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 돌연사의, ‘비상상황 속’…‘부드러운 카리스마’로 중부세무사회 안정시켜
“회무의 연속성 차원, 제가 적임자라고 생각”…차기 회장직 도전 숨기지 않아
 

‘인천사나이’라는 표현이 딱 맞을 것 같다. 인천을 주름잡던 부평고를 졸업하기도 전에 국세공무원 시험에 덜컥 합격했다. 이듬해(77년) 동인천세무서(당시)에서 세무공무원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2002년 남인천세무서 관내에서 세무사 개업을 하여 지금까지 이르고 있다.

2005년 남인천세무사협의회 간사를 시작으로 세무사 회직에 대한 봉사를 시작해 중부세무사회 국제협력위원, 본회 정화조사위원, 중부세무사회 부회장 등 벌써 12년째 회원들의 심부름을 자처하고 있다. 처음엔 본의가 아니었지만 언젠가 나의 일이 되었다는 숙명에 봉사라는 길에 대해 고민이 깊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해 정범식 현 중부세무사회장이 본회의 징계에 반발해 ‘사의’를 표명하면서 불어닥친 전례 없는 비상사태를 ‘재신임’이라는 카드를 꺼내어 깔끔하게 마무리하면서 차기 중부세무사회장감으로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그런 그가 내년 6월 예정된 중부세무사회장에의 도전장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짠물 인천의 조용한 카리스마의 소유자로 평가받으면서 중부세무사회의 차기 지도자감으로 급부상한 ‘최훈 중부세무사회 부회장’을 세정일보가 만났다. 그리고 3000명 가까이에 이른 중부세무사회를 어떻게 이끌면서 한국세무사회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인지도 물어봤다.
 

대담: 김영기 상무‧기획특집국장, 정리: 선정화 기자

▶ 가장 궁금한 부분부터 먼저 질문 드리고 싶다. 차기 중부세무사회장에 도전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들었다.

= 아직 생각을 확고히 굳히진 않았지만 세무사회 본회가 정중동으로 움직이지 않고 시끄럽다. 이런 시점에서 중부회 마저 흔들려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누군가 맡아야 한다면 회무의 연속성 측면에서 4년간 부회장으로서 중부회장을 보좌해온 제가 적임자라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저보다 더 훌륭한 분들이 많이 계시지만 그분들께서 양보해 주신다면, 말로만 하는 회장이 아닌 ‘진정한 회장으로서 역할’을 다하고 싶다.

▶ 한국세무사회에서의 중부세무사회의 역할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중부세무사회의 역할은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다른 지방세무사회의 전체 회원 수를 합쳐야 중부세무사회 회원 수와 비슷하듯이 회원 수는 물론 지리적으로도 중요한 위치에 있다. 본회, 서울회, 중부회의 역할이 다르지만 본회를 보좌해서 세무사회의 무한 발전에 기여를 해야 하는 중요한 역할이 중부세무사회에 주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3000여 중부세무사회장으로서 ‘과세관청과의 소통을 통한 회원들의 권익을 대변해야 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28일 세무사회 임시총회에 대해 견해를 듣고 싶다.

=사적자치단체에서 해임이 되었다고 해서 이런 문제를 법원으로 가져가고 하는 것은 좀 부끄럽다. 이번 임시총회 때 많은 중부회원들이 참석해 자기의사를 표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이는 또 중부세무사회의 역할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생각도 있다. 말 로서만 ‘중부회’ ‘중부회’ 하지 말고 실질적으로 ‘숫자로 보여주는 것이 최고다’라고 생각한다.

특히 정기총회나, 임시총회에 참석하는 것이 중부세무사회가 하나 됨을 보여주는 일이다. 난제일수록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부회의 위치를 보여주는 바로미터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중부세무사회는 회장의 징계문제와 교육비 문제가 상존해 있는 만큼 이번 임시총회는 중부회의 문제를 풀기위한 총회라는 점에서 더욱 많은 회원들이 참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지난 6월, 중부세무사회장 직무대리 시절 깔끔한 업무처리로 회원들에게 ‘총회의 사나이’로 불리면서 ‘차기 지도자감’이라는 평가가 이어졌는데.

