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정 / 동청주세무서

 

  봄새 지저귀고 노오란색 꽃들이 지나간 순간 연분홍꽃 치마들 입고 치마 자락 휘날리게 꽃바람이 불고, 송학가루도 날리며 하늘이 뿌연 하다.

  날씨 영향인지 안과에 사람들로 줄을 섰다. 안과 진료를 받으려고 접수하자 대기표를 주며 열일곱 번째이고, 한 시간 반 기다리라고 한다.

진료대기자 명세서가 티브이 같이 모니터에 초록색 글씨로 표시되어 한눈에 봐도 진료 순서를 알 수 있도록 나이와 이름이 크게 보였다.

69세 박** 할머니

84세 이** 할머니

85세 최** 할머니

79세 김** 할아버지

50세 최** 회사에서 나이가 아주 많은 편인데 여기서 만큼은 제일 젊다.

  귀 안 들리는 할망구들 앞에서 간호사들은 익숙한 듯 같은 말을 두 번 세 번 부르며 채근한다. 왜 큰소리로 반복하나 상황을 보니 들어도 옆 할머니들 이야기에 진료는 두 번째이고 이야기에 푹 빠져 불러도 듣지를 못 하신다.

장날 병원도 모두 함께 모둠으로 오셨는지 새벽 장에서 무엇을 샀는지 연신이야기 보따리를 푼다. 언제 왔는지 첫 차를 탔는지 서로 안부를 묻는다.

이런 분위기를 압도하는 한 할머니 전화벨이 엄청 크고 목소리 또한 우렁차게 병원이 떠나갈 듯 쩌렁쩌렁 하게 통화를 하며 “방금 빙원에 도착 했는 디 끝나자마자 뛰어오라면 어째 그려 계단도 겨우겨우 지팡이 짚고 올라 왔는 디 글씨 어찌 뛰어 가유 진료 받으려면 언제 끝날지 모르고 앞에 사람들이 열 댓 사람 있는 디”, “어디 가서 기다리던가? 허~슈?.”

  할머니 핸드폰을 쳐다보며 구시렁구시렁 할아버지에게 욕을 하니 할머니들 귀는 모두 욕을 하는 할머니에게 당나귀처럼 귀를 쫑긋 세우고 심취한다. “지팡이 짚고 온 나한테 진료 끝나자마자 뛰어 오라고 하네, 계단도 겨우 붙잡고 올라 왔는디~, 모종을 사도 모종이 금방 죽지도 안는 디 금방 시든 다고 오라네, 그러다 내가 시들고 말 겨.”

  옆에 앉아 말씀도 조용조용하게 하시는 할머니가 차를 마시며 맞장구를 친다. “진료나 편안하게 받고 천천히 가유, 다음 장날 올지 안 올지 모르고 모종이 금방 죽지 않으니까.”

  혼잣말처럼 구시렁거리는 할머니 “영감쟁이 어디 기다려 보라지. 반나절은 기다려야 할겨~”

  할머니의 맛깔난 입심에 이구동성 한마디씩 거든다. 어느 할머니는 옆에서 훈수까지 곁든다. “할아버지한테 모종을 사서 이 병원으로 뛰어 오라면 하면 되지 굳이 다리 아픈 사람한테 뛰어 오라고 하는 겨, 그려 안 그려…….” 모두들 고소한지 맞장구치며 죽이 척척 맞는다.

간호사 한 분이 방금 전 방송을 하더니 참다못해 한 할머니에게 손을 붙잡고 끌고 가다시피 진료실 쪽으로 간다.

  농촌에 사는 사람들이 백내장 치료를 많이 받는 이유는 논과 밭에서 일을 많이 하시기 때문에 백내장이 나이 들어 더 쉽게 온다는 것이다. 안과 질환으로 잠시 온 병원이지만 나의 미래 시간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오랫동안 마음이 머물며 막연하게 늙어가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최윤정 작가 프로필]

△현재 동청주세무서 근무

△국세가족문예대전 수필부문 동상 수상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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