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경 / 익산세무서
 

 늦은 봄
나 그리고 만나면 즐거운 직원 한 명, 두 여인이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곳, 뷰티인사이드란 영화를 보며 꼭 가보리라고 다짐해 온 곳. 프라하행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몇 달 전부터 비행기를 예약하고, 숙소를 정하고, 무엇을 할지 무엇을 먹을지, 발레공연을 볼지, 인형극을 볼지 숱하게 많은 일들을 의논하고 예약하고 그 모든 과정에서 우리의 기대는 부풀어갔다. 프라하 공항. 숙소에서 우리를 픽업하러 온 체코 아저씨를 만나 가방을 싣고부터 우리 여행은 시작되었다.

 시내 한 복판에 자리한 한 층에 방 한 칸인 작은 아파트. 유쾌하고 덩치 크고 힘도 쎈 우리 아파트 주인아주머니는 무거운 짐가방을 양손에 하나씩 들고 계단을 씩씩하게 올라갔다. 무겁다고 그냥 달라는 우리에게 No Problem!! 외치며. 아담한 창문 거기다 어떤 집에도 없는 발코니가 있는 이 집에 온 우리는 정말 행운이라며.  연신 땀방울을 훔치며 큰 목소리로 모든 집기를 설명하고,  우리가 가고 싶은 관광지들의 위치, 이후 옮겨갈 도시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는 전철역에 대한  설명 그리고 마지막으로 문을 잠그고 여는 법과 자기와 친구들이 동업으로 프라하에 10채의 아파트를 세 얻어 이렇게 관광객을 대상으로 주택임대를 하고 있다는 자랑스러움까지 알려주었다.
여전히 큰 목소리로 중간에 막 웃어가며...

 두둥..
나가자.
문을 잠그고, 모든 아름다운 곳들이 걸어서 이동 가능한 도시. 프라하의 구석구석에 발자국들을 찍었다. 지도를 보며 화약탑에서 까를교를 걷고 프라하성에 갔다가 내일은 비스투스성당을 가고... 굴라쉬수프를 어디서 먹고 여기서 사야할건 뭐고.  쉴 새 없이 우리의 계획을 되새김질하며. 관공서와 학교 그리고 다리 눈이 가는 곳 마다 고색이 아름다운 그 거리에 감탄을 했고, 그 거리를 채운 자유롭고 행복해 보이는 여행자들을 보며 우리도 자유를 만끽했다.  아름다운 날씨에 인터넷 블로그에서나 보던 풍경 속으로 들어와 있다는 거짓말 같은 사실에 웃음을 마구마구 날리면서.

 그리고 도착한 까를교.
차들은 없이 사람으로 가득한 넓은 다리. 강에서 이어지는 나선형계단. 그 계단난간에 주렁주렁 장식처럼 달린 온갖 색상의 자물쇠들. 이름 모를 커플들의 사랑을 담고 잠근 저 자물쇠의 열쇠들은 아름다운 강 속으로 들어갔구나. 그 강물위엔 또 사랑을 하는 연인들이 탄 온갖 배들이 반짝이며 여유롭게 떠다니고 있었다. 그 사랑들 잠잠히 가라앉아서 강물 위 비바람에 흔들리지 않았으면 하며 그 순간 변치 않는 사랑을  빌었다. 그곳에 다녀간 사랑들을 위하여.

 다리 난간들에 놓인 조각상들. 다리 위를 걷는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 자기의 물건들을 파는 상인들. 그리고 자기의 예술을 펼치는 사람들.
그림을 그리고 연주를 하고 장신구를 만들고 강아지와 함께 깡통을 놓고 돈을 구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 사이를 서서히 걸으며 프라하를 즐기며 다리 끝에 거의 다다랐을 때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젊은 음악가 4명의 연주를 들었다. 연주는 발랄했고 네 명은 한 사람처럼 바이올린 활대를 움직였다. 목 안쪽에서부터 다리의 난간을 건너 하늘로 춤을 추듯 하늘을 찌르듯.  그 순간 해님이 반짝 모네의 그림 같은 구름을 뚫고 나왔고 선선한 바람이 훌쩍 불어왔다.

