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다가온다. 국세청은 인사시즌이다. 지방국세청장, 세무서장 등 간부들 여럿이 관복을 벗고 세무사로서 활동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왜 세무서장을 하다가, 지방청장을 하다가 퇴직을 하는 것일까. 아마도 ‘배려’ 때문이라는 말이 딱 맞을 것이다. 이런 관행은 오래전부터 내려오던 것이었다. 그러자 세월이 흐르면서 이제는 당연시 되어버렸다. ‘관습법’이라고 해야할까.

국세청에는 다른 부처에는 없는 서기관(4급) 이상의 경우 공무원법에 보장된 정년퇴직이 없다. 정년보다 2년 먼저 후배들을 위해 자리를 비켜주는 이른바 ‘명예퇴직제도’가 있다. 법에는 없는 것인데 오랫동안 국세청이 운영해온 ‘관습법’같은 것이다. 과거 힘 있는 사람들이 국세청장을 오래하는 등의 이유로 인사가 적체되다보니 고육지책으로 만든 것인데 선배들이 명퇴를 하면서 자리가 생기고, ‘나도 지방청장과 세무서장에 오를 수 있었다’는 점에서 때가되면 누구하나 군소리 없이 2년 먼저 옷을 벗는다. 그러다 보니 퇴직 후 당연한 수순인 세무사로 개업을 해야하니 개업에 도움이 될지 모르니 기관장으로 근무를 하다 그만두라는 ‘배려’인 셈이다. 순전히 기자의 생각이긴 하지만.

그런데 이 배려가 국세청 사람들은 아주 오래된 옷을 자연스럽게 입는 것처럼 보이지만 국세청 밖에서 보면 켜켜이 쌓인 ‘적폐積弊’로 보이기도 한다는데 문제가 있다. 요즘은 많이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세무서장을 하다가 그만두면 관내 사업자들이 1~2년간 고문으로 위촉해 고문료를 지급한다. 세무서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음으로 양으로 사업자를 배려한데 대한, 아니면 전직 세무서장이기에 최소한 2년 정도는 그 세무서에 영향력이 미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에 따른 보수정도일 것이다. 그리고 그 사업체는 일정기간이 지나면 또다른 퇴직 세무서장을 고문으로 영입(?)한다. 이런 고문자리를 위해 어떤 세무서장들은 세무서가 운영중인 세정협의회를 이용하기도 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세금이 얼마나 무서우면 전직 세무서장을 고문으로 위촉하고 또 매월 따박따박 고문료를 안길까. 이런 현상은 퇴직 후 2년간 일정규모 이상의 세무법인 등에 취업을 제한하는 규정도 소용이 없다. 무엇보다 문제는 이런 오래된 관습에 국세청은 그것이 ‘적폐’라는 시실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국세행정사에서 기억에 남는 개혁조치중 하나로 기억되는 지역담당제폐지(1999년)를 단행할 때 국세공무원들은 적잖이 반발했었다. 하지만 당시 서슬퍼랬던 힘을 가졌던 국세청장이 강하게 밀어부쳐 성공시켰던 기억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연말 세무서장 인사를 앞둔 국세청에게 묻는다. 명퇴를 앞둔 즉 세무사 개업이 코앞인 간부들을 세무서장으로 임명하지 않는 개혁을 할 용의는 없는지를 말이다.

이런 지적에 대해 많은 현직들과 세무사들은 ‘요즘은 고문을 해주는 관내 사업자들이 어디있느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이 말이 진실이라면 더더욱 개업을 앞둔 간부들을 세무서장으로 내보낼 이유(배려)가 없다. 한승희 청장님! 이번에는 젊고 싱싱한 서기관들을 세무서장으로 임명하는 용단을 내리면 어떨까요.

아마도 세무서 법인세과, 조사과 직원들은 우리 세무서장이 이번에 그만둔다고 하는데 고문자리라도 챙겨주어야 하나라는 부담감이 없어질 것이며, 제대로 된 세원관리가 이루어질 것이며, 관내 사업자들 역시 그런 압박감에서 해방될 것이다. 또한 세무서장으로 퇴직하면서 고문자리 하나 없이 맨몸으로 개업하는 변두리 세무서장들도 상대적 발탈감에서 자유로울 것이다. 일거삼득一擧三得 의 효과다.

그렇게만 된다면 세무서와 납세자와의 결탁이 없는 퇴직 세무서장에게 잘 보이지 않아도 되는 성실한 납세자들이 어깨 펴고 사는 당당한 세상이 될 것이며, 그리고 퇴직한 국세공무원들도 ‘나 과거에 국세청에 근무했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그런 밝은 세상이 오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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