찾아 방황하며 고민합니다. 누가 그랬던가요. “전적으로 위대한 사람의 지배하에서는, 펜이 칼보다 강하다.”(Beneath the rule of men entirely great, the pen is mightier than the sword.)라고요. 김예태 시인의 최근 시집 『곡선에 관한 명상』 안엔 책갈피를 여는 쪽쪽 예리한 주먹이 벼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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