 그들의 바이올린은 바람을 타고 햇살아래서 날아다녔다.
금세 날아와 머리카락을 스쳐 귀에 꽂히고 몸속의 혈관을 타고 다니며 젊고 아름다운 선율을 몸속으로 전달했다.
말할 수 없이 빛나던 순간, 행복한 시간.
그들은 그 순간 음악으로 얘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
“We are all alive.!!” 또한 발걸음을 멈추어 그들의 연주를 듣는 우리들도 덩달아 “I am also alive.” 그냥 외치고 싶었다.
한참을 멈추어 하나로 움직이는 활대가 만드는 음악에 빠졌고, 힘껏 움직이는 고개와 팔과 서로를 바라보고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에 눈을 맞추었다.
이것이구나.
까를교가 아름다운 이유는 그 아래를 흐르는 강이나, 그 아름다운 난간이나 완벽한 날씨나 이런 것들이 아닌 것 같았다. 그 위를 걷는 사람과 그 위에 머문 사람이 모두 생생히 살아있으며 행복해하는 그런 어려운 일이 가능한 것. 그것인 듯 보였다.

 저녁
체코의 유명한 글라쉬수프와 흑맥주와 프렌치프라이를 주문했는데 옆자리 할머니들 둘이 자꾸 우리의 프렌치프라이를 보며 무어라 얘기를 했다. 하나 맛보실래요? 했더니 고맙다며 먹는다. 맛있다고 하고 무언가를 각자 열심히 적어갔다. 보기가 좋아 이것저것 물었더니 프랑스에서 주말에 잠깐 여행을 왔고, 오랜 친구이며, 이렇게 여행하는 걸 아주 좋아한다고 했다. 혹시 노트를 보여줄 수 있겠냐고 물었더니. 한 분은 인쇄체로 한 분은 필기체로 빽빽이 써내려간 글씨에 곳곳의 입장권과 영수증, 그리고 뭔가 감상들을 적은 듯한 노트를 보여주었다.  이렇게 적지 않으면 저녁에 잊거나 피곤해서 잠들거나 한다고 웃으며 설명을 했다. 행복해보였다. 젊어보였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걸 목격하는 듯. 그리고 부러웠다. 두 친구의 관계도, 그 글씨도, 또 낯선 사람과 스스럼없이 얘기하고 웃고 나눠먹고 할 수 있다는 것도. 우리의 이름을 우리나라 글씨로 수첩에 써달라기에 한글로 이름을 쓰고 그 아래 여권의 영어이름을 쓰고 읽어주었다... 소리 내서 따라했다..  이...우 운...겨....엉...!!!

 집으로 돌아오는 길, 도로 위를 다니는 트램, 여전한 음악, 시끌벅적한 웃음, 숙소 앞 광장 시계탑 앞엔 정각을 알리는 종소리에 맞춰 돌아가는 인형들을 보기위해 모인 사람들. 하늘로 야광조명이 달린 장난감들을 고무줄에 튕겨 올리고, 기다란 빨대를 수십 개씩 꽂아 커다란 컵속의 술을 같이 나누고. 여행자들과 체코인들과 술에 들뜬 사람들과 사랑에 잠긴 사람들 모두가 섞여 시간은 봄날 공기 속을 천천히 취한 듯 흐르고 기나긴 여운처럼 웃음소리는 계속되었다.
그리고 다음날 또 그렇게 걷고 또 걷고, 웃고, 먹고 여행을 즐겼다.
걷기 좋은 도시, 가고 싶었던 모든 곳들을 다니며
여유가 있는 여행자들은 강위에서 온 종일 배를 타고 썬탠을 하고, 여유가 없는 우린 열심히 걸으며 눈 속에 체코를 담고 다녔다. 음악과 음식과 풍경들과 그 모두를 즐기는 사람들까지.

 그리고 프라하에서 야간열차를 탔다.
우리는 피곤했고, 열차는 깔끔했고 아늑했다. 곯아떨어진  여행객들을 태우고 어두운 밤을 꾸준히 달려 아침이 되어갈 때 고마운 기차는 부다페스트에 우리를 데려다주었다. 부다페스트에선 무조건 대중교통을 이용해보기로 하고 바로 대중교통 프리패스를 구매했다. 일단 샀으니 숙소까지 최단거리와 이용할 트램번호를 확인하고 하차.
구글 지도에서 500미터만 걸으면 숙소라고 했다.
그런데. 내리자마자 경사가 급한 계단이었다.
트렁크 손잡이를 양손으로 잡고 몇 십 개의 계단을 올라오니 이런 또 계단이었다. 그래도 지금 온 만큼 가면 되겠지 하며 또 올라갔다.

