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공애민' 세종시 국세청사 정문에 설치돼 있는 표지석이다. '세금을 고르게하여 국민을 사랑하라'는 뜻이다.
'균공애민' 세종시 국세청사 정문에 설치돼 있는 표지석이다. '세금을 고르게하여 국민을 사랑하라'는 뜻이다.

청룡의 해인 2024년 국세청장의 신년사는 역대급이었다. 형식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만큼 역작이었고 내용면에서도 걸작이었다. 형식에서는 과거 대부분의 신년사들처럼 ctrl+c와 ctrl+v 빼고 나면 뭐가 남나 싶은 그렇고 그런 신년사와는 격조가 달랐다. 내용면에서는 국세행정의 핵심 메카니즘만을 추렸다. 필요한 내용만 함축적으로 담은 것도 돋보였다.

김창기 국세청장의 2024년 신년사의 핵심 화두는 ‘따뜻한 세정’과 ‘공정한 세정’이었다. 따뜻한 세정은 근로장려금 등 분배의 정의를 실천하는 것과 세정지원을 의미한다. “저소득 가구에게는 보다 편리하고 신속하게 근로장려금을 지급하고, 어려운 소상공인들에게는 환급금 조기지급, 납기 연장 확대 등으로 따뜻한 세정의 온기가 필요한 곳에 고루 퍼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 시대에 국세청의 역할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준다.

따뜻한 세정의 온기는 건전한 기업들에 대한 세정지원에서도 체감도를 높이고 있다. “수출 및 신산업 분야 등에서 국내 경제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기업들이 세금문제 걱정 없이 사업경영에만 전념하고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세무검증 부담을 완화하고, 공제·감면 세무컨설팅과 R&D 세액공제 사전심사를 우선 처리하는 등 전방위적으로 지원해 나갑시다.” 혁신을 위한 국세청의 방향을 읽을 수 있다.

국세청장 신년사 화두로는 가히 역대급으로 볼만하다. 다만 ‘따뜻한 세정’이 국세청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것은 아님을 자각하고 시대에 맞게 변모하고 혁신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공정한 세정’도 마찬가지다. 응능 부담에 상응하는 공평을 어떻게 달성하느냐는 영원한 숙제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신년화두로 내놓은 자체만으로도 역대급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어디에서나 ‘옥의 티’는 있게 마련이다. 우선 의례적인 인사말인 줄 알지만 2만여 국세가족의 수장이 “존경하는 국세가족”이라고 말해버리면 9급 새내기 직원들은 청장에게 뭐라고 인사해야하나 궁금해진다. “사랑하는 국세가족”정도만으로도 충분했을 것이다.

진짜 역대급은 국세청장의 인식인 것 같다. 국세청장은 국세공무원들의 수장이기도 하지만 정부 내 국세청장의 위치는 나라의 재정수입을 책임지는 막중한 자리다. 흔히 나라의 곳간지기라는 말이 통용될 정도다. 국세공무원들만의 청장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데 신년사 어디에도 납세자는 실종되고 없다. 오로지 국세가족만의 국세청장인가?

나라의 살림살이를 책임지는 자리의 국세청장이라면 새해를 맞는 신년사에서라도 납세자에 감사 인사 정도는 있어야 좀 더 잘 어울릴 것이다. 국가의 재정수입을 달성하기 위해 전심전력으로 노력했으나 세수부족 사태를 초래하여 송구합니다. 먼저 지난해에 대한 반성부터 있어야 했다. ‘고물가‧고환율‧고금리’의 삼중고의 어렵고 힘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성실납세로 국가의 살림살이를 이만큼이라도 지키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성실납세에 대한 감사 인사는 빼지 말았어야 했다. 특히 전 세계적인 코로나 환경과 경기침체에 따른 불경기와 인플레이션 현상은 소규모 자영업자들에게 심대한 타격을 주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경제전반에 대한 국세청장의 식견도 보여 주었어야 한다.

새해는 ‘민생’에 역점을 둔 정부의 정책기조와 보조를 맞추어 경기활성화를 지원하는 세정을 펼치도록 행정력을 집중할 계획입니다. 납세에 불편함이 없도록 납세비용을 최대한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국세행정의 기본 틀을 어떻게 유지할 것이며 경제와 국세청의 역할과 당면과제 등에 대한 국세청장의 철학도 녹여 냈어야 했다. “존경하는 납세자 여러분!”으로 시작해서 “성실납세를 통해 애국할 수 있도록 전심전력으로 돕겠습니다”로 끝나는 신년사를 기대했던 분들은 실망 역시나 역대급이었을 것이다.

국세가족들에게는 “사랑하는 국세가족 여러분. 대한민국의 살림을 책임진다는 사명감으로 헌신해 주십시오. 행복하고 보람 있는 직장이 되도록 제가 돕겠습니다”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국세행정의 방향이나 집행계획은 연초 지방국세청장회의를 통해 각 실·국별로 지침이 하달될 것이다. 이때 실무적인 다양한 아이디어들도 나오게 될 것이다.

er aspera, ad astra (페르 아스페라, 아드 아스트라)의 고상함도 역대급이다. 철학적 인용으로는 너무나 고상하다. 그런데 “고생 끝에 낙이 온다” “인생은 쓰나 그 열매는 달다”등의 쉬운 동의어보다 빛나 보이지는 않는다. 국세청장의 신년사에 납세자가 실종된 때문일 것이다. 2024 국세청장의 신년사가 진정 역대급인 것은 ‘납세자의 실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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