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문위 9명 중 6명 사기업 사외이사, 지배구조개선 자문 역할

3월 주총 시즌 앞두고 의결권행사 관련 논의 등 행보 나서

국민연금공단이 지난해 12월 독립성을 보장해 기금운용본부 내부에 설치한 지배구조개선 자문위원회 명단을 확정했다. 일각에서 이해 상충 우려가 있다며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가운데 올해부터 2년간의 공식활동을 시작했다.

국민연금은 KT, 포스코, KT&G 등 굴지의 국내기업 중 확고한 지배주주가 없는 '소유분산기업'의 수장을 결정하는데 주주권을 발휘하는 등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자문위는 이들 소유분산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점을 면밀하게 들여다보고 주주권 행사를 결정하는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책위)에 자문을 해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김태현 국민연금 이사장이 위촉한 자문위는 김화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위원장으로, 환경·책임·투명경영(ESG)에 정통한 민간 전문가 9명으로 구성됐다. 김화진 서울대 법학 교수, 김이배 덕성여대 회계학 교수, 이상철 이화여대 경영학 교수, 조명현 고려대 경영학 교수, 천경훈 서울대 법학 교수, 이지윤 연세대 경영학 교수, 김경율 회계사, 이시연 금융연구원 연구위원, 황현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 등으로 구성됐다. 자문위 존속기간은 2년이다.

국민연금이 지분 5% 이상 보유하고 있는 상장기업의 사외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인물이 다수 포함돼 있어 이해 상충 우려의 목리가 흘러나온다. 국민연금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상장기업의 사외이사 등 이해관계자가 포함되면서 이해 상충의 문제를 안고 있다는 얘기다.

위원장인 김화진 서울대 교수는 현재 현대모비스 사외이사로, 임기 2025년 3월 22일까지 보수위원회 위원장, 감사위원회 위원,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 위원, 지속가능경영위원회 위원 등을 맡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국민연금이 지분 8.50% 보유한 상장기업이다.

또 조명현 교수는 현대글로비스에서 스튜어드십코드분과 위원장,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 위원, 투명경영위원회 위원, 기업지배구조 자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사외이사다. 국민연금은 현대글로비스의 지분율 8.88%인 332만9548주를 보유하고 있다.

이어 천경훈 서울대 교수는 LG화학 사외이사로, 감사위원회 위원, ESG위원회 위원,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 위원, 내부거래위원회 위원장 등을 맡고 있다. 임기는 오는 2026년 3월 27일까지다. 지난해 8월 기준 LG화학 주식 지분율 7.36%(519만5146주)를 가지고 있던 국민연금이 단순투자 목적에서 일반투자 목적으로 보유 목적을 변경했는데, 이는 임원 해임 청구, 이사선임 반대, 배당금확대 제안 등 더욱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김이배 교수는 NH농협생명보험, 이상철 교수는 메리츠증권, 이지윤 교수는 우리금융캐피탈 사외이사를 맡고 있어 9명 중 6명이 사기업의 사외이사직을 갖고 있는 상태다. 3명은 국민연금이 주식을 보유한 상장기업의 사외이사고, 3명은 상장기업 계열사의 사외이사로 이해상충 논란은 불가피해 보인다.

이에 대해 국민연금과 자문위 측에서는 국민연금의 외부 자문위원은 직위가 아니라 단순 고문 또는 자문 역할을 하는 것으로 겸직 금지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특별한 법적 규정이나 기준이 따로 없는 만큼, 자신이 속한 기업에 유리한 자문 내용을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이해 상충 문제를 지적한다.

국민연금공단은 국민이 낸 막대한 자금을 기반으로 국내외 주식뿐 아니라 국내외 채권 및 대체투자 등의 다양한 자산군에 투자하고 있다.

투자현황을 살펴보면, 국내 주식에 137조4000억원, 국내 채권에 314조1000억원 규모를 투자 운용하고 있다. 이는 국민연금 전체 자산 대비 각각 14.0%, 31.9%에 해당한다. 해외 주식과 채권에는 각각 전체 자산 대비 30.0%, 7.3%인 295조1000억원과 72조2000억원을 투자하고 있다. 또한 사모투자, 부동산, 인프라 등에 161조1000억원을 대체투자하고 있다.

이를 통해 국민연금은 지난 한해동안 100조원 이상의 수익을 내고 수익률도 역대 최고인 12%대를 기록했다고 잠정집계했다. 지난해 글로벌 경기침체 속에서 80조원의 손실과 -8.22%의 수익률에 비해 연간 수익금이 100조원을 돌파한 것이 지난해가 처음으로 전체 적립기금(순자산) 규모도 1000조원을 넘길 것으로 전망돼 상당히 고무적인 성과를 올렸다는 평이 나온다. 구체적인 국민연금 지난해 수익률은 오는 3월 최종 집계를 마치고 기금운용위원회 의결을 거쳐 공개된다.

사실상 주주총회 시즌이 3개월 이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자문위는 이에 대비해 의결권행사 자문 대상, 범위, 방향 등 제반사항 논의 등 바쁜 일정에 나섰다.

자문위 내 의결권행사 분과는 9일 서울 모처에서 의결권 행사 관련 사실상 첫 회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첫 회인 만큼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관련 자문 상장사 선정 및 자문 범위에 대한 방향을 잡을 것으로 알려졌다. KT, 포스코, KT&G 등 소유분산기업에 대한 논의가 우선 주제로 다뤄질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지난해 소유분산기업인 KT에 이어 올해 최정우 포스코 회장의 연임 무산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친 것과 관련해 오는 3월 임기 만료되는 백복인 KT&G 사장의 4연임 도전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10년째 KT&G를 이끌고 있는 백 사장은 이번 차기 사장에도 4연임의 의지가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국민연금은 KT&G의 지분 6.31%를 보유한 채 최대주주인 중소기업은행(6.93%)과 美투자기관에 이은 3대 주주다. 백 사장의 4연임 여부에 중대 변수로 작용할 수 있는 국민연금은 현재까지 KT&G와 관련해 말을 아끼고 있는 상황이다.

저작권자 © 세정일보 [세정일보] 세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