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윤석열 대통령이 불법사금융 민생현장 간담회에 참석한 김창기 국세청장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출처: 대한민국 대통령실]
지난 14일 윤석열 대통령이 불법사금융 민생현장 간담회에 참석한 김창기 국세청장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출처: 대한민국 대통령실]

“불법사금융 뿌리 뽑아라” 윤석열 대통령이 특명을 내렸다. 불법사금융과의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불법사금융 민생현장 간담회’에서 “약자의 피를 빠는 악질적 범죄자들은 자신이 저지른 죄를 평생 후회하도록 강력하게 처단하고, 필요하다면 법 개정과 양형기준 상향도 추진하라”며 “국세청은 강력한 세무조사로 불법사금융으로 얻은 수익을 단 1원도 은닉할 수 없도록 조치해주길 바란다”고 지시했다. 대통령의 표정은 엄숙했고 비장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왜 국세청일까? 대통령이 ‘불법사금융’과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가장 오래된 재래식 무기의 사용을 택했을까? 사실 이날 간담회에는 불법 사금융 피해자 및 피해자 상담 인력, 경찰청 수사관 등 현장 관계자 20여명 외에도 한동훈 법무부 장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방기선 국무조정실장, 김창기 국세청장, 윤희근 경찰청장, 이복현 금감원장, 박세현 대검찰청 형사부장 등 금융범죄관련 당국의 책임자들이 모두 참석했고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와 유의동 정책위의장 등 여당 실세와 대통령실에서는 최상목 경제수석과 이진복 정무수석, 김은혜 홍보수석, 김범석 경제금융비서관 등이 함께 했다.

법 개정과 양형기준의 상향을 주문하기는 했으나 국세청을 꼭 짚어서 세무조사를 지시한 것은 행간이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대통령의 표정으로 보아 ‘격노’로 보이기도 하고 강한 질타로 보이기도 했다. 아마도 국세청장의 등골이 오싹했지 싶다. 대통령실에서 입시관련 언급이 나오면 학원세무조사 결과를 내놓고 NGO와 노동단체에 대한 불미스러운 화두가 나오면 어김없이 세무조사의 칼을 들이대는 국세청의 수동적 태도에 대한 질타인가? 모든 사회적 병리현상에 대해 전지전능하게 선제적으로 대처하지 못함을 꾸짖는 것인가? 국세청의 세무조사는 전지전능도 아니고 최신 핵무기도 아닐 것인데 대통령의 의중은 무엇인가? 궁금증만 더할 뿐이다.

불법사금융의 대책은 수요적 측면과 공급적 측면을 동시에 차단해야 효과가 있다. 불법사금융으로 내몰리는 신용불량자로 통칭되는 금융위기자들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대책이 우선이다. 사금융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면 사채업자들도 줄어들 수밖에 없는 먹이사설 구조를 인지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불법추심 등 범죄행위를 예방하기위한 검·경의 대책이 시급하다. 따라서 ‘불법사금융’ 과의 전쟁은 금융당국이 당연히 선제적으로 나서야한다. 다음으로 국회의 입법미비를 돌아봐야하고 현장의 경찰 단속과 검찰의 수사가 뒤따르는 것이 순리다. 국세청은 그저 후방에서 거들뿐 핵심에서 빠지는 것이 오히려 정상이다. 그래서 대통령의 국세청 세무조사 언급은 행간이 엄청나게 수상한 것이다.

불행한 이에게 고통을 담보하는 ‘불법사금융’에 대한 세무조사가 이제 국세청장의 명운을 좌우할 중요이슈로 부각된 것은 사실로 봐야한다. 그런데 국세청이 전국적 조직이기는 하지만 불법사금융의 실상을 어디까지 파악하고 있을지 의문이다. 인터넷상의 광고는 빙산의 일각이다. 불법 사금융은 지방중소도시까지 마수를 뻗친 지 오래다. 일수, 싼 이자 전화번호가 적힌 명함이 길거리 곳곳에 뿌려져 있다. “급한 자금 해결해 드립니다” “타사 추가대출” “직장인, 자영업자, 업소종사자, 여성우대” “안전한 등록업체, 전문대출 걱정 끝” 전화번호와 함께 적힌 명함들이다. 이들을 여하히 추적할 것이며 조사의 실익은 있을까 의문이다.

