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조양호 회장이 항공산업 관련 물품공급 중개사업체를 설립한 후 일가를 공동사업자로 등록하는 편법으로 재산을 증여했다는 혐의를 받는 가운데 해당 중개사업체 실질사업자가 누구인지를 두고 원고와 피고 측 주장이 엇갈렸다.

원고 측은 원고들이 계약서에 서명하고 출자하며 보고도 받는 등 동업계약 의식이 있었고, 故조양호 회장 관여 부분은 그룹 회장으로 후견적 역할을 수행한 것에 그친다고 주장한 반면 피고 측은 중개사업체 대표가 원고 계좌를 관리하며 망인의 지시로 출자금을 입금했기에 실질적인 원고의 출자로 보기 어렵고, 중개업체 존재 여부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며 망인이 실질적 사업자라고 반박한 것이다.

24일 서울고등법원 재판부는 원고 조원태 씨 등이 피고 남대문세무서장 등 과세당국을 상대로 제기한 ‘증여세등부과처분취소’ 항소심 공판을 속행했다.

`18년 서울지방국세청은 한진그룹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해 총수일가에게 증여세 및 종합소득세 140억 원을 부과했다. 故조양호 회장이 항공산업 관련 물품공급 중개사업체를 설립 후 가족을 공동사업자로 등록해 회사 수익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재산을 증여했다는 게 주요 골자다.

이에 조원태 회장 등은 경영에 직접 관여하지만 않았을 뿐 일가가 실질적인 사업자임을 주장했고, 故조양호 회장만을 실질적인 사업자로 간주해 증여세를 부과한 과세당국의 결정이 부당하다며 소를 제기했다.

심리 결과 1심 재판부(서울행정법원 행정 8부)는 故조양호 회장이 실질적인 중개업체 사업자(소유주)이며 사업체 이익이 망인에서 원고로 이전된 것은 처음부터 조세회피를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1심 재판부는 “원고 측은 중개업체에 높은 출자지분을 보유했음에도 업체 사업내용을 인지하지 못했고, 사실상 관여한 바도 없다”고 설명했다.

특히 “망인이 중개업체에서 벌어들인 소득을 가지급금 형식으로 원고에 지급했으며 이는 증여세 부담 없는 무상이전을 목적으로 한 중개업체를 설립 및 운영한 것”이라며 “원고가 이를 용인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 기일 원고, 피고가 각각 정당세액 관련 의견서를 제출한 가운데 재판부는 “액수와 항목 등 특정할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정리해 제출하면 이를 통해 과세자료를 확인(계산방식 등)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겠다”며 “공판 진행이 자꾸 늦어지고 있는데 다음 기일 전에는 반드시 자료를 제출해야 할 것”이라고 명령했다.

PT 발표 관련해서는 “모든 내용을 훑어볼 필요는 없으니 가급적 핵심 내용 위주로 살펴보겠다”며 “상대방이 유력하게 주장하는 부분에 대한 탄핵, 주장과 근거 연결 관계에 주목한다는 것을 전제로 발표를 허용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날 공판은 정당세액 관련 계산착오로 PT만 진행된 가운데 원고 측 변호인은 “저희가 원심 판단을 두고 어떠한 논리적 추론 과정을 거쳐 그러한 처분에 이르렀는지 고민한 결과, 아마 故조양호 회장으로부터 손쉽게 이익을 얻었다는 점에서 과세 논리가 시작된 게 아닐지 싶다”며 “다만 이것이 상증세법에서 정한 증여에 해당하지는 않는 것 같다”고 말문을 열었다.

원고 측 변호인은 “현행 상증세법은 대표적으로 일감몰아주기, 일감떼어주기 등 개별규정으로 정한 것 외에는 과세할 수 없다는 것으로 이해된다”며 “이러한 입법 취지에 대한 국회 검토보고서를 보더라도 재산가치 상승분에 과세하면 동시에 여러 세금이 부과돼 납세자 권익 침해가 우려된다고 밝힌 바 있다”고 설명했다.

또 “故조양호 회장 사업 관여는 인정하나 이는 대한항공이라는 대기업 회장의 특수한 위치에서 단지 후견적 역할을 수행한 것에 불과하다”며 “재벌 회장은 계열사를 총괄하며 그룹에 대한 사회적 이익이나 관심, 이런 것을 고려해 자녀들 업체도 관리 대상으로 두고 재무상황 등을 파악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원고 측 변호인은 “계좌내역 등을 보고받은 것을 전제로 故조양호 회장 계좌라고 주장하기는 어렵다”며 “대한항공이라는 큰 그룹의 회장이었기에 일반인에 비해 그 역할이 강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었고, 사업 관련 승인이 아닌 전체 그룹 관리자 입장에서 보고를 받은 것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원고의 동업계약 의식이 없다는 지적에도 이들(원고) 대부분이 다 계약서에 서명하고 도장도 찍었으며 출자도 했고 보고서 형식으로 보고도 받았으며 수익이나 분배도 故조양호 회장이 결정한 것이 아니다”며 “인식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동업계약 관련 인식과 의사가 전혀 없다고 보기는 어려운데 모든 의사결정을 故조양호 회장이 했고 원고 의사결정이 없다고 보는 것은 비약”이라고 덧붙였다.

원고 측 변호인은 또 “피고의 실질과세원칙 주장은 故조양호 회장 관여 정도가 깊다는 판단으로 보인다”며 “그룹 회장이 자녀가 운영하는 회사 자금관계나 승계 등 문제를 파악하는 것은 당연한데 이를 두고 故조양호 회장이 직접 운영했다며 과세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피고 측 변호인은 “이 사건 쟁점은 故조양호 회장이 중개업체를 두고 그 수익을 증여했는지 여부”라며 “故조양호 회장 지시를 받던 중개사업체 대표 원 씨 문답서를 보면 그가 원고 계좌를 관리하며 망인 지시로 출자금을 입금했기에 실질적인 원고 출자로 보기 어렵고, 원고들은 출자금 납입은 물론 중개업체가 있다는 사실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고 반박했다.

특히 “중개업체 사업자 명의, 업체 이름이 계속 변경되는 상황에서 원고들은 750만 원, 1650만 원 정도만 출자했음에도 매년 수억 원에 달하는 이익을 배당받았다”며 “이에 원고가 납부한 출자금은 형식적인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고 강조했다.

또 “원 씨 진술을 보면 故조양호 회장의 포괄적 위임이 있었기에 중개업체 경영이 가능했다고 밝히며 관련 사안을 망인에 보고한 반면 원고 등에 이를 보고하거나 한 사실은 없다고 명백하게 밝혔다”고 덧붙였다.

원 씨에서 김 씨로 중개업체 대표가 바뀐 부분에 대해서는 “김 씨는 故조양호 회장의 고등학교 동문이며 미국에서 사업한 자로 원고들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다”며 “이러한 점 등을 감안할 때 실질적으로 망인이 이를 지배하고 실제 사업을 운영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피고 측 변호인은 “1심 판결에서도 수입 및 지출내역, 경제적 동일성 등을 종합할 때 故조양호 회장 지위가 인정된다고 판시했다”며 “이 사건에서 망인은 원 씨를 대표로 내건 위장사업체 수익을 원고 대부분이 향유하게 해 증여세 부담을 회피한 것으로 간접적인 방법을 통한 증여세 혜택을 받도록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음 재판은 내년 1월 10일 정당세액 관련 내용을 바탕으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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