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외부세무조정제도 법제화 이뤄낸 백운찬 세무사회장

예상치 못한 대법원 ‘외부조정제도 무효’ 판결…‘절체절명의 위기’ 맞아
교수진·세무사회 임직원 등 '2개의 태스크포스' 설치…휴일 없이 강행군

“외부조정제도 예산부수 예외조항으로 밀어내는 상황에 많은 걱정과 대비”
“고생한 집행부 임직원들과 도와준 전국의 회원님들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조마조마’ 피 말리는 4개월이었다. 세무사회가 54년 역사에서 가장 힘든 시간(4개월)을 넘겼다. 오히려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되었다.

가장 치열하고, 또 비방과 음해가 난무했던 힘겨운 선거전을 넘어 회장 임무를 수행한지 한 달 20일 만에 세무사들의 젖줄인 외부세무조정제도가 폐지될 위기로 치닫는 대법원의 판결이 내려졌다.

8월 20일 대법원의 전원합의체는 소득세법과 법인세법 시행령에 근거해 시행되고 있는 강제외부세무조정제도는 “무효”라는 판결을 내렸다. 세무사회는 업계가 최대의 위기를 맞을 수 있는 ‘청천벽력’이었다. 더욱이 세무사회로서는 선거 때의 여러 가지 문제로 소송까지 제기되는 등 업계내부의 문제도 정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찾아온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이런 상황을 예견이라도 했을까. 세무사들은 지난 6월 선거에서 새내기 세무사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백운찬 전 세제실장을 새 회장으로 선택(55.62%)하는 예지를 보여주었다.

이런 기대를 알고 있었기에 백운찬 회장은 대법원 판결문을 받아들기가 무섭게 법률에 규정하는 길 밖에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즉각 태스크포스를 구성했다. 그리고 서초동 한국세무사회관의 밤을 하얗게 만들었다. 오후 3시에 시작한 회의는 자정을 넘기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일부 임원들은 ‘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속마음이 있었지만 불평을 드러낼 수 없었다. 백 회장의 의지와 솔선하는 자세에 압도되었기 때문이었다.

백 회장은 무효화된 외부조정계산서제도를 전광석화처럼 법률에 규정하는 관련 법률개정안을 입법예고 하게끔 하는 수완을 발휘했다. 법안은 국무회의까지 일사천리로 통과됐다. 일부에서는 세무사들이 전직 세제실장을 회장으로 모셔와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인 ‘무효’라고 판결난 제도를 살려 내려하고 있다는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세무사들은 숨죽이며 지켜보았고, 백 회장은 자신의 장기(長技)인 강력한 추진력으로 집행부는 물론 전국의 세무사들을 한마음으로 뭉치게 만들면서 세무사들의 ‘꿈’을 지켜냈다. 지난 12월 2일 밤 11시 40분경에 맞은 희소식이었다.

국회의 법안 심의과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쉽게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어려움을 제대로 아는 사람들은 아마 백 회장에게 ‘감사하다,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문자메시지를 수없이 보냈을 것이다. 그런 4개월 동안 백 회장은 아마도 ‘천당과 지옥’을 몇 번 오갔을 것이다.

지난 주말 세무사들의 ‘보물상자’인 외부세무조정제도를 온전히 지켜낸 백운찬 한국세무사회장을 만나 지난 4개월의 숨막히는 순간순간을 들어보았다. -편집자 주-

▶ 지난 8월 20일 회원들의 젖줄인 외부조정계산서제도를 위협하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혹시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 판결 소식을 처음 접한 후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그리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어떤 것인지?

=‘큰 일’이라고 생각됐다. 평생 세법을 다루어온 사람으로서 한 마디로 ‘큰 일 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어렵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세무사들에게는 정말 중요한 문제라는 판단이 섰고, 즉시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세무사들의 중요한 수익원인 것은 물론이고, 국가세수 확보와 성실신고를 담보하는데 꼭 필요한 외부조정제도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방안을 강구하는데 골몰했다. 그 방법은 대법원이 시행령으로 제도를 시행하는 것은 무효라고 한 만큼 무엇보다 법률로 규정하는 것이 필요하고 또 그렇게 해야한다고 판단했다.

▶태스크포스에서는 어떤 일을 하였는지?

