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씨년스런 이 가을

쓸쓸히 서 있는 나무를 본다

굵직한 몇 가닥 가지만 매달고

바람을 의지해 군입을 풀풀 털어버리는

나무의 요량料量

동한冬寒을 살아남기 위한

실한 슬기다

아니 푸르렀던 욕망을 버리는

비움이다
 

[박정원의 시에서 시를 찾기]

시인 박정원
시인 박정원

   미리 유서(遺書)를 남긴다면 무어라 쓰게 될까요. “몇 가닥 가지만 매”단 ‘부질없음’이 “나목”을 올려다보게 만듭니다. 벌거벗고 태어나 벌고 벗고 가야만 되는 게 생(生)이란 걸 부정할 목숨, 세상에 단 하나도 없습니다. ‘거기서 거기’라는 이치를 또 다른 별이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푸르른 지구별에 빚을 지고 갈 뿐입니다. 우리가 누리려 했던 “욕망”을 다 비울 수나 있을까요. “군입” 시절을 그리워하며 오유지족(吾唯知足), ‘오늘’이 있음이 더없이 행복할 뿐입니다. 짧은 김선옥 시인의 시가 단숨에 우리를 휘어잡는 이유이고요. 감추는 것만이 ‘시의 힘’이 아니라는 걸 여실히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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