 도로하나를 지나 또 같은 계단이다. 지도상 그 거리가 모두 계단으로 오르는 거리였던 거다. 아, 우리의 숙소는 도로와 하늘 그 중간쯤에 있나보다 싶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 눈앞이 캄캄했다. 이를 어쩌지? 저 많은 계단을 다 오르질 못할 것 같은데!.
가방과 계단을  번갈아보며 서있는 우리 앞에 커다란 개 두 마리랑 산책을 하던 남자가 멈췄다. 우리와 트렁크를 보더니 여길 올라 갈꺼냐고 물었다. 아무래도 트렁크를 들어줄 것 같았다.
 그런데 한 블록의 계단을 올라가도 우리 숙소는 아직 멀고 새까맣고 커다란 두 마리의 개랑 같이 있을 자신도 없어서 감사와 사양을 하고. 또 올라갔다. 그런데 그렇게 두 블록의 계단을 오르고 나니 도저히 더 할 수는 없었다. 팔도 아프고 덥고 너무 힘이 들었다. 지도를 보며 돌아갈 길을 찾았더니 언덕을 지그재그로 휘감아 걸어야했다. 너무도 먼 인도조차 없는 길을 걸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차도 옆에서 히치하이킹을 시도했지만 다니는 차도 많지 않았고 멈추는 차도 없었다. 웬일인지 택시도 오지를 않았다.

 그렇게 안타까운 표정으로 십여분쯤 길 위에서 쩔쩔매는데 멀리서부터 걸어오던 중년여성이 멈췄다. 왜 그러냐고? 도움이 필요하냐고.
우리는 상황을 얘기하고 택시라도 타고 싶은데 어찌해야 하는지를 모르겠다고 하니  일단 자기 사무실이 가까우니 같이 가자고 했다. 너무도 기꺼이 감사의 인사를 하며 따라갔다. 우리와 함께 도착해서 사무실의 문을 열고, 창문을 열고 선풍기를 켜주고 우리에게 차를 내어주었다. 우리의 숙소를 묻고 자기가 오늘은 차를 안 가져왔으니 택시를 불러주겠노라고 했다. 우리는 선풍기 앞에서 그날 처음 마시는 물을 마시며 긴장을 풀었다. 한국에서 왔고 헝가리가 처음이며, 계단인 줄 모르고 걸어가려했다고 더듬거리며 설명했다. 그녀는 자기 나라가 처음인 것 같은데 힘들어보여서 도와주고 싶었다며 헝가리에 대한 느낌이 좋길 바란다고 인사를 했다.  너무 감사해서  내일이라도 다시 이곳에 와서 감사의 인사를 해야지 생각하며 “See you again”인사를 했고 그녀는 우리에게 다정히 “See ya”하며 손을 흔들었다. 따뜻했다.

 숙소는 깨끗하고 저렴하고 바로 눈앞에 유명한 성 어부의 요새를 품고 있는 환상적인 곳이었다.  우리 방 창문너머론 타일지붕과 하얀 대리석으로 지어진  마차시 성당이 보이고 푸른 하늘과 그 아래 말로만 듣던 다뉴브강을 내려다보였다. 환상적이었다. 지금껏 본 중에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가진 방이었다. 숙소 문을 나서면 바로 부다페스트 곳곳을 다니는 노선버스가 멈추는 곳이었다. 우리의 프리패스는 보이지 않는 날개처럼 부다페스트의 모든 곳을 통과하게 만들어주었고 창밖에는  트램과 노선버스와 승용차와 관광객을 태운 클래식 카와 엔진 없는 페달자동차 모든 것들이 도로 위를 아무 문제없이 함께 다녔다. 신기했다.