무엇보다 어려웠던 점은 8월 20일 당시에는 이미 2015년도 세법개정안이 입법예고가 되어있는 상태였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의원입법으로 할 수 도 없는 상황이었다. 밤낮 없는 토론과 대안마련을 숙고한 결과 정부안의 정상적인 입법예고는 40일이지만 특별한 경우에는 단축할 수 있다는 법제처의 규정을 근거로 짧은 기간임에도 최선을 다해 정부안을 입법예고해 낼 수 있었다.

지금 이야기이지만 TF는 교수팀과 내부 임직원팀 등 2개를 운영했다. 한 팀에서는 대법원 판례를 분석하는 일에서부터 외부조정제도의 법적근거를 마련하는데 토론과 토론을 거듭했고, 또 당위성을 정립하는데 시간을 할애했다. 그리고 다른 팀에서는 다른 단체들의 반대에 대한 대응논리 개발과 국회에 대한 설명자료를 준비하는데 영일없이 움직였다.

집행부 부회장단, 연구이사, 법제이사, 이승문 세무사를 비롯해 연구기획팀원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 TF는 그날부터 지난 2일까지 운영되었으니 ‘102일간의 TF’였다고 해도 될 것 같다.

▶ 결과론이긴 하지만 짧은 기간에 정부안이 만들어지고, 입법예고와 국무회의 의결까지 전광석화처럼 진행되었는데, 세제실장 출신이라는 점이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분석인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오랫동안 입법을 해본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와관련 한 단체에서 감사청구까지 해놓았기 때문에 자세한 설명을 드리기가 조심스럽다는 말씀을 드린다.

▶ 자칫 대법원 판결이 몇 일 더 늦게 나왔을 경우 정부안이 어려웠을 것이다. 어떤 대안이 있을 수 있었는지?

=의원입법은 어렵다는 점에서 정부입법이 이뤄지지 않았다면 제도 자체가 무산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외부조정계산서제도가 운영되지 않을 경우 기업들은 세무조정을 세무사가 아닌 아무에게나 맡기게 되어 솔직히 신뢰할 수 없는 신고서가 난무하게 되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었다.

당장 내년 법인세 신고때 외부조정계산서제도를 첨부할 필요가 없어지게 되어 이는 곧 세금신고에 대한 신뢰성 저하로 국세청의 행정비용이 크게 늘어나게 될 것이고, 납세자 입장에서는 신고가 맞는지 틀리는지가 헷갈리는 등 엄청난 혼란이 불가피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엉터리 조정이 이뤄진다는 것은 당장 국가 세수에도 크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세무사회의 입장이었다.

이번 국회 논의에서도 이런 점이 제도의 법제화에 큰 힘이 되었다고 본다.

▶ 납세자연맹, 변호사단체 등 반대가 적지 않았는데?

=변호사들 주장의 핵심은 변호사 자격자는 세무업무를 다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논리의 시발점은 세무사법은 두더라도 변호사법에 의해 업무가 가능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사회가 분화되지 않고 복잡하지 않았을 때에는 상관없지만, 이제는 그런 시대가 아니라는 점에서 변호사 자격으로 세무대리를 하겠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이야기이다.

▶ 외부세무조정제도의 법제화가 대법원 판결을 부정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많았는데?

=대법원의 판결은 외부세무조정제도를 규정하고 있는 법인세법·소득세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은 모법 조항의 위임범위를 벗어난 규정이므로 무효라고 한 것으로써 외부세무조정제도의 법적근거를 법률에 마련할 것을 촉구한 것이다.

또한 외부세무조정제도가 국민의 기본권 및 기본적 의무와 관련되는 만큼 모법인 법률에 적용대상.작성주체 및 위임근거를 규정하도록 한 것이지, 현행 외부세무조정제도의 내용 및 운영 자체가 위헌이라고 판결한 것이 아니다.

더욱이 납세자와 과세관청간의 신뢰관계를 형성시켜 납세자가 제출한 세무신고서류에 대해 성실성 추정을 가능케 하는 제도적 근간이 될 뿐 아니라 신고납세를 토대로 하는 조세제도의 민주적 정착에 크게 기여하는 공익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으므로 세무조정에 대한 비용이 일부 발생되더라도 재산권 및 일반적 행동자유권(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다.