=당시 정범식 회장의 사의표명은 갑자기 이뤄졌다. 부회장으로선 폭탄을 맞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크든 작든 공적인 조직을 끌고 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하늘이 무너진 것 같은 중압감을 느꼈다. 그래서 당장 임시 상임이사회를 긴급 소집했었다. 수석부회장 입장에서 ‘정범식 회장이 원상복귀 하는 것이 맞다. 정 회장 체제로 끌고 가자’고 상임이사들을 설득했다.

회칙상 정 회장의 잔여임기가 1년 이상 남았기 때문에 당시의 상황이 고정된다면 임시총회를 열어 회장 선출을 위한 보궐선거를 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복잡다난’했다. 과거 그런 사례 또한 없었다.

정범식 회장을 설득(사의철회)했더니 죽어도 복귀 안하시겠다고 하는 상황이었다. 당시 정 회장은 ‘이렇게 치욕적으로 명예가 짓밟힌 상태에서 어떻게 회무를 보겠나. 직무대행 체제로 가세요’라면서 고집을 꺾지 않았었다.

그러나, 더 큰 혼란을 막고 ‘반듯한 중부회를 위해 반드시 복귀시켜야 겠다’는 생각으로 상임이사회를 열었고, 6월 정기총회에서 회원들의 뜻을 묻자고 적극적으로 설득을 했었다.

▶ 당시 총회에서 김관균 세무사의 반대 토론을 허용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당초엔 찬반 토론을 받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날 총회는 외부인들도 있고, 또 무엇보다 교육까지 예정돼 있어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는 점에서 부득이하게 토론을 부치지 못했고, 어차피 민주주의의 최종 결정방식이 표결이라는 점에서 신속히 표결로 전환했던 것뿐이다.

물론, 당시에는 60%이상의 찬성이 나오지 않을 경우 집행부 전원이 사퇴하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마음을 비운상황에서의 표결이었기에 오히려 홀가분한 마음에서 강하게 밀어부칠 수 있었던 것 같다.
 

▶ 중부세무사회 부회장직이 벌써 4년째다. 스스로 점수를 매긴다면.

=‘부’(副) 자는 회장을 보좌하는 역할이다. 회장을 앞서거나 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어디까지나 회장을 보좌해서 본회 또는 회원들 이익의 대변자로서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부회장직에 대해 스스로 점수를 매기기는 그렇구요. 다소 부족한 면이 많았겠지만 충분히 제 역할을 해왔다고 생각한다. ‘살신성인’ 이라고 할까? 어차피 회직을 맡았고, 또 주어진 일이라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세금밥 40년’, 고교시절에 국세공무원 합격해 중부세무사회 부회장까지.

최훈 중부세무사회 부회장은 1977년 그의 나이 19살 때 국세공무원으로 첫 발을 디뎠다. 고3때 국세공무원 시험(5급을류, 현 9급공채)에 합격해 고교 졸업장보다 먼저 국세청 발령장을 받아 올해로 ‘세금밥’을 먹은지 딱 40년째다.

그는 당시 국세공무원 합격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고향 부평에 경사가 났었다. 돼지고기 몇근 사다가 동네잔치를 열었었다”라고. 그러나 그는 일단 발령을 연기해달라고 국세청을 찾아갔다. 당시에 대학진학과 국세청 근무를 두고 고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고민은 바로 국가와 공무원을 선택했다. 솔직히 당시에는 공무원에 대한 대우가 좋던 시절이었다는 점에서 선택했다. 고교졸업 일주일만인 1980년 3월 3일 첫 근무지 동인천세무서에 발령을 받았다. 마지막 근무지인 중부국세청 감사관실에서 퇴직(2001년)할 때까지 약 21년의 국세공무원 생활 시작이었다.

그리고 2002년 남인천세무서(과거 동인천세무서) 관내에서 세무사 개업을 했다. 개업 3년차 되던 2005년에 남인천세무사협의회 간사를 맡았고, 지금 중부세무사회 부회장까지 벌써 12년째 회직에 몸담고 있다. 중부회 부회장을 처음 할 때만 해도 한번으로 족하다고 생각했으나, 현 정범식 회장과의 특별한 인연으로 4년째 정 회장을 보좌하고 있다.

보다 발전하는 중부회를 위해, ‘새로운 시대, 새로운 중부회장’을 꿈꾸면서부터 최훈 그의 마음이 요동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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