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첫 표 대결로 배당·정관변경 안건에 양측 1대1

알짜기업 놓고 계열분리 수순 or 주도권 잡기 ‘이전투구’ 전망

지난 19일 열린 고려아연 제50기 정기 주주총회. [사진: 고려아연]
지난 19일 열린 고려아연 제50기 정기 주주총회. [사진: 고려아연]

창업 시절부터 끈끈하게 이어오던 장씨-최씨 일가의 '한지붕 두가족' 동업관계였던 영풍그룹이 3세 경영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경영권 다툼이 벌어졌다. 올해 주주총회를 기점으로 75년만에 그 관계가 정리될 것으로 관측되기도 했지만 사실상 올해는 무승부로 표대결을 마쳤다. 앞으로 고려아연 경영권을 놓고 벌일 두 집안의 다툼이 더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고(故) 장병희·최기호 창업주가 1949년 공동 설립한 영풍그룹은 그동안 최씨 일가가 고려아연을 맡고, 장씨 일가는 지배회사인 영풍그룹과 전자 계열사를 경영해왔다. 그러다 지난 2022년 3세 경영에 들어선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체제에서 계열분리 가능성이 대두되면서 두 집안의 지분 확보 경쟁이 본격화됐다.

제련·비철금속 전문업체인 고려아연은 지난해 매출 9조7045억원, 영업이익 6599억원을 기록한 알짜 기업으로 평가받는다. 현재 우호 지분을 포함한 최 회장의 고려아연 측은 지분율 33.2%, 장형진 고문의 영풍 측은 32.09% 가량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상태다.

고려아연의 최대주주인 영풍은 이번 고려아연 주총을 앞두고 정관변경 및 배당금 축소 안건에 반대 의사를 던지며 사상 첫 표대결을 예고했다.

지난 19일 서울 강남구의 영풍빌딩 별관에서 진행된 고려아연의 제50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먼저 결산 배당 5000원을 포함한 배당금 결의(제1호 의안)는 참석 주식수 62.74%의 찬성률로 고려아연의 원안대로 통과됐다. 고려아연 지분 7.49%(3월13일 기준)를 보유한 2대 주주 국민연금이 배당안에 찬성표를 던진 것이 결정적이었다. 결산 배당을 5000원으로 결정하면서 고려아연의 배당금은 작년보다 주당 5000원 줄어든 1만5000원으로 배당금 총액은 1040억원이다.

이에 대해 고려아연 측은 "주주환원율이 76.3%로 높아졌는데도 영풍이 주주권익 침해 논리를 앞세워 기말결산 배당금 1만원을 요구해왔다"면서 "영풍의 요구대로 배당금을 늘린다면 주주환원율이 96%을 넘어서 기업가치를 크게 훼손될 우려가 커지면서 회사측 원안대로 압도적인 찬성률로 가결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날 특별 결의 대상인 '신주인수권' 관련 정관변경 의안(제2-2호)은 과반 이상의 찬성(53.02%)을 얻었지만 영풍 측의 반대로 부결됐다. 상법상 특별결의가 통과되려면 출석 주주의 3분의 2, 발행 주식의 3분의 1 이상의 동의를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에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할 때 '경영상 필요로 외국의 합작법인'에만 할 수 있도록 제한하는 관련 조항은 그대로 유지된다. 사실상 주총의 주주 참석율은 평균 90%에 못미쳐 영풍 측의 반대만으로도 정관변경 안건의 부결은 예측된 상황이었다.

이와 관련해 영풍은 "많은 주주들이 표를 모아 준 덕분에 주주권을 침해하는 현 경영진의 전횡에 제동을 걸 수 있게 됐다"며 "앞으로도 전체 주주의 권익 보호와 가치 제고에 더욱 힘쓰겠다"고 밝혔다. 반면 고려아연은 정관변경 안건을 다음 주총에 다시 올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일반 주주와 대리인, 의결권 위임기관 관계자 등 150여명이 참석한 이번 고려아연 주총은 박기덕 고려아연 사장이 의장을 맡아 진행됐고,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과 장형진 영풍 고문은 모두 참석하지 않았지만 최 회장은 사내이사로 재선임됐고, 장 고문 역시 기타비상무이사로 재선임됐다. 기타비상무이사로 김우주 현대차 전무가 이사회에 새롭게 합류했다.

고려아연 경영 주도권을 둘러싼 동업자 집안 간 충돌은 이번 주총에서 사상 첫 표대결을 치룬 결과 무승부로 끝났지만, 이들의 경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계열분리 수순을 밟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지만 공정거래법상 계열 분리를 위해선 특수관계인의 주식 보유 비중을 상호 3% 미만으로 줄여야 한다.

장씨 일가의 영풍 입장에서 현금흐름이 좋은 알짜 기업인 고려아연을 포기할 리 없고 오히려 지배력을 더욱 공고히 다지려 할 것이고, 이 때문에라도 최 회장은 지분 확보를 위해 막대한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 결국 앞으로도 양측이 경영권을 놓고 사사건건 충돌하면서 감정싸움으로 번진 '이전투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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