 맨 처음 우리는 아름답기로 유명한 성 이슈트반 성당을 갔다. 성당입구 천정엔 건축의 시작과 완공을 알리는 숫자 1851과 1906이 새겨져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선 그날 저녁에 있을 성당 내 오르간연주회의 티켓을 팔고 있었다. 내부를 마음 놓고 천천히 둘러볼 수 있는 기회일 것 같아 좋은 자리로 예약을 하고 나와서 장미꽃 젤라또를 먹으며 거리를 돌아보았다. 관공서 건물은 바로크식 조각들이 새겨진 채 세월의 먼지 속에서 회색빛으로 변해있었고, 가로등 하나 벤치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은 없었다. 한 바탕 비가  성당 앞 광장 바닥을 아프도록 찌르다가 그치고 저녁이 왔다.

 세상에나!
성당의 내부는 정말 화려하고 거룩하고 웅장하고 아름다웠다. 사방엔 성경 속 이야기들과 성경 속 인물들이 금박의 바탕위에 살아있었고, 촛불이 타오르고 돔 형태의 지붕은 공연을 기다리며 소근 대는 우리의 이야기를 조용히 모아 퍼뜨려주었다. 그리고 오르간 연주. 깜짝 놀랐다. 오르간 소리는 성당내부를 채우고 바닥을 울렸다. 우리가 앉아있는 바닥이 흔들렸다. 순식간에 몸에 소름이 돋고 감격스러웠다. 가만히 눈을 감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성당내부의 기둥들도, 의자들도, 성화 속 인물들도, 촛불도 숨을 죽였다. 우리가 듣는 곡의 제목이나 그 내용이나 그 연주자의 실력은 알 수 없지만 우리는 모두 그 시간 또 프라하의 다리 위에서처럼 함께 살아있으며 함께 빠져들었다. 계속되던 연주와 노래를 들고 거대한 오르간이 트인 공간의 2층에서 울려 퍼질 때 모두는 다 같이 기립박수를 보냈다.

 난 그 곳을 나오며 인간에 대한 고마움을 생각하게 되었다. 나약하고 가진 것 없는 존재로 약함과 불안 속에서 종교를 만들고 예술을 만들고, 그 종교와 예술이 이러한 공간을 상상하게 했음에. 또 그 상상으로 설계를 하고, 기나긴 시간을 멈추지 않고 소홀히 하지 않고 이 성당 하나를 완성하였으며, 그 안을 마음 속 아름다움으로 가득 채웠으며 또한 그 마음을 아는 지금의 우리가 그 옛날의 그들처럼 감탄하고 놀라워하고 칭송하고 아끼고 있다는 것에 대한 고마움이었다.

 우리의 여행은 그렇게 매일매일 우리가 계획했던 대로, 상상했던 것보다 더 맛있고 즐겁고 편안했다. 부다페스트 근교의 작은 도시 센텐드레도 아름다웠고 기차를 타고 통학하며 빠른 노래에 손뼉을 부딪치는 예쁜 여자아이들을 보며 행복하였다. 모르고 들어간 기차역 근처 식당은 예상외로 맛있었고 가는 곳마다 화장실을 안가면 무조건 돈을 내고 가야한다는 생각에 꼬박꼬박 들러야했던 기억을 빼곤 모든 것들이 다 좋았다. 다뉴브 강을 가로지르는 세첸느 다리는 까를교와 다르게 쉴 틈 없이 차량이 왕래하는 곳이었지만 그 강둑은 유람선을 기다리는 사람들, 흑맥주를 마시는 사람들, 노랫소리로 풍요로웠고 유럽 여러 나라를 흘러 다니는 거대한 크루즈선의 투명한 창과 루프 탑 안의 사람들은 몹시도 부러웠다.

 우리의 마지막 날,
수시로 창밖으로 내다보고 새벽이면 내려가 그 주변을 돌아보았던 마차시성당 내부를 둘러보기로 했다. 입구엔 다른 모든 성당들처럼 양초가 놓여있었다. 난 새 양초를 하나 집어 타고 있던 양초의 불꽃에 심지를 기울였다. 불이 당겨진 양초를 불을 나눠 준 양초 옆에 놓고 잠시 손을 모았다. 고개를 들어 무심코 옆을 보았을 때 한 쌍의 부부가 막 양초를 내려놓고 가벼운 키스를 하고 있었다. 그들과 눈이 마주치고 나도 그들도 조용히 미소 지었다. 마치 무슨 기도를 했을지 안다는 눈빛으로, 그 기도는 이뤄질 거란 축복을 담고.