또 세무전문가에 의한 세무조정은 세무신고의 오류를 최소화해 가산세 등의 손실이 발생되지 않도록하며, 만약 손실이 발생된다하더라도 발생된 오류에 대한 손실(가산세 등)은 해당 세무전문가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으로 보장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세무조정 비용이 납세자에 대한 과중한 부담이라고 볼 수 도 없다.

▶ 그래도 국회 심의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안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숨막히는 순간을 한두 가지 듣고 싶습니다.

=일부 단체의 경우 아예 외부조정제도를 폐지하라는 곳도 있었다. 이렇게 되면 세무조정시장에 자신들도 진출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는 현행 세무사법에서도 불가할 뿐 아니라 세무사와 그 자격사의 선발과정이 다르다는 점에서 과도한 주장이라고 밖에 할 수 없었다.

법제화를 추진하면서 가장 큰 걱정은 법사위였습니다. 관련 개정안이 기획재정위를 통과하더라도 변호사들이 다수 포진한 외부조정제도를 예산부수 예외조항으로 밀어내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점을 많이 걱정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외부조정제도는 성실신고를 담보하는 것이고, 성실신고는 곧 국가의 세수와 직결되는 문제로써 당연히 예산부수 조항이라는 논리를 무장해 왔다.

▶ 2003년 개정된 세무사법, 즉 변호사의 세무사 등록금지 조항도 이번 외부조정제도의 법제화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고 보는데.

=맞다. 그 부분도 연관은 있다. 하지만 변호사들은 고유업무가 있다. 변호사 영역이 법률행위대리와 사실행위대리가 있다면 세무기장과 조정 등은 세무사 업무로 특화된 분야인 것이다.

▶ 솔직히, 왜 굳이 강제외부조정을 해야 하는지 궁금하다.

=외부세무조정제도는 추가적인 경제적 부담을 유발하는 규제가 아니라, 납세자가 성실하고 정확한 납세를 위해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제도이다. 납세자는 외부세무조정을 특별한 법적의무가 아니라 효율적으로 업무처리와 편의성을 증가시키는 수단으로 평가하고 자발적으로 선택하고 있다.

최근 5년간 국세통계를 보면 전체 신고자중 외부세무조정의무화 대상자는 법인 30%, 개인 13~15%에 불고하나 실제 외부세무조정을 받은 신고자는 법인 90%, 개인 87%이상이다. 이처럼 외부세무조정 신고자 비율이 높은 이유는 외부세무조정이 의무화되지 않아 자기세무조정을 선택할 수 있는 납세자중 법인 90%, 개인 70%이상이 자발적으로 외부세무조정을 선택해 자신의 세무업무에 대한 효율성과 편의성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 약간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세제실장을 오래하셨는데 정부에 있을 때와 세무사회장으로서 입법을 하는 것은 어떤 점이 달랐는지 궁금합니다.

=세제실장을 2년 동안 했다. 평소에 친분이 있는 의원님들도 있었다. 그리고 개별적으로 만나 뵙기도 했다. 그러나 세제실장일 때는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조세소위에 들어가 설명을 할 수 있었지만 세무사회장으로서는 소위 측에서 참석하라고 하지 않는 이상 들어갈 수 없다는 점에서 확실히 신분이 변했다는 것을 체감했다.

▶ 어떤 회원들은 세무사들의 ‘보물상자’를 지켜냈다고 하기도 한다. 이번에 외부세무조정제도를 법제화하면서 회원들과의 소통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전국의 회원님들이 정말 많은 도움을 주셨다. 멀리 해남, 목포, 동해, 춘천 등지에서 첫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와 힘을 보태주시면서 격려와 덕담, 용기를 주어 큰 힘이 되었다. 어떤 회원님은 조정제도의 법제화를 꼭 이루어 달라면서 5만 원짜리 지폐 한장을 꼭 쥐어주기도 했다. 가슴이 찡 했다. 회원님들의 여망과 간절함이 배어있었던 것이다. 저 또한 밤낮없이 뛸 수 있었던 큰 힘이 되었던 것 같다.

2일 밤 학수고대하던 외부조정제도가 법제화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많은 회원들이 격려와 칭찬의 문자메시지를 넘치도록 보내왔다. 그동안 함께 고생했던 임원 분들과 세무사회 직원들, 그리고 보이지 않게 도움을 주신 여러회원님들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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