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억원 상속세 재원 마련, 양사 최대주주 변경

한미약품 장·차남 통합 반발 나서, 경영권분쟁 '불씨' 조짐

제약회사인 한미약품그룹과 화학·첨단소재 기업 OCI그룹이 손을 잡고 지주사를 통합하는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 연출됐다. 한미약품과 OCI의 각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와 OCI홀딩스가 통합을 결정하면서 하나의 기업집단으로 통합되어 단숨에 국내 30대 기업으로 도약할 발판을 마련함과 동시에 향후 제약바이오와 첨단소재신재생에너지 사업군을 펼쳐나갈 전망이다.

한미사이언스는 지난 12일 이사회를 열어 OCI그룹과 통합에 관한 합의 계약을 체결했다. 임주현 사장 등 한미사이언스 주요 주주가 OCI홀딩스 지분 10.4%를 취득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송영숙 한미사이언스 회장과 딸 임주현 사장이 각각 OCI홀딩스 1.75%와 8.62%를 각각 확보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임 사장은 개인주주로는 OCI홀딩스의 최대주주에 등극하게 된다.

이어 OCI홀딩스는 지난 14일 현물출자와 신주발행 취득 등을 통해 한미사이어스 지분 27.0%(구주 및 현물출자 18.6%, 신주발행 8.4%)를 확보해 그룹간 통합의 기치를 올렸다. 이번 통합으로 OCI그룹은 기존 첨단소재와 신재생에너지 사업분야에 더해 제약·바이오사업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OCI그룹과 통합을 결정한 직후 송영숙 한미사이언스 회장은 직원들에게 “창립 50주년을 지나 새로운 50년을 앞둔 시점에서 글로벌 한미로의 도약을 꿈꾸며 숙고한 결과, 이런 결단을 내렸다”며 “앞으로 한미그룹과 OCI그룹은 아름다운 동반자로서 공동 경영을 통해 소재·에너지와 제약·바이오라는 전문 분야에 각각 집중하면서도 시너지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글을 전했다.

하지만 한미사이언스 이사회 이튿날 송 회장의 장남인 임종윤 한미약품 사장(코리그룹 회장)이 양사간 통합과 관련해 "회사나 가족으로부터 어떠한 고지나 정보, 자료를 전달받은 적 없다”며 그룹간 통합에 반발하는 목소리를 냈다. 차남인 임종훈 사장도 형 임종윤 사장과 뜻을 함께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미약품 창업주인 고(故) 임성기 회장과 송영숙 한미사이언스 회장 사이에 장남 임종윤·장녀 임주현·차남 임종훈 등 3남매가 있는데, 일각에서는 이번 OCI그룹과의 통합은 임 사장의 모친인 송 회장과 여동생인 임주현 사장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경영권 분쟁의 불씨가 될 수도 있음을 전망하기도 한다.

장·차남인 임종윤·종훈 사장은 한미사이언스의 지분율 12.12%, 7.20%를 각각 보유하고 있으며, 이번 통합을 주도한 송 회장 모녀의 합친 지분인 19.85%과 비슷한 수준이다. 한미사이언스의 신주 발행으로 주식 거래가 종료되면 이들 형제의 지분율은 각각 11.10%, 6.59%로 희석된다.

이와 관련해 한미약품그룹은 OCI그룹과의 통합 절차는 한미사이언스 이사회 구성원 만장일치로 결정된 사안이며, 임종윤 사장은 한미약품 사내이사인 것은 맞지만,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 이사회에는 속해 있지 않아 통합 결정 과정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2020년 창업주 임성기 회장 별세 이후 오너일가에게는 5000억원이 넘는 상속세 납부의 재원 마련이 최대 고민거리였다. 주식 매각 외에 뾰족한 자금조달 방법이 없지만, 주식을 팔면 그만큼 지배력도 약화되기 때문에 고민이 깊을 수 밖에 없었다.

임 회장이 유족들에 남긴 주식의 평가액은 상속 당시 기준 약 1조원 규모로 추정되는데, 관련 법령에 따르면 증여액이 30억원을 넘을 경우 상속세 최고세율인 50%가 적용된다. 고인이 최대주주 또는 특수관계인일 경우 할증액 20%가 더해져 상속세는 주식 평가액의 60%로 올라간다

상속세 자금 마련을 위해 송영숙 회장과 임주현 사장은 지난해 5월 라데팡스파트너스와 손잡아 주식담보대출을 통해 3132억원을 조달하는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하지만 주식 거래가 완성되지 않았고 이번 OCI와의 통합으로 송 회장 모녀는 상속세를 낼 수 있는 자금 확보가 가능해졌다.

OCI는 현금과 현물출자 방식을 통해 한미사이언스의 구주와 신주를 인수할 계획이다. OCI홀딩스는 한미사이언스 지분 매입에 총 7703억원을 투입하게 되는데, 우선 매입 대상 구주는 송 회장 등 3인이 보유한 주식 744만674주이며, 12일 종가 기준 거래 금액은 2857억원이다.

또 OCI는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2400억원을 들여 한미사이언스 신주 643만4316주를 확보한다. 또한 OCI홀딩스는 현물출자를 통해 송 회장 모녀가 보유한 한미사이언스 주식 677만6305주를 확보하고, 대가로 송 회장과 임주현 사장을 대상으로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방식의 2528억원 규모 신주 229만1532주를 발행한다. 사실상 OCI홀딩스의 신주 229만1532주와 한미사이언스 주식 677만6305주를 맞교환하는 셈이다.

이 과정에서 송 회장과 임 사장은 상속세 납부를 위한 자금 확보가 가능해졌다는 관측이다.

이로써 주식 거래가 종료되면 양사의 최대주주가 교차되어 OCI홀딩스는 임주현 사장이 10.4%, 한미사이언스는 OCI홀딩스가 27.0%를 보유한 최대주주가 된다. 한미약품그룹은 OCI홀딩스→한미사이언스→한미약품으로 지배구조가 재편될 전망이다. OCI홀딩스도 각 그룹별 1명씩의 대표이사를 포함한 사내이사 2명을 선임해 공동 이사회를 구성하고, 이우현 OCI 회장과 임주현 사장이 각자 대표를 맡는 것으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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