불법 사금융은 불법을 먹고 자란다. 그러나 인생의 끝자락으로 내몰리는 최악의 불행에 마주한 자들의 마지막 위안이 불법사금융이라면 이 또한 인생이고 삶인 것이다. 불법사금융하면 영화 ‘타짜’가 오버랩되는 까닭은 “갈대까지 간 놈”이란 대사 때문이다. 특히 전국의 크고 작은 도박판이 근절되지 않는 이상 불법사금융은 사라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도박은 역사 이전부터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도박판에는 언제나 소위 ‘꽁지’로 불리는 사채업자가 붙기 마련이다. 불법은 불법에서 자라는 것이 당연한 이치다. 결국은 ‘재수 없이 걸린 놈’ 아니면 ‘동종 전과자’ 몇 명 단죄함으로써 실체에는 접근도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어떤 사연인가는 중요치 않다. 우리 사회에서 ‘갈대까지 간 놈’을 줄이는 것이 불법사금융과의 전쟁에서 최고의 승리일 것이다.

경찰수사나 국세청 세무조사로는 ‘불법사금융’과의 전쟁을 이길 수 없다. 금융위기자(수요)들을 줄이는 획기적 대책이 나와야한다. 불법사금융은 도박과 연계되어있고 ‘좀’처럼 암약하는 특성상 찾아내기도 쉽지 않다. 사금융의 수요자들은 불행이 겹겹이 쌓여 벼랑 끝에 서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희망을 찾아주는 것이 이번 전쟁의 목표가 되어야한다. 불법사금융 피해자들이 쉽고 편하게 신고할 수 있어야 이 전쟁은 승산이 있다. 경찰이 지역별로 조폭 몇 명 가두고 실적이라고 발표해봐야 헛일이다. 보여주기 식일 뿐이다. 국민들의 공감도 얻을 수 없고 불법사금융업자들에게 위협도 못된다. 하물며 국세청 세무조사야 한마디로 ‘껌’이다. 한 명을 잡으면 두 명이 생겨나는 아메바 식 증식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그만큼 이윤이 좋고 쉽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수요(먹잇감)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국세청만으로는 전국의 불법사금융의 실태조차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 것이다. 물론 조사의 실익이 없는 영세한 곳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씨앗이고 결국은 규모 있는 조직으로 자란다. 따라서 전쟁을 제대로 치르고 불법사금융을 완전히 뿌리 뽑기 위해서는 신고센터의 설치가 시급하다. 범정부적 테스크포스가 설치된다고 하니 전국의 은행창구·경찰 민원실·세무서 민원실에 ‘불법사금융 신고센터’를 운영하면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특별 전화도 개설하여 대대적으로 홍보할 필요가 있다. 범죄신고는 112, 화재신고는 119, 전화안내는 114 하는 식으로 금융신고는 ***로 대국민 홍보가 필요하다.

작금의 대책은 나무는 그대로 두고 가지치기만 하겠다는 생각인가? 나무는 가지를 아무리 잘라도 뿌리를 뽑지 않으면 언제든지 또다시 자란다. 전쟁을 하려면 뿌리부터 완전히 제거하든가 흉내만 내는 보여주기 식이면 아예 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 공연히 민심만 흉흉해질 수도 있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운다’는 속담이 공연히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불법사금융에 대한 강력한 세무조사’를 주문한 윤 대통령 지시의 행간으로 보아 ‘국세청장의 명운이 걸렸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국세청이 불법사금융과의 전쟁을 지시한 대통령의 의지를 얼마나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핵전쟁을 해야 할 판에 재래식 무기를 깔았음을 대통령실도 모르진 않을 것이다. 이 사실을 알면 국민들은 또 얼마나 허탈할까? 그래서 김창기 국세청장은 취임 이래 가장 난적을 만난 셈이다. 제대로 하기도 힘들고 보여주기도 힘든 숙제이다. 김창기 국세청장의 아이디어와 역량의 한계가 어디까지 인지. 그리고 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어떻게 넘길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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