 성당은 웅장하지만 금색으로 빛나지 않아 소박하였다. 그러나 그 모든 곳의 조각들은 섬세하고 기둥들 사이 스테인드글라스는 완벽하게 빛을 받아 내부를 반짝거렸다. 성모님의 제단은 정갈하였고 모든 이들에게 공개한 그 성당 곳곳은 모두 성스러웠다.  매일 마을 주민들이 와서 기도를 드리는 작은 방, 왕이 대관식전에 들어가는 기도실, 내부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이층 계단의 난간들 사이. 이곳을 건축하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렸을까 궁금하지 않았다. 이스트반 성당을 건축한 그 마음으로 아주 오래전의 사람들은 이 성당을 짓기 시작하였고, 완성하였으며, 지금 내가 그들과 같은 공간에서 같은 햇빛을 맞고 있는 것으로 너무도 충분하였음에.
 옮겨 다니는 중간 중간 나는 촛불 앞에서 본 그 부부와 눈빛이 만났고 한 두 번 서로 웃음 지었다. 아무 말이 없어도 그들이 이 공간 안에서 나와 같이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커다란 문을 밀고 성당 앞 광장으로 나왔다.

 소리가 들렸다. 피아노의 선율 그리고 아름다운 노랫소리.
한 연주자가 작은 전자피아노를 놓고 그 앞에 동전이 든 모자를 놓고 있었다. 그 곁엔 놀러 나온 십대 여자아이 셋. 여자아이들은 근처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인 듯 가벼운 차림에 가방을 메고 누구는 노래를 하고, 누구는 그 노래에 살짝 몸을 움직이고, 그리고 한 아이는 그런 친구들을 보고 웃으며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알아들을 수 없어도 그 곡이 성가인 듯 느꼈다. 그리고 그 아이들과 연주자는 하늘과 상대방을 번갈아 바라보며 노래를 하고 연주를 하였다.

 난 그냥 알 수 없이 눈물이 핑 돌았다.
그리고 잠시 멈추어 하늘을 보았다. 시원한 바람, 하얀 구름, 파란 하늘에 보이는 성당의 지붕.
 아, 그 시간들. 여행을 다니며 만난 사람들, 그 체온들, 그 미소들. 눈이 마주치는 것으로 마음을 읽을 수 있었던 경험들. 그리고 저 들. 거룩한 성당 앞에서 낯선 이가 만드는 선율에 자신의 목소리로 하늘을 향해 노래하는 아이들. 그 모두 안에서 나 또한 그들과 같은 인간이구나 하며 다시 뭉클하게 행복해졌다.

 인간이기에 나를 휘몰아치는 희노애락에 휩싸여 어찌하여 내가 인간인지를. 선택이 불가능한 나의 삶을 원망하기도 했던 시간들. 한 마리의 새를, 한 송이의 꽃을 부러워하던 나의 과거들.
내가 부러워했던 자유로운 바람도, 흐르는 물도 그 어떤 것이 지금의 나처럼 누군가의 눈을 보는 것만으로 대화하고, 혹은 그들의 행복을 빌고, 누군가의 노래를 들으며 마음 한 순간에 정결해지며, 그 옛날의 사람들과 같은 마음을 가져보겠는가.

 사람인 것이 너무나 다행인 시간. 그리고 이런 인식을 갖게 한 그 시간이 너무도 소중하였다. 그 순간 잠시 머물러있던 그 성당 광장 앞. 난 새로이 인간의 삶을 선물 받는 것 같았다. 새로이 걷는 발걸음은 고인 눈물에 아이의 걸음처럼 흔들려보였다.

 지금까지 걸어온 시간과는 다른 색을 가진 삶, 왠지 그런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아 앞으로의 시간들이 기대된다. 그리고 난 인천행 비행기 좌석에 앉아 창밖을 보며 속삭였다. 언젠가는...

“See ya!!”.
 

[이은경 작가 프로필]

△현재 익산세무서 근무

△국세가족문예전 은상 수상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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