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계단 올라 골목 작은 공터에
매여 있는 당나귀 한 마리
뭔가를 열심히 뜯어 먹고 있다
종이상자다
저 상자 속에 흐르는 강물 소리를 알아낸
저 동물의 커다란 귀
등에 곡식 가득 싣고서 이집트를 떠나
허기진 고향 땅 가는 요셉 형제들의 나귀가
귀를 쫑긋 열고 고향의 물소리에 귀 기울이는 모습 보인다
세상의 귀들이 자유를 누리고 있을 때
저 작은 체구의 동물은
귓불 크게 열고
끝에서 끝으로
두수없는 세상 험한 일 찾아 걸으며
물 흐르는 소리를 당기고 있다
[박정원의 시에서 시를 찾기]
삶의 근원인 “물 흐르는 소리를” 찾아 오늘을 맞습니다. 인간과 함께하는 만물은 생명수 없인 살 수가 없습니다. 지창구 시인은 귀가 큰 “당나귀”를 상징으로 세상의 소리를 듣습니다. 용서와 화해와 배려가 절실한 지금, 수구초심이랄까요? “고향의 물소리”가 인연생기, 즉 유기체적인 우주의 섭리에 머물게 합니다. “고향 땅 가는 요셉 형제들의 나귀“처럼 ”귀를 쫑긋 열고“ 또 하루의 중심에 서 있는 당신, 좀 “자유”로워 졌나요? 어릴 적 맘껏 뛰놀던 당나귀의 모습이 우리의 ‘참삶’이 아닐까 싶습니다. 애써 그리워하던 당나귀의 “종이상자”에 귀 기울이며, 고요히 ‘나의 정체성’에 대